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의 王名과 官職體系
왕은 동쪽을 향하고 앉고, 그 신하들은 말할 것이 있으면 그대로 이야기하지 신하를 칭하지 않는다. 왕은 자기를 칭할 때 ‘원(元)’이라고 하는데, ‘짐(朕)’과 같다. 그 아랫사람을 ‘창(昶)’이라고 부르는데, ‘경(卿)’이나 ‘이(爾)’와 같다. 관직으로 ‘탄작(坦綽)’주 001‘포섭(布燮)’주 002‘구찬(久贊)’이라고 불리는 것은 청평관(淸平官)주 003이라 칭하는데, 국사의 경중(輕重)을 결정하기 때문으로 당(唐)의 재상(宰相)과 같다. 추망(酋望)주 004
각주 004)
정추망(正酋望) 원외추망(員外酋望) 대군장(大軍將)주 005원외(員外)라 불리는 것들은 시관(試官)주 006과 같다. 막상(幕爽)은 병사를 주관하고, 종상(琮爽)은 호적을 주관하고, 자상(慈爽)은 예(禮)를 주관하고, 벌상(罰爽)은 형벌을 주관하고, 권상(勸爽)은 관인(官人)을 주관하고, 궐상(厥爽)은 공사를 주관하고, 만상(萬爽)은 재정운용을 주관하고, 인상(引爽)은 빈객을 주관하고, 화상(禾爽)은 상인을 주관하는데,주 007모두 청평관과 추망(酋望) 대군장(大軍將)이 겸직한다. ‘상(爽)’은 말뜻으로 ‘성(省)’과 같다. 독상(督爽)은 삼성(三省)을 총괄한다. 걸탁(乞托)은 마정(馬政)을 주관하고, 녹탁(祿托)은 우정(牛政)을 주관하고, 거탁(巨托)은 창고를 주관하는데, 역시 청평관 추망 대장군이 겸직한다. 상추(爽酋) 미륵(彌勤) 근제(勤齊)라 불리는 것은 부세(賦稅)를 관장한다. 병누사(兵獳司)는 기밀(機密)을 관장한다. 대부(大府)의 장수는 연습(演習)이라고 하고 부장은 연람(演覽)이라고 하며, 중부(中府) 장수는 선예(繕裔)라고 하고 부장은 선람(繕覽)이라고 하며, 하부(下府)의 장수는 담추(澹酋) 부장은 담람(澹覽)이라 하며, 소부(小府)의 장수는 막총(幕捴)이라고 하고 부장은 막람(幕覽)이라고 한다.주 008부(府)에는 타추(陀酋)가 있는데 관기(管記)주 009와 비슷하고, 타서(陀西)가 있는데 판관(判官)주 010과 비슷하다. 대체로 이 정도이다. 무릇 조세나 인력을 징발할 시에는 촌락에까지 문서를 내려 보내는데 반드시 그 보고 기한을 정하였다.주 011100가(家)에는 총좌(總佐) 한명이, 1,000가에는 치인관(治人官) 한명, 10,000가에는 도독(都督) 한명이 있다. 무릇 전(田) 5무(畝)를 1쌍(雙)이라고 한다. 상급 관인에게는 40쌍을 수전(授田)하고, 상호(上戶)에게는 30쌍을 수전하는데, 이러한 비율로 차등을 두었다. 장년의 남자는 모두 전졸(戰卒)이 되는데, 말을 가지고 있으면 기병이 되었다. 사람마다 매년 가죽으로 된 상하의가 지급되었다. 읍락(邑落)의 거리에 따라 4군(軍)으로 나누고, 깃발의 표지로 4방을 구분하였는데, 각 방면에 장수 한명이 일천 명을 통솔하였는데, 4군에 한 장수를 두었다. 무릇 적이 경계를 넘어오면 그 방면의 장수가 이를 막았다.주 012왕의 친병(親兵)은 주노구저(朱弩佉苴)라고 불렀다. ‘구저(佉苴)’는 가죽으로 된 허리띠를 의미한다. 향병(鄕兵) 중에서 선발하여 사군(四軍)에 나저자(羅苴子)를 조직하였는데, 붉은색의 가죽 투구를 쓰고, 물소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동(銅)으로 된 방패를 들고 맨발로 다니는데, 험한 곳을 달리는 것이 마치 나는 것 같았다. 일백 명에 나저자통(羅苴子統) 한 명을 두었다.酋望:『蠻書』에는 이러한 관직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구당서』〈南詔蠻〉條에 正元 十四年(798) 異牟尋이 酋望 大將軍 王丘各 등을 보내 정월을 하례하고 方物을 헌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蠻書』에 ‘魯望’, ‘蒼望’ 등처럼 지명 혹은 부락명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望’은 부락 혹은 지역을 의미하는 용어로, ‘酋望’은 그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각각 부락의 지도자들이 일정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가, 王丘各의 경우처럼 ‘軍將’을 맡기도 하고, 때로는 ‘曹長’이나 ‘桑’을 거쳐 淸平官으로 오르는 방식으로, 자율적인 부락단위의 세력이 일정한 범위에서 통합되는 권력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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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4)
酋望:『蠻書』에는 이러한 관직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구당서』〈南詔蠻〉條에 正元 十四年(798) 異牟尋이 酋望 大將軍 王丘各 등을 보내 정월을 하례하고 方物을 헌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蠻書』에 ‘魯望’, ‘蒼望’ 등처럼 지명 혹은 부락명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望’은 부락 혹은 지역을 의미하는 용어로, ‘酋望’은 그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각각 부락의 지도자들이 일정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가, 王丘各의 경우처럼 ‘軍將’을 맡기도 하고, 때로는 ‘曹長’이나 ‘桑’을 거쳐 淸平官으로 오르는 방식으로, 자율적인 부락단위의 세력이 일정한 범위에서 통합되는 권력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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