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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지주 : 자로(貲虜)와 월지(月氏)의 여종(餘種)에 대한 설명

  • 국가
    서융(西戎)
자로(貲虜)는 본디 흉노였다. 흉노인들은 노비를 ‘자(貲)’주 001
각주 001)
貲: 이는 ‘資’와도 통하는 말이기 때문에 財産·貲產 등의 뜻을 갖는다. 奴婢를 인격체가 아니라 私有財産으로 여겼던 관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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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불렀다. 건무 연간(25~56)주 002
각주 002)
建武: 後漢 光武帝의 年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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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흉노가 쇠약해지자 그 노비들은 흩어져 금성(金城), 주 003
각주 003)
金城: 金城郡의 치소는 현재 감숙성 蘭州 서북쪽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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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武威), 주 004
각주 004)
武威: 甘肅 凉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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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酒泉) 북쪽의 흑수(黑水) 주 005
각주 005)
黑水: Chavannes(1905: 525)는 이것이 敦煌縣의 黨河 혹은 沙州 부근을 흐르는 강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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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西河) 주 006
각주 006)
西河: Chavannes(1905: 525)는 이것에 대해서 漢代에 黄河 晉陕 양안에 위치해 있던 西河郡이 아니라 黑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강이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黃河의 彎曲 서쪽의 한 지류로 추정했다. 따라서 ‘貲虜’의 분포범위는 서쪽으로는 沙州에서 동쪽으로는 알라샨(賀蘭山) 사이의 지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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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에 숨어 들어갔다. 물과 풀을 따라다니며 가축을 길렀고, 양주(涼州)를 노략질했는데, 부락민이 점차 증가하여 수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은 동부선비(東部鮮卑)와는 다르다. 그 종족은 하나가 아니며 대호(大胡)도 있고 정령(丁令)주 007
각주 007)
丁令: 투르크 계통에 속하는 북방민족으로 丁靈, 丁零, 釘靈 등으로도 표기된다. 일설에 의하면 위진남북조 시대의 勅勒, 수당시대의 鐵勒이 모두 이들의 후예라고 한다. 원래 흉노의 북방에 거주했으나 기원전 3세기 전후한 시기에 바이칼호 일대의 정령은 흉노에게 정복되어 흉노는 丁靈王을 두어 통치하였다. 후한 元和2년(85) 정령은 漢軍은 물론 烏孫·烏桓·鮮卑 등과 연합하여 흉노를 공격하여 西遷케 하였다. 후한대에 정령의 일부가 南遷하여 감숙의 河西 및 황하 중하류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오호십육국 시대에는 山西·河北·河南 등지에 거주하던 丁靈은 翟魏政權을 세웠으나 後燕에 의해 멸망되고, 餘衆은 山西·河北 등지에 散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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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으며, 혹은 강족과도 자주 뒤섞여 산다. 본시 도망한 노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가 교체될 때 그 대인 가운데 단자(檀柘) 주 008
각주 008)
檀柘: Chavannes(1905: 525)는 이것을 ‘檀拓(단탁)’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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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었는데, 그가 사망한 뒤 그 갈래의 대인이 남쪽에 광위(廣魏)영거(令居) 주 009
각주 009)
令居: 前漢 元鼎2년(전115)에 郡이 되었다. 大通河 동쪽 즉 平番縣(현재 甘肅省 永登) 서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史記集解』는 徐廣을 인용하여 “金城에 속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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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계 지역으로 왔다. 독괴(禿瑰)라는 자가 여러 차례 와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양주 [관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지금은 소제(劭提)라는 자가 있는데 혹은 투항해 오기도 하고 혹은 도망쳐 떠나기도 하며 항상 서쪽 지방의 도로에 우환이 되고 있다. 돈황과 서역의 남산(南山) 가운데에는 약강(婼羌)에서부터 서쪽으로 총령에 이르는 수천 리에 걸쳐 월지의 여종(餘種)인 총자강(葱茈羌), 백마강(白馬羌), 황우강(黃牛羌) 등이 있고 각자 추호(酋豪)를 갖고 있다. 북으로는 여러 나라와 접하고 있는데, 그 거리와 광협은 알 수가 없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황우강은 여러 종류로 되어 있으며, 아이를 잉태하여 6개월이 되면 출생하고, 남쪽으로는 백마강과 인접하고 있다고 한다.

  • 각주 001)
    貲: 이는 ‘資’와도 통하는 말이기 때문에 財産·貲產 등의 뜻을 갖는다. 奴婢를 인격체가 아니라 私有財産으로 여겼던 관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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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建武: 後漢 光武帝의 年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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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金城: 金城郡의 치소는 현재 감숙성 蘭州 서북쪽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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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武威: 甘肅 凉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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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黑水: Chavannes(1905: 525)는 이것이 敦煌縣의 黨河 혹은 沙州 부근을 흐르는 강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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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西河: Chavannes(1905: 525)는 이것에 대해서 漢代에 黄河 晉陕 양안에 위치해 있던 西河郡이 아니라 黑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강이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黃河의 彎曲 서쪽의 한 지류로 추정했다. 따라서 ‘貲虜’의 분포범위는 서쪽으로는 沙州에서 동쪽으로는 알라샨(賀蘭山) 사이의 지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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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丁令: 투르크 계통에 속하는 북방민족으로 丁靈, 丁零, 釘靈 등으로도 표기된다. 일설에 의하면 위진남북조 시대의 勅勒, 수당시대의 鐵勒이 모두 이들의 후예라고 한다. 원래 흉노의 북방에 거주했으나 기원전 3세기 전후한 시기에 바이칼호 일대의 정령은 흉노에게 정복되어 흉노는 丁靈王을 두어 통치하였다. 후한 元和2년(85) 정령은 漢軍은 물론 烏孫·烏桓·鮮卑 등과 연합하여 흉노를 공격하여 西遷케 하였다. 후한대에 정령의 일부가 南遷하여 감숙의 河西 및 황하 중하류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오호십육국 시대에는 山西·河北·河南 등지에 거주하던 丁靈은 翟魏政權을 세웠으나 後燕에 의해 멸망되고, 餘衆은 山西·河北 등지에 散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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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檀柘: Chavannes(1905: 525)는 이것을 ‘檀拓(단탁)’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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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令居: 前漢 元鼎2년(전115)에 郡이 되었다. 大通河 동쪽 즉 平番縣(현재 甘肅省 永登) 서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史記集解』는 徐廣을 인용하여 “金城에 속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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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단자(檀柘), 독괴(禿瑰), 소제(劭提)
지명
금성(金城), 무위(武威), 주천(酒泉), 흑수(黑水), 서하(西河), 양주(涼州), , , 광위(廣魏), 영거(令居), 양주, 돈황, 총령, 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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