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가 공격하였으나 성에서 이를 수비함
성의 왼쪽에는 누각으로 된 민간의 상가건물이 있었는데, 만이 [그 위에 올라가] 성안을 굽어보며 활을 쏘아댔다. 노탐이 용사를 모집하여 불태우니 병장기도 함께 타버렸다. [함통 12년] 2월에 만이 운량(雲梁)과 아거(鵝車)주 001
각주 001)
를 동원하여 사방에서 공격하였다. 병사들은 소리를 지르며 아거가 이르기 전에 성의 담장에서 큰 동아줄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적들의 수레에] 걸어매고주 002기름과 횃불을 던지자, 아거는 불 탔으며 그 안에 있던 만(蠻)의 병사들이 다 죽었다. 노탐은 이숙(李璹)과 장찰(張察)을 내보내 돌장(突將) 이끌고 성 아래에서 싸우게 하였는데 사로잡거나 벤 것이 2천급이었다.주 003만들이 민간의 장락(鄣落)을 철거하여 봉롱(蓬籠)주 004雲梁과 鵝車:『資治通鑑』卷252 「唐紀」68 咸通 11年 2월 癸未 朔조에 대한 따르면 남조군이 梯衝을 모아 사면에서 성도를 공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호삼성은 梯란 雲梯를 말하며 衝은 衝車라고 하였다. 운제는 공성용 사다리를 말한다. 한편 충차의 경우,『淮南子』卷6 「覽冥訓」에서 ‘충차를 크게 만들고 경관을 높이 쌓았다(大衝車, 高重京)’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漢의 高秀는 충차란 큰 철을 수레 바퀴의 양쪽 끌채에 씌우고 말에는 갑옷을 입히며 수레는 병기로 덮어 적의 성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에 따르면 충차는 적의 성을 부수기 위한 공성용 수레이다.『통감』에 따르면 본문에서 말한 雲梁은 운제이며, 鵝車는 바로 이 충차에 해당한다.
각주 004)
을 만들었는데 수레 덮개처럼 생겼다. 아래에 침목을 깔고 밀면서 전진하였는데, 성에 한길쯤 못 미쳐서 그 안에 숨어있던 만졸들이 담 밑에 굴을 팠다. 양민이 단지에 오물을 담아 만군에게 뿌리니, 만군이 머물 수가 없었다. 또 끓는 쇳물을 부으니 봉롱이 모두 불탔다. 그러나 남조는 수가 많음을 믿고 공성(攻城)용 기계를 더욱 만드니 [이를 위해] 도끼질을 하는 병사들이 밤낮으로 소리를 내었다. 장차 금루(錦樓)주 005를 공격하려 하니 무리가 크게 놀라게 되었다. 노탐이 장수를 내보내 세 방면에서 힘써 싸우게 하니, 만들이 물러났다. 만들이 그믐밤을 이용하여 여러 번 성에 접근하였으나 고함 소리를 듣고 무리가 모두 달아났다. 성위에는 철롱(鐵籠)에 넣어둔 천 개의 횃불주 006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적이 와도 [몸을] 숨길 수 없었고, 보초가 밤새 떠들어대니 만이 끝내 침입하지 못하였다.鄣落과 蓬籠:『資治通鑑』卷252 「唐紀」68 咸通 11年 2月 癸未 朔조에 따르면 남조군이 민가의 울타리를 가져다가 거듭 물기를 먹여 수축시킨 후, 배를 덮는 것과 유사한 덮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이 이것을 이고 성에까지 가서 땅을 파게 하였는데 화살과 돌이 이를 관통하지 못했고, 불로도 태울 수가 없었다. 이에 양경복이 끓는 쇳물을 들이부어 모조리 죽여버렸다. 즉『資治通鑑』에서는 ‘民籬’를 가져다 ‘蓬’을 만들었다 했고 이에 대해 호삼성은 ‘蓬’은 사실 ‘篷’을 말한 것으로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배의 덮개라고 하였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한 鄣落은 울타리이며, 蓬籠은 篷籠으로 배의 덮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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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雲梁과 鵝車:『資治通鑑』卷252 「唐紀」68 咸通 11年 2월 癸未 朔조에 대한 따르면 남조군이 梯衝을 모아 사면에서 성도를 공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호삼성은 梯란 雲梯를 말하며 衝은 衝車라고 하였다. 운제는 공성용 사다리를 말한다. 한편 충차의 경우,『淮南子』卷6 「覽冥訓」에서 ‘충차를 크게 만들고 경관을 높이 쌓았다(大衝車, 高重京)’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漢의 高秀는 충차란 큰 철을 수레 바퀴의 양쪽 끌채에 씌우고 말에는 갑옷을 입히며 수레는 병기로 덮어 적의 성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에 따르면 충차는 적의 성을 부수기 위한 공성용 수레이다.『통감』에 따르면 본문에서 말한 雲梁은 운제이며, 鵝車는 바로 이 충차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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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4)
鄣落과 蓬籠:『資治通鑑』卷252 「唐紀」68 咸通 11年 2月 癸未 朔조에 따르면 남조군이 민가의 울타리를 가져다가 거듭 물기를 먹여 수축시킨 후, 배를 덮는 것과 유사한 덮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이 이것을 이고 성에까지 가서 땅을 파게 하였는데 화살과 돌이 이를 관통하지 못했고, 불로도 태울 수가 없었다. 이에 양경복이 끓는 쇳물을 들이부어 모조리 죽여버렸다. 즉『資治通鑑』에서는 ‘民籬’를 가져다 ‘蓬’을 만들었다 했고 이에 대해 호삼성은 ‘蓬’은 사실 ‘篷’을 말한 것으로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배의 덮개라고 하였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한 鄣落은 울타리이며, 蓬籠은 篷籠으로 배의 덮개를 말한다.
- 각주 005)
- 각주 006)
색인어
- 이름
- 노탐, 노탐, 이숙(李璹), 장찰(張察), 양민, 노탐
- 지명
- 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