邆睒詔
등섬조(邆睒詔)는 그 왕 풍미(豐咩)가 처음에 등섬(邆睒)을 점거하고 있었는데, 어사(御史) 이지고(李知古)
주 001
각주 001)
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들 미나피(咩羅皮)는 스스로 등천주자사(邆川州刺史)가 되어 대리성(大釐城)
주 002에 치소를 두었다. 귀의가 습격하여 패주시키니, 다시 등섬으로 들어가서 낭궁(浪穹) 시랑(施浪)과 연합하여 귀의에 대항하였다.주 003전투를 치뤘는데 크게 패하였으며 귀의가 등섬을 빼앗자, 미나피는 달아나 야공천(野共川)을 지켰다. 미나피가 죽자, 아들 피나등(皮羅鄧)이 즉위하였다. 피나등이 죽자, 아들 등나전(鄧羅顚)이 즉위하였다. 등나전이 죽자, 아들 전문탁(顚文託)
주 004이 즉위하였다. 남조가 검천을 격파하고 그를 사로잡아 영창으로 옮겼다.주 005
李知古:『舊唐書』卷103 「徐堅傳」에 따르면 睿宗이 즉위했을 무렵(710), 監察御使 이지고가 군대를 동원해 姚州 西貳河蠻을 공격하여 이들을 복속시키킬 청했고, 또 성을 쌓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고 하였다. 이에 대해 예종은 지고로 하여금 검남의 병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고 주현을 설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지고는 만이의 우두머리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자녀들을 노비로 만들려고 했다. 이에 만인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지고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즉 豐咩가 이지고에게 살해당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이지고가 자신의 건의를 실천에 막 옮기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이지고가 조서를 가지고 나와 풍미에게 죄를 물어 그 즉시 죽인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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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李知古:『舊唐書』卷103 「徐堅傳」에 따르면 睿宗이 즉위했을 무렵(710), 監察御使 이지고가 군대를 동원해 姚州 西貳河蠻을 공격하여 이들을 복속시키킬 청했고, 또 성을 쌓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고 하였다. 이에 대해 예종은 지고로 하여금 검남의 병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고 주현을 설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지고는 만이의 우두머리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자녀들을 노비로 만들려고 했다. 이에 만인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지고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즉 豐咩가 이지고에게 살해당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이지고가 자신의 건의를 실천에 막 옮기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蠻書』卷3 「六詔」에 따르면 이지고가 조서를 가지고 나와 풍미에게 죄를 물어 그 즉시 죽인 것으로 되어 있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색인어
- 이름
- 풍미(豐咩), 이지고(李知古), 미나피(咩羅皮), 귀의, 귀의, 귀의, 미나피, 미나피, 피나등(皮羅鄧), 피나등, 등나전(鄧羅顚), 등나전, 전문탁(顚文託)
- 지명
- 등섬(邆睒), 대리성(大釐城), 등섬, 야공천(野共川), 남조, 검천, 영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