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국(倭國)은 백제 ∙ 신라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고 한(漢) 때부터 중국과 통교함
왜국
주 001
한 광무[제](光武: 재위 25∼57) 때 사신을 보내어 입조(入朝)하였는데 대부(大夫)라고 자칭하였고,주 009 [후한] 안제(安帝: 재위 106∼125) 때 다시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는데 왜노국(倭奴國)이라고 하였다.주 100 [후한] 환[제](재위 147∼167)와 영[제](재위 168∼188) 때,주 011
각주 001)
은 백제·신라의 동남쪽에 있는데주 002수륙으로 3,000리이며, 큰 바다 가운데 있고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산다. 위(魏)나라 때 통역을 거쳐 교통하였는데, 30여 국이주 003모두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였다. 오랑캐[夷人]는 이수(里數)를 알지 못하여, 다만 날수로 [거리를] 헤아린다. 그 나라의 경계는 동서로 5개월을 가고 남북으로는 3개월을 가면 각각 바다에 이른다.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 야미퇴(邪靡堆)
주 004에 도읍하고 있는데, 곧 [『삼국지』] 『위지(魏志)』에서 말하는 야마대(邪馬臺)
주 005이다. 예전에는 낙랑군 경계와 대방군으로부터 12,000리 떨어져 있으며,주 006
회계(會稽)
주 007의 동쪽에 있는데 담이(儋耳)
주 008와 서로 가깝다고 하였다.倭國: 고대 일본열도에 있던 나라의 이름. 원래 倭는 唐代(618∼907) 이전에 중국에서 일본열도 및 그 주민들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漢書』(권28 「地理」 하 〈燕地條〉: 1658∼1659)에는 “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이라 기재되어 있고, 이 기사에 唐의 顔師古는 “『魏略』云, 倭在帶方東南大海中, 依山島爲國, 度海千里, 復有國, 皆倭種.”이라고 注記하였다. 『三國志』에서는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이라고 하였고, 『後漢書』에서는 “倭在韓東南大海中, 依山嶋爲居, 凡百餘國. 自武帝滅朝鮮, 使驛通於漢者三十許國”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三國時代까지는 일본열도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倭를 사용하였고 그 내부의 개별 소국을 가리킬 때는 倭奴國과 같은 방식으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南北朝時代에 이르면 倭國·倭國王이라는 용어가 나타난다. 宋은 425년에 倭王 珍을 安東將軍 倭國王으로 책봉하였다.
한 광무[제](光武: 재위 25∼57) 때 사신을 보내어 입조(入朝)하였는데 대부(大夫)라고 자칭하였고,주 009 [후한] 안제(安帝: 재위 106∼125) 때 다시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는데 왜노국(倭奴國)이라고 하였다.주 100 [후한] 환[제](재위 147∼167)와 영[제](재위 168∼188) 때,주 011
각주 011)
그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져서주 012교대로 서로 공격하고 싸우니 여러 해 동안 군주(主)가 없었다. 비미호(卑彌呼)
주 013『三國志』에서는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이라고 하였다. 帥升이 生口를 바친 107년으로부터 70∼80년을 더하면 180년을 전후한 시기가 된다. 『後漢書』에서는 倭國大亂의 시기를 ‘桓靈之間’, 즉 桓帝와 靈帝 무렵이라고 하였으며, 『太平御覽』에 인용된 『魏志』에서는 ‘漢 靈帝의 光和中’, 즉 178∼183년 사이라고 하였다(森浩一, 1985: 137). 『梁書』와 『北史』에서도 ‘光和年中’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시기적으로는 靈帝의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 桓靈之間은 중국에서 혼란의 시기를 나타내는 용어로 자주 사용되므로, 『後漢書』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각주 013)
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었는데, 능히 귀도(鬼道)주 014로써 무리를 현혹시킬 수 있어서, 이때 국인(國人)이 공립(共立)하여 왕으로 삼았다.주 015남동생이 있어서 비미[호]를 도와서 나라를 다스렸다. 그 왕은 시중드는 여자종[侍婢]을 1,000명을 두었으나, 그 얼굴을 본 자가 드물었다. 단지 남자 두 사람이 있어서 왕에게 음식을 바치고 말[言語]을 전달하였다. 그 왕은 궁실과 누관·성책주 016을 가지고 있으며,주 017모두 무기를 가지고 지키며, 법을 집행하는 것이 아주 엄하였다. 위(魏)
주 018부터 제(齊)
주 019·양(梁)
주 101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서로 통교하였다.주 021卑彌呼: 히미코(日命, 日尊의 略稱) 또는 히메코(姬子)라고 읽는다. 新井白石은 ‘日御子’로서 天皇으로 간주하고 있다(『古史通或問』). 야마대국이 大和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日本書紀』에 기재되어 있는 神功皇后, 倭姬命 그리고 崇神天皇의 여동생 倭迹迹日百襲姬命(笠井新也) 등에 비정하고 있고, 야마대국이 九州에 있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熊襲의 女酋, 『日本書紀』 神代卷에 보이는 火之戶幡姬兒千千姬命 및 ‘萬幡姬兒玉依姬命 그리고 土蜘蛛田油津媛의 조상 등으로 비정하고 있다. 더불어서 那珂通世와 白鳥庫吉 등의 지지를 받은 熊襲 혹은 隼人族의 女酋란 설도 있다(末松保和, 1962: 23∼43 및 石原道博, 1985: 49∼50).
각주 021)
『三國志』를 비롯하여 南朝의 사서인 『宋書』·『南齊書』·『梁書』 등에 왜가 중국에 사신을 보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사신을 파견한 왜의 다섯 왕을 ‘倭五王’이라고 하며, 贊(讚), 珍(彌), 濟(齊), 興, 武가 그들이다. 劉宋의 高祖 武帝 永初 2년(421)과 太祖 文帝 元嘉 2년(425)에는 倭王 讚이, 443년과 451년에는 濟가 조공하였다. 462년에는 世子 興을 왜국왕으로 책봉하였으며, 같은 해 흥의 아우인 武가 왕위에 올랐으며, 478년에는 武가 사신을 파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이상 『宋書』 및 『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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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倭國: 고대 일본열도에 있던 나라의 이름. 원래 倭는 唐代(618∼907) 이전에 중국에서 일본열도 및 그 주민들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漢書』(권28 「地理」 하 〈燕地條〉: 1658∼1659)에는 “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이라 기재되어 있고, 이 기사에 唐의 顔師古는 “『魏略』云, 倭在帶方東南大海中, 依山島爲國, 度海千里, 復有國, 皆倭種.”이라고 注記하였다. 『三國志』에서는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이라고 하였고, 『後漢書』에서는 “倭在韓東南大海中, 依山嶋爲居, 凡百餘國. 自武帝滅朝鮮, 使驛通於漢者三十許國”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三國時代까지는 일본열도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倭를 사용하였고 그 내부의 개별 소국을 가리킬 때는 倭奴國과 같은 방식으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南北朝時代에 이르면 倭國·倭國王이라는 용어가 나타난다. 宋은 425년에 倭王 珍을 安東將軍 倭國王으로 책봉하였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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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1)
『三國志』에서는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이라고 하였다. 帥升이 生口를 바친 107년으로부터 70∼80년을 더하면 180년을 전후한 시기가 된다. 『後漢書』에서는 倭國大亂의 시기를 ‘桓靈之間’, 즉 桓帝와 靈帝 무렵이라고 하였으며, 『太平御覽』에 인용된 『魏志』에서는 ‘漢 靈帝의 光和中’, 즉 178∼183년 사이라고 하였다(森浩一, 1985: 137). 『梁書』와 『北史』에서도 ‘光和年中’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시기적으로는 靈帝의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 桓靈之間은 중국에서 혼란의 시기를 나타내는 용어로 자주 사용되므로, 『後漢書』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각주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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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3)
卑彌呼: 히미코(日命, 日尊의 略稱) 또는 히메코(姬子)라고 읽는다. 新井白石은 ‘日御子’로서 天皇으로 간주하고 있다(『古史通或問』). 야마대국이 大和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日本書紀』에 기재되어 있는 神功皇后, 倭姬命 그리고 崇神天皇의 여동생 倭迹迹日百襲姬命(笠井新也) 등에 비정하고 있고, 야마대국이 九州에 있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熊襲의 女酋, 『日本書紀』 神代卷에 보이는 火之戶幡姬兒千千姬命 및 ‘萬幡姬兒玉依姬命 그리고 土蜘蛛田油津媛의 조상 등으로 비정하고 있다. 더불어서 那珂通世와 白鳥庫吉 등의 지지를 받은 熊襲 혹은 隼人族의 女酋란 설도 있다(末松保和, 1962: 23∼43 및 石原道博, 1985: 49∼50).
- 각주 014)
- 각주 015)
- 각주 016)
- 각주 017)
- 각주 018)
- 각주 019)
- 각주 101)
- 각주 021)
색인어
- 이름
- 한 광무[제](光武: 재위 25∼57), [후한] 안제(安帝: 재위 106∼125), [후한] 환[제], 영[제], 비미호(卑彌呼), 비미[호]
- 지명
- 왜국, 백제, 신라, 위(魏)나라, 야미퇴(邪靡堆), 야마대(邪馬臺), 낙랑군, 대방군, 회계(會稽), 담이(儋耳), 왜노국(倭奴國), 위(魏), 제(齊), 양(梁), 중국
- 서명
- [『삼국지』] 『위지(魏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