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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남조의 복식과 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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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조(南詔)
왕이 [궁밖에] 나갈 때는 여덟 개의 기를 세운다. 깃발의 색은 푸른빛이 도는 자주색이다. 깃발을 깃대에 다는 부분은 하얀색이다. 치삽(雉翣)주 001
각주 001)
雉翣: ‘翣’은 부채모양의 장식물로서, 고대 중국에서는 장례를 지낼 때 棺에 대한 장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당송시대 일반적인 의장용 부채를 의미한다. 雉翣은 꿩털로 만든 의장용 부채라고 할 수 있는데, 南詔의 궁궐에서 사용된 것이 처음 기록되었는데, 宋代에서도 이를 이어 의장용 부채가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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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둘이다. 또 모월(旄鉞)주 002
각주 002)
旄鉞: 원래 旗幟와 兵器를 의미하는데, 軍權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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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는데, 자주 빛 자루로 싸여있고, 그 덮개는 비취색이다. 왕의 어머니는 신마(信麽) 또는 구마(九麽)라고 부른다. 왕비는 진무(進武)라 한다. 신마가 밖에 나갈 때도 여덟 개의 기를 세우는데, 진홍색 유(斿)주 003
각주 003)
斿: 고대 旌旗 아래에 붙인 장식물.『周禮』「春官·巾車」, “建太常十有二斿.”에 대한 鄭玄注에 “太常, 九旗之畵日月者, 正幅爲縿, 斿則屬焉.”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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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쓴다. 조장(曹長) 이하는 금으로 만든 허리띠를 맨다. 진홍색과 자주색을 좋아하였다. 공이 있으면 비단을 더하여 주었다. 또 공이 있으면 금파라(金波羅)를 더하여 주었다. 금파라는 호랑이 가죽이다. 공이 작은 자는 옷깃과 등 부분에 [호랑이 가죽을] 대고, 그 다음은 옷깃부분에만 댈 수 있다.주 004
각주 004)
『蠻書』卷8 「蠻夷風俗」에 따르면 “緋와 紫 두 색을 귀하게 여긴다. 자색을 얻은 후에 큰 功이 있으면 비단[錦]을 얻는다. 또 등급을 초월한 특이한 功이 있으면, 온전하게 波羅皮로만 입을 수 있다. 그 다음 功은 가슴 앞과 등 뒤에 입을 수 있고, 소매부분은 (파라피를) 뺀다. 또 그 다음 功은 가슴 앞에만 두를 수 있고, 아울러 그 등 부분도 뺀다. 大虫皮라고 일컫는데, 波羅皮라고도 한다. 腰帶를 일컬어 佉苴라고 한다(貴緋紫兩色. 得紫后有大功則得錦. 又有超等殊功者, 則得全披波羅皮. 其次功則胸前背後得披, 而闕其袖. 又以次功, 則胸前披, 幷闕其背. 謂之大虫皮, 亦曰波羅皮. 謂腰帶曰佉苴)”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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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는 분을 칠하거나 눈썹을 그리지 않고, 머리카락에 윤을 내는 데에도 소홀하다. 신분이 귀한 자는 능금(綾錦)으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입고, 위에 비단 한 폭을 걸친다. [머리카락은] 양 갈래로 땋아 쪽을 지고, 귀에는 진주와 금패(金貝), 슬슬(瑟瑟), 호박을 단다. 처녀와 과부가 남자들과 사통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지만 결혼하는 날 저녁이 되면 정부(情婦)를 서로 떠나보낸다. 이미 시집을 갔는데도 간음하면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된다.주 005
각주 005)
『蠻書』卷8 「蠻夷風俗」에 따르면 이미 시집간 뒤에 간음을 범하면, 남자는 때려죽여도 죄가 되지 않고, 여자 또한 죽게 된다고 되어 있어, 간음의 문제는 주로 여자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순한 복수를 허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범죄자로 처벌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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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에 인(寅)을 정(正)으로 여기기 때문에 사시가 대체로 보아 중국과 차이가 적다.주 006
각주 006)
중국에서 歲次는 夏가 寅月을, 殷이 丑月을, 周가 子月을 歲首로 하였다. 漢代 農曆에 맞추어 ‘建寅’ 즉 寅月을 歲首로 한 이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다만 1년과 1월의 길이에 대한 계산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데, 唐代에는 開元 15년(727) 大衍曆을 제정하였다가, 長慶 2년(822)에 宣明曆을 제정하였다. 南詔 曆法의 상세한 내용을 알수 없으나, 寅月을 歲首로 하였기 때문에 唐代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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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회를 쳐서 오이 후추 수유와 버무리는데, 이를 아궐(鵝闕)이라 부른다. 표생(瓢笙)주 007
각주 007)
瓢笙: 현재의 苗族들이 “格哈”라고 부르는 악기로 박에 구멍을 내어 만든 악기를 漢語로 ‘古瓢琴’ 혹은 ‘瓢笙’이라고 부른다. 唐代 궁정에서도 蘆笙이라는 것을 연주하였는데, 이를 瓢笙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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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즐겨 부는데, 생(笙)은 관이 네 개이다. 술이 손님 앞에 이르면, 이 생으로 술잔을 받들어 마시기를 권한다. 증백(繒帛)과 조개껍질로 화폐를 삼아 거래한다. 조개껍질은 크기가 손가락만 하며, 16매가 1멱(覓)주 008
각주 008)
覓: ‘冪’이라고도 하는데, 南詔사회에서 설정된 일종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개념을 漢字로 표기한 것으로, 중국에서 대응되는 개념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가치는 화폐기준으로 貝는 16枚, 繒帛으로는 4尺 5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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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된다. 군대가 출정하면 사람마다 1斗 5升의 양식을 준비하며, 2500人을 단위로 한 영(營)을 만든다.주 009
각주 009)
복식과 풍속에 관한 이상의 이야기는 대체로『蠻書』卷8 「蠻夷風俗」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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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법에는 먼저 다친 사람은 치료해주고, 나중에 다친 사람은 베어버린다. 쟁기로 밭을 갈 때는 소 한 마리와 사람 셋을 쓰는데, 소가 앞에서 끌고 가운데에서는 쟁기를 누르고 뒤에서는 소를 채찍질한다. 농사에 집중할 시기에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농사에 힘쓴다. 요역은 따로 없으며, 한 사람마다 한해에 미(米) 2두를 부과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전(田)을 주고, 두 번 수확하고 나서야 세를 매긴다.

  • 각주 001)
    雉翣: ‘翣’은 부채모양의 장식물로서, 고대 중국에서는 장례를 지낼 때 棺에 대한 장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당송시대 일반적인 의장용 부채를 의미한다. 雉翣은 꿩털로 만든 의장용 부채라고 할 수 있는데, 南詔의 궁궐에서 사용된 것이 처음 기록되었는데, 宋代에서도 이를 이어 의장용 부채가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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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旄鉞: 원래 旗幟와 兵器를 의미하는데, 軍權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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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斿: 고대 旌旗 아래에 붙인 장식물.『周禮』「春官·巾車」, “建太常十有二斿.”에 대한 鄭玄注에 “太常, 九旗之畵日月者, 正幅爲縿, 斿則屬焉.”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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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蠻書』卷8 「蠻夷風俗」에 따르면 “緋와 紫 두 색을 귀하게 여긴다. 자색을 얻은 후에 큰 功이 있으면 비단[錦]을 얻는다. 또 등급을 초월한 특이한 功이 있으면, 온전하게 波羅皮로만 입을 수 있다. 그 다음 功은 가슴 앞과 등 뒤에 입을 수 있고, 소매부분은 (파라피를) 뺀다. 또 그 다음 功은 가슴 앞에만 두를 수 있고, 아울러 그 등 부분도 뺀다. 大虫皮라고 일컫는데, 波羅皮라고도 한다. 腰帶를 일컬어 佉苴라고 한다(貴緋紫兩色. 得紫后有大功則得錦. 又有超等殊功者, 則得全披波羅皮. 其次功則胸前背後得披, 而闕其袖. 又以次功, 則胸前披, 幷闕其背. 謂之大虫皮, 亦曰波羅皮. 謂腰帶曰佉苴)”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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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蠻書』卷8 「蠻夷風俗」에 따르면 이미 시집간 뒤에 간음을 범하면, 남자는 때려죽여도 죄가 되지 않고, 여자 또한 죽게 된다고 되어 있어, 간음의 문제는 주로 여자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순한 복수를 허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범죄자로 처벌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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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중국에서 歲次는 夏가 寅月을, 殷이 丑月을, 周가 子月을 歲首로 하였다. 漢代 農曆에 맞추어 ‘建寅’ 즉 寅月을 歲首로 한 이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다만 1년과 1월의 길이에 대한 계산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데, 唐代에는 開元 15년(727) 大衍曆을 제정하였다가, 長慶 2년(822)에 宣明曆을 제정하였다. 南詔 曆法의 상세한 내용을 알수 없으나, 寅月을 歲首로 하였기 때문에 唐代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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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瓢笙: 현재의 苗族들이 “格哈”라고 부르는 악기로 박에 구멍을 내어 만든 악기를 漢語로 ‘古瓢琴’ 혹은 ‘瓢笙’이라고 부른다. 唐代 궁정에서도 蘆笙이라는 것을 연주하였는데, 이를 瓢笙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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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覓: ‘冪’이라고도 하는데, 南詔사회에서 설정된 일종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개념을 漢字로 표기한 것으로, 중국에서 대응되는 개념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가치는 화폐기준으로 貝는 16枚, 繒帛으로는 4尺 5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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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복식과 풍속에 관한 이상의 이야기는 대체로『蠻書』卷8 「蠻夷風俗」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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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의 복식과 습속 자료번호 : jo.k_0017_0222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