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新唐書 卷222上·中·下 열전 第147上·中·下 남만

중국정사외국전

邆睒詔

  • 국가
    등섬조(邆睒詔)
등섬조(邆睒詔)는 그 왕 풍미(豐咩)가 처음에 등섬(邆睒)을 점거하고 있었는데, 어사(御史) 이지고(李知古) 주 001
각주 001)
李知古:『舊唐書』卷103 「徐堅傳」에 따르면 睿宗이 즉위했을 무렵(710), 監察御使 이지고가 군대를 동원해 姚州 西貳河蠻을 공격하여 이들을 복속시키킬 청했고, 또 성을 쌓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고 하였다. 이에 대해 예종은 지고로 하여금 검남의 병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고 주현을 설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지고는 만이의 우두머리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자녀들을 노비로 만들려고 했다. 이에 만인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지고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즉 豐咩가 이지고에게 살해당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이지고가 자신의 건의를 실천에 막 옮기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이지고가 조서를 가지고 나와 풍미에게 죄를 물어 그 즉시 죽인 것으로 되어 있다.
닫기
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들 미나피(咩羅皮)는 스스로 등천주자사(邆川州刺史)가 되어 대리성(大釐城) 주 002
각주 002)
大釐城:『蠻書』卷3 「六詔」에서는 ‘大厘城’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咩羅皮는 몽귀의와 함께 靜河蠻을 정벌하여 大厘城을 분점하였다.
닫기
에 치소를 두었다. 귀의가 습격하여 패주시키니, 다시 등섬으로 들어가서 낭궁(浪穹) 시랑(施浪)과 연합하여 귀의에 대항하였다.주 003
각주 003)
蒙歸義의 습격:『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미나피는 원래 귀의의 조카벌이 되는데, 약하고 지모가 없었다. 몽귀의가 미나피가 있는 성을 습격하여 탈취하니, 미나피는 등섭으로 돌아가 浪穹, 施浪 두 詔의 원군과 함께 귀의를 공격하였다.
닫기
전투를 치뤘는데 크게 패하였으며 귀의가 등섬을 빼앗자, 미나피는 달아나 야공천(野共川)을 지켰다. 미나피가 죽자, 아들 피나등(皮羅鄧)이 즉위하였다. 피나등이 죽자, 아들 등나전(鄧羅顚)이 즉위하였다. 등나전이 죽자, 아들 전문탁(顚文託) 주 004
각주 004)
顚文託:『蠻書』卷3 「六詔」에서는 ‘顚之託’으로 되어 있다.
닫기
이 즉위하였다. 남조검천을 격파하고 그를 사로잡아 영창으로 옮겼다.주 005
각주 005)
『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남조가 野共을 점령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곧 미나파가 귀의에게 패한 이래 전문탁에 이르기까지 등섬조는 야공에서 그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닫기


  • 각주 001)
    李知古:『舊唐書』卷103 「徐堅傳」에 따르면 睿宗이 즉위했을 무렵(710), 監察御使 이지고가 군대를 동원해 姚州 西貳河蠻을 공격하여 이들을 복속시키킬 청했고, 또 성을 쌓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고 하였다. 이에 대해 예종은 지고로 하여금 검남의 병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고 주현을 설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지고는 만이의 우두머리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자녀들을 노비로 만들려고 했다. 이에 만인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지고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즉 豐咩가 이지고에게 살해당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이지고가 자신의 건의를 실천에 막 옮기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이지고가 조서를 가지고 나와 풍미에게 죄를 물어 그 즉시 죽인 것으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大釐城:『蠻書』卷3 「六詔」에서는 ‘大厘城’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咩羅皮는 몽귀의와 함께 靜河蠻을 정벌하여 大厘城을 분점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3)
    蒙歸義의 습격:『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미나피는 원래 귀의의 조카벌이 되는데, 약하고 지모가 없었다. 몽귀의가 미나피가 있는 성을 습격하여 탈취하니, 미나피는 등섭으로 돌아가 浪穹, 施浪 두 詔의 원군과 함께 귀의를 공격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4)
    顚文託:『蠻書』卷3 「六詔」에서는 ‘顚之託’으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남조가 野共을 점령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곧 미나파가 귀의에게 패한 이래 전문탁에 이르기까지 등섬조는 야공에서 그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풍미(豐咩), 이지고(李知古), 미나피(咩羅皮), 귀의, 귀의, 귀의, 미나피, 미나피, 피나등(皮羅鄧), 피나등, 등나전(鄧羅顚), 등나전, 전문탁(顚文託)
지명
등섬(邆睒), 대리성(大釐城), 등섬, 야공천(野共川), 남조, 검천, 영창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邆睒詔 자료번호 : jo.k_0017_0222_0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