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심이 위고와 토번을 치고자 함
[정원(貞元)] 15년(799)에 이모심은 토번을 칠 것을 모의하였다. 등천(邆川)
주 001
영북(寧北)
주 002등의 성들이 공격로에 해당하였으므로, 가파른 산에 깊은 해자를 만들어 싸울 준비를 하였다. 황제는 출병하여 조력할 것을 허락하였다. 또 [이모심은] 위고(韋皐)에게 대신 자제를 볼모로 보내겠다고 청하였다. 위고가 사양하였으나 굳이 청하므로 모두 성도(成都)에 살면서 취학하도록 하였다. 또 “곤명과 수주(雟州)는 토번과 접하여 있으니 먼저 군대를 늘리지 않으면, 적에게 위협을 받아 도리어 우리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위고에게 대책을 세울 것을 청하였다. 당시 당의 군대는 해마다 경서(京西)와 삭방(朔方) 지역에 주둔하였데, 군량을 잔뜩 쌓아놓고 남북으로 동시에 공격하여 고지를 취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방의 경우에는 군량 수송 기한이 늦추어지고, 병사는 모두 모이지 않았다. 이해 여름 적에 흉년이 들고 돌림병이 창궐한 데다, 찬보(贊普)주 003가 죽고 새로운 군주가 즉위하였다. 위고는 적이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짐작하고, 이모심에게 “천천히 거행하여 만전을 기하는 것이 서두르다 공이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지금 국경 지역에는 전보다 열 배는 많은 군대가 있고 또 행영(行營)이 모두 수주에 있으니, 서로(西瀘)에서 토번의 길을 장악하면 곤명과 농동은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권하였다. 이모심은 다른 해에 기약하기를 청하였다.
색인어
- 이름
- 이모심, 이모심, 위고(韋皐), 위고, 위고, 이모심, 이모심
- 지명
- 토번, 등천(邆川), 영북(寧北), 성도(成都), 곤명, 수주(雟州), 토번, 위고, 당, 경서(京西), 삭방(朔方), 수주, 토번, 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