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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달(慧達)의 생환(生還)과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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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박국(諸薄國)
그 뒤, 서하(西河)이석현(離石縣) 주 001
각주 001)
離石縣: 山西省의 呂梁地區의 呂梁山 中段 西側, 곧 省境 中部의 서측에 위치하였다. 春秋시에는 晉의 땅에 속하였으며, 戰國시에는 趙의 離石邑이었으며, 三晉 西部의 重鎭이었다. 西漢대에 縣을 두었으며, 후한 永和 5년에 西河郡의 治所를 離石으로 옮겼다. 靈帝 末에 郡과 縣 모두 폐지하였다. 曹魏 黃初 3년(222)에 다시 현을 설치하였다. 晉대에는 西河에 속하였으나, 劉淵이 이석현에 할거하여 군대를 일으킨 다음에 마침내 현을 폐지하였다. 北魏의 明帝時에 離石鎭을 설치하였다. 北齊 天保 3년(552)에 昌化縣을 두었으며, 北周 建德 6년에 離石으로 개명하였고, 離石郡의 治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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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살하(劉薩何)라는 호인(胡人)이 있었는데, 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그러나 가슴 아래가 여전히 따뜻하여 그 집안에서는 감히 바로 장사지내지 못하였는데, 10일이 지나자 다시 살아났다. 설명하여 말하기를, “두 명의 관리가 기록을 보더니, 서북쪽으로 가게 하였다. 멀고 가까움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걸었더니, 십팔 층 지옥에 이르렀다. 업보의 경중에 따라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었다. 관세음을 만났는데, 말하기를, ‘너의 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살아나거든 사문이 되거라. 낙하(洛下),주 002
각주 002)
洛下: 洛陽城을 지칭함. 南朝 梁의 劉令嫻은 『祭夫徐悱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調逸 許中, 聲高洛下”라고 하였고, 宋代의 蘇軾은 『次韻劉景文周次元寒食同遊西湖』에서 “山西老將詩無敵, 洛下書生語更妍”이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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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齊城), 단양(丹陽), 회계(會稽)에 모두 아육왕(阿育王)이 만든 탑이 있는데, 가서 예배하도록 하여라. 그렇게 하면 나중에 천수를 다하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세음이] 말을 마치자, 마치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 때문에 출가하여 법명을 혜달(慧達)이라 하였다. [그리고] 탑을 찾아 예배하는 여행을 떠났다. 차례대로 돌다가 단양에 이르렀는데, 탑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기에 월성(越城)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다 장간리(長干里)에 특이한 기운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바로 가서 예배하였더니, 과연 아육왕이 탑을 세운 곳이었으며, 여러 차례 빛을 발산하였다. 이 때문에 반드시 사리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무리를 모아 바로 그곳을 파게 하였다. 1장(丈)을 파내려가니, 석비 세 개가 있었는데, 모두 키가 6척이었다. 그 가운데 석비 하나에서 철함(鐵函)이 나왔는데, 철함 안에는 은함(銀函)이 있었고, 은함 안에는 금함(金函)이 있었다. [금함에는] 3개의 사리와 손톱과 머리카락 각 하나씩이 들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의 길이는 수척에 달했다. [혜달은] 즉시 사리를 조금 북쪽으로 옮겨, 간문제가 만든 탑에 대면하여 서쪽에 1층짜리 탑을 지어 올렸다.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16년(391)에 또 사문(沙門) 승상가(僧尙伽)에게 [탑을] 3층으로 만들도록 하였는데, 바로 고조가 연 탑이다. 처음에 4척 쯤 땅을 파니, 큰 굴[龍窟]과 옛날사람들이 넣어 둔 금은으로 만든 귀고리와 팔찌 비녀 족집게 등의 여러 보물이 나왔다. 땅을 판 것이 9척 조금 넘게 깊어지니, 바야흐로 석상(石磉)에 이르렀다. 석상 아래에는 석함(石函)이 있었는데, 석함 안에서는 철호(鐵壺)가 나왔고, 철호 안에는 은감(銀坩)이 담겨져 있었다. 은감 안에는 금붙이로 아로새겨 만든 항아리가 있었는데, 세 개의 사리가 담겨져 있었다. [사리는] 좁쌀만한 크기에 동그랬고 광택이 나며 깨끗했다. 석함 안에는 또 유리주발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사리 네 알과 머리카락 그리고 손톱이 나왔다. 손톱은 4조각이 나왔는데, 모두 침향(沉香) 빛이 되어 있었다. 그 달 27일이 되자, 고조가 또 사원에 이르러 예배하였는데,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고 천하에 대사면의 명령을 내렸다. 이날 금주발[金鉢]에 물을 채우고 사리를 띄웠는데, 그중 가장 작은 것이 주발 안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고조가 예를 갖추어 수십 배(拜)를 드렸더니, 사리가 마침내 주발 안에서 빛을 발하며 오랫동안 선회하더니 주발의 한 가운데 이르러 멈추었다. 고조가 대승정(大僧正) 혜념(慧念)에게 묻기를, “오늘 본 것이 불가사의한 것인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혜념이 답하여 말하기를, “법신(法身)주 003
각주 003)
法身: 三身佛의 하나. 다르마카야 Dhaarmakaya. J. B. 노스는 삼신불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인간의 역사에서 고타마 붓다가 차지하는 역할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고타마의 추종자들은 역사상의 인물 고타마에게서 천상의 보살이 지상에 내려온 모습을 찾아내었다. 즉, 지상에 나타난 고타마의 모습은 천상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보살의 “환영”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천상의 보살(“축복된 몸”을 가진)은 「실재」 자체(“다르마 본체”, 궁극적인 붓다 실체, 원초적이며 알 수 없는 “空”의 현현 또는 형상 가운데 하나라는 관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붓다는 곧 “三身”(트리카야 Trikaya)이 지상에서 잠시 지나가는 그런 존재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삼신의 첫째가 “法身”(우주적, 절대적인 붓다의 몸)이고, 둘째가 “寶身”(삼보가카야 Sambhogakaya; “붓다가 누리는 기쁨의 몸”)이며, 셋째가 “化身”(應身이라고도 함; 니르마나카야 Nirmanakaya; “지상에 나타난, 또는 현현한 붓다의 몸”)이다. “법신”은 깨우친 불교인에게나 나타나는 것으로, 세상의 근거이며 원천인 본체로서의 붓다를 말한다. 이것은 「眞如」, 「空」과 동일하며 그 안에서 阿賴耶識(아라야-비즈나나 alaya-vijnana), 般若(프라즈나 prajna) 또 涅槃(니르바나 Nirvana)이 활동하고 존속한다. “보신”이란 법신이 천상의 존재, 특히 천사의 여러 부처와 보살로 현현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영적인 실재 또는 힘으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역사의 장에 뛰어 들어 이름과 형상[名色]을 취할 수 있다. “보신”이 그렇게 현현한 것을 “화신”이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역사상의 부처, 즉 고타마이다. “법신”은 미분화된 상태이며 인격을 갖지 않았지만, “보신”은 분화되고 인격적이다. 이러한 교리는 원래 고타마 붓다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도출된 것이지만, 다시 그에게 적용되면서는 고타마도 하나의 신앙대상이 되게 하였다. 만물의 근거인 「眞如」 또는 「空」으로부터 “보신”이 출현하여 阿彌陁(아미타바 Amitabha), 觀世音(아발로키테쉬바라 Avalokitesvara), 菩薩(보디삿트바 Bodhisattva) 등 천상의 존재로 나타난다. 이들은 兜率天(투쉬타 Tushita)에서 머물다가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심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와 역사상의 인물 고타마 붓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타마 붓다는 지상에서 일을 끝내고는 만물의 근원, 즉 법신으로 되돌아갔다(=열반)고 한다(J. B. 노스, 1986: 72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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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변함없이 늘 존재하는데[常住],주 004
각주 004)
常住: 생멸의 변화가 없이 늘 그대로 있음을 지칭하는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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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고 고요히 움직이지 아니합니다.”라고 하였다. 고조가 말하기를, “제자가 사리 하나를 가지고 궁으로 돌아가 공양(供養)하기를 청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대동(大同) 3년] 9월 5일에 이르러 또 사원에서 무애대회를 베풀고, 황태자와 왕과 열후 및 조정의 귀인 등을 보내 [사리를] 받들어 맞아오도록 하였다. 이 날에 풍광이 밝고 온화하였으며 경사가 주시하였는데, 구경하기 위해 모인 자가 백 수십만 명이나 되었다. 늘어놓았던 금은으로 만든 공양 기물 등의 물건 등은 모두 사원에 남겨 공양에 사용하도록 하고, 아울러 1천만 전을 베풀어 사원의 기업으로 삼도록 하였다. [대동(大同)] 4년(538) 9월 15일에 고조는 또다시 사원에 이르러 무차대회를 열고, 두 개의 탑을 세웠는데, 각기 금병과 옥병을 준비하여 그 안에 사리와 손톱과 머리카락을 넣어서 7층으로 된 보탑(七寶塔) 안에 들였다. 다시 돌 상자에 보탑을 넣은 뒤, 나누어 두 개의 탑 아래에 넣었다. 그리고 왕과 열후 비빈과 공주 및 백성 중 부유한 집에서 내어놓은 금(金) 은(銀) 귀고리[鐶], 팔찌[釧] 등의 진보(珍寶)를 채워 쌓았다.

  • 각주 001)
    離石縣: 山西省의 呂梁地區의 呂梁山 中段 西側, 곧 省境 中部의 서측에 위치하였다. 春秋시에는 晉의 땅에 속하였으며, 戰國시에는 趙의 離石邑이었으며, 三晉 西部의 重鎭이었다. 西漢대에 縣을 두었으며, 후한 永和 5년에 西河郡의 治所를 離石으로 옮겼다. 靈帝 末에 郡과 縣 모두 폐지하였다. 曹魏 黃初 3년(222)에 다시 현을 설치하였다. 晉대에는 西河에 속하였으나, 劉淵이 이석현에 할거하여 군대를 일으킨 다음에 마침내 현을 폐지하였다. 北魏의 明帝時에 離石鎭을 설치하였다. 北齊 天保 3년(552)에 昌化縣을 두었으며, 北周 建德 6년에 離石으로 개명하였고, 離石郡의 治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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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洛下: 洛陽城을 지칭함. 南朝 梁의 劉令嫻은 『祭夫徐悱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調逸 許中, 聲高洛下”라고 하였고, 宋代의 蘇軾은 『次韻劉景文周次元寒食同遊西湖』에서 “山西老將詩無敵, 洛下書生語更妍”이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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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法身: 三身佛의 하나. 다르마카야 Dhaarmakaya. J. B. 노스는 삼신불에 관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인간의 역사에서 고타마 붓다가 차지하는 역할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고타마의 추종자들은 역사상의 인물 고타마에게서 천상의 보살이 지상에 내려온 모습을 찾아내었다. 즉, 지상에 나타난 고타마의 모습은 천상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보살의 “환영”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천상의 보살(“축복된 몸”을 가진)은 「실재」 자체(“다르마 본체”, 궁극적인 붓다 실체, 원초적이며 알 수 없는 “空”의 현현 또는 형상 가운데 하나라는 관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붓다는 곧 “三身”(트리카야 Trikaya)이 지상에서 잠시 지나가는 그런 존재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삼신의 첫째가 “法身”(우주적, 절대적인 붓다의 몸)이고, 둘째가 “寶身”(삼보가카야 Sambhogakaya; “붓다가 누리는 기쁨의 몸”)이며, 셋째가 “化身”(應身이라고도 함; 니르마나카야 Nirmanakaya; “지상에 나타난, 또는 현현한 붓다의 몸”)이다. “법신”은 깨우친 불교인에게나 나타나는 것으로, 세상의 근거이며 원천인 본체로서의 붓다를 말한다. 이것은 「眞如」, 「空」과 동일하며 그 안에서 阿賴耶識(아라야-비즈나나 alaya-vijnana), 般若(프라즈나 prajna) 또 涅槃(니르바나 Nirvana)이 활동하고 존속한다. “보신”이란 법신이 천상의 존재, 특히 천사의 여러 부처와 보살로 현현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영적인 실재 또는 힘으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역사의 장에 뛰어 들어 이름과 형상[名色]을 취할 수 있다. “보신”이 그렇게 현현한 것을 “화신”이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역사상의 부처, 즉 고타마이다. “법신”은 미분화된 상태이며 인격을 갖지 않았지만, “보신”은 분화되고 인격적이다. 이러한 교리는 원래 고타마 붓다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도출된 것이지만, 다시 그에게 적용되면서는 고타마도 하나의 신앙대상이 되게 하였다. 만물의 근거인 「眞如」 또는 「空」으로부터 “보신”이 출현하여 阿彌陁(아미타바 Amitabha), 觀世音(아발로키테쉬바라 Avalokitesvara), 菩薩(보디삿트바 Bodhisattva) 등 천상의 존재로 나타난다. 이들은 兜率天(투쉬타 Tushita)에서 머물다가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심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와 역사상의 인물 고타마 붓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타마 붓다는 지상에서 일을 끝내고는 만물의 근원, 즉 법신으로 되돌아갔다(=열반)고 한다(J. B. 노스, 1986: 72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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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常住: 생멸의 변화가 없이 늘 그대로 있음을 지칭하는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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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유살하(劉薩何), 혜달(慧達), 혜달, 간문제, 효무제(孝武帝), 승상가(僧尙伽), 고조, 고조, 고조, 고조, 혜념(慧念), 혜념, 고조, 고조
지명
서하(西河), 이석현(離石縣), 낙하(洛下), 제성(齊城), 단양(丹陽), 회계(會稽), 단양, 월성(越城), 장간리(長干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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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달(慧達)의 생환(生還)과 사리 자료번호 : jo.k_0008_0054_006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