浪穹詔
낭궁조(浪穹詔)는 그 왕 풍시(豐時)가 죽자, 아들 나탁(羅鐸)이 즉위하였다. 나탁이 죽자 아들 탁나망(鐸羅望)이 즉위하였다. [탁라망은] 낭궁주자사(浪穹州刺史)가 되어 남조와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자, 그 부족을 이끌고 검천(劍川)을 지켰으며 검랑(劍浪)이라 개칭하였다. [탁라망이] 죽자 아들 망편(望偏)이 즉위하였다. 망편이 죽자 아들 편라의(偏羅矣) 즉위하였다. 편라의가 죽자, 아들 나군(羅君)이 즉위하였다. 정원 연간에 남조가 검천을 격파하여 나군을 사로잡고, 영창(永昌)으로 이주시켰다.주 001무릇 낭궁(浪穹)과 등섬(邆睒) 그리고 시랑(施浪)을 모두 낭인(浪人)이라 부르고, 또 ‘삼랑(三浪)’이라 칭하기도 한다.
색인어
- 이름
- 풍시(豐時), 나탁(羅鐸), 나탁, 탁나망(鐸羅望), 탁라망, 탁라망, 망편(望偏), 망편, 편라의(偏羅矣), 편라의, 나군(羅君), 나군
- 지명
- 남조, 검천(劍川), 검랑(劍浪), 남조, 검천, 영창(永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