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新唐書 卷222上·中·下 열전 第147上·中·下 남만

중국정사외국전

弄棟蠻

  • 국가
    남조(南詔)
농동만(弄棟蠻)은 백만종(白蠻種)이다. 그 부족은 본디 몽동현(弄棟縣)의 변경지대에서 거주하였는데, 오래 전에 포주(褒州) 주 001
각주 001)
褒州:『舊唐書』卷39 「地理」2 梁州興元府조에 따르면 山南西道 소속으로 唐 武德 2년(619)에 처음 설치되었으나 이후 開閉를 반복하다가 興元 元年(784) 최종적으로 興元府로 승격되었다.『元和郡縣圖志』에는 治所는 楊彼縣으로 지금의 雲南 大姚縣 동남 54里 溪木小村에 있었다. 雲南 大姚縣 東南지역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天寶에 폐지되었다가 大理시에 다시 설치되었다.
닫기
가 되었고, 그 수령이 자사(刺史)가 되었다. [수령이] 실수로 그 참군(參軍)을 죽이게 되자, 부족을 이끌고 북으로 달아났다.주 002
각주 002)
만약 수령이 자의로 참군을 임명했다면 그를 죽인 일로 부족까지 이끌고 달아날 이유는 없다. 즉 이는 당조의 보복을 두려워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포주가 羈靡州이며 이 기미주의 參軍은 漢人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닫기
후에는 마사강(磨些江) 주 003
각주 003)
磨些江: 지금 塔城에서 雅礱江과 합해지는 곳까지의 金沙江 일단에 대해 唐代에 불렀던 명칭이다. 雲南 維西傈僳族自治縣에서 四川 攀枝花市까지의 사이이다.
닫기
옆에 흩어져 살았다. 그 까닭에 검천(劍川)공천(共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 각주 001)
    褒州:『舊唐書』卷39 「地理」2 梁州興元府조에 따르면 山南西道 소속으로 唐 武德 2년(619)에 처음 설치되었으나 이후 開閉를 반복하다가 興元 元年(784) 최종적으로 興元府로 승격되었다.『元和郡縣圖志』에는 治所는 楊彼縣으로 지금의 雲南 大姚縣 동남 54里 溪木小村에 있었다. 雲南 大姚縣 東南지역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天寶에 폐지되었다가 大理시에 다시 설치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만약 수령이 자의로 참군을 임명했다면 그를 죽인 일로 부족까지 이끌고 달아날 이유는 없다. 즉 이는 당조의 보복을 두려워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포주가 羈靡州이며 이 기미주의 參軍은 漢人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磨些江: 지금 塔城에서 雅礱江과 합해지는 곳까지의 金沙江 일단에 대해 唐代에 불렀던 명칭이다. 雲南 維西傈僳族自治縣에서 四川 攀枝花市까지의 사이이다.
     바로가기

색인어
지명
포주(褒州), 마사강(磨些江), 검천(劍川), 공천(共川)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弄棟蠻 자료번호 : jo.k_0017_0222_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