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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환과 흉노가 연합해 변경을 노략질 해 대군(代郡) 동쪽이 피해를 더 입음

  • 국가
    오환(烏桓)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주 001
각주 001)
光武帝(전6~후57; 재위 25~57): 新末 南陽郡 蔡陽縣(오늘날 湖北省 棗陽縣 서남) 사람으로 이름은 秀, 字는 文叔이다. 형 劉縯과 함께 綠林軍에 가담하였고, 劉玄(更始帝)이 稱帝한 후 太常 偏將軍이 되었다. 更始元年(23)에 王鳳의 군대와 함께 昆陽에서 승리하여 王莽軍의 주력을 격파하였다. 劉縯이 권력투쟁에서 피살된 후 스스로를 감추어 更始帝의 신임을 얻었다. 후에 河北에 파견되어 관리들과 豪族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王郞 등을 진압하였다. 蕭王으로 봉해진 후 更始帝와 단절하고 25년 鄗(현재 河北省 柏鄕縣 북쪽)에서 稱帝하여 年號를 建武라 하였다. 즉위 초 賦稅와 요역을 감면하고 吏員을 줄였으며, 奴婢를 석방하고 수리시설을 확충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功臣들을 죽이지 않고 爵位와 祿을 후히 주는 대신 정치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外戚과 宦官의 정치간여를 금지하였다. 400여 縣을 없애고 內郡의 지방군대를 없앴으며 郡都尉를 폐지하여 지방의 병권을 약화시켰고, 중앙이 직접 통할하는 군대를 확대하였다. 廟號는 世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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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에 오환과 흉노는주 002
각주 002)
『資治通鑑』에 의하면 烏桓과 匈奴 이외에도 鮮卑가 後漢 변경 침입에 동참하였다(『資治通鑑』 卷43 「漢紀35」 〈光武帝 建武 21年(45)條〉: 1400, “烏桓與匈奴·鮮卑連兵爲寇, 代郡以東尤被烏桓之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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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여 [군대를 보내]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니, 대군 동쪽은 더욱 그 피해를 입었다. [오환 사람들이 사는 곳은] 새(塞)와 가까웠기 때문에 아침에 천막을 출발하여 저녁이면 [한나라 변방 군현의] 성곽(城郭)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북변] 5군주 003
각주 003)
五郡: 『資治通鑑』 胡三省注에 의하면 五郡은 代郡·上谷郡·漁陽郡·右北平郡·遼西郡을 지칭한다(『資治通鑑』 卷43 「漢紀35」 〈光武帝建武 21年(45)條〉: 1400, “烏桓與匈奴·鮮卑連兵爲寇, ……五郡民庶, 家受其辜(胡注: 五郡, 謂代郡·上谷·漁陽·右北平·遼西也), 至於郡縣損壞, 百姓流亡, 邊陲蕭條, 無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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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민서(民庶)들은 고통을 당하였고, 군현이 손상되고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유망(流亡)하기에 이르렀다. 상곡[군](上谷郡)의 새외(塞外)에 위치한 백산(白山) 주 004
각주 004)
白山: 上谷郡의 북쪽 경계선에 있던 산으로 현재 內蒙古自治區 張家口市 북쪽에 있다. 丁謙은 현재의 張家口의 察罕陀羅海山이 白山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察罕’은 ‘白’, ‘陀羅海’는 ‘頭’이므로 察罕陀羅海山은 ‘白頭山’의 뜻이며, ‘白山’이라고도 한다(丁謙, 「後漢書·烏桓傳地理考證」, 『浙江圖書館叢書』 第一集(馬長壽, 1962: 140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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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거주했던 오환 집단이] 가장 강성하고 부유하였다.주 005
각주 005)
『三國志』에는 이 단락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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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光武帝(전6~후57; 재위 25~57): 新末 南陽郡 蔡陽縣(오늘날 湖北省 棗陽縣 서남) 사람으로 이름은 秀, 字는 文叔이다. 형 劉縯과 함께 綠林軍에 가담하였고, 劉玄(更始帝)이 稱帝한 후 太常 偏將軍이 되었다. 更始元年(23)에 王鳳의 군대와 함께 昆陽에서 승리하여 王莽軍의 주력을 격파하였다. 劉縯이 권력투쟁에서 피살된 후 스스로를 감추어 更始帝의 신임을 얻었다. 후에 河北에 파견되어 관리들과 豪族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王郞 등을 진압하였다. 蕭王으로 봉해진 후 更始帝와 단절하고 25년 鄗(현재 河北省 柏鄕縣 북쪽)에서 稱帝하여 年號를 建武라 하였다. 즉위 초 賦稅와 요역을 감면하고 吏員을 줄였으며, 奴婢를 석방하고 수리시설을 확충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功臣들을 죽이지 않고 爵位와 祿을 후히 주는 대신 정치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外戚과 宦官의 정치간여를 금지하였다. 400여 縣을 없애고 內郡의 지방군대를 없앴으며 郡都尉를 폐지하여 지방의 병권을 약화시켰고, 중앙이 직접 통할하는 군대를 확대하였다. 廟號는 世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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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資治通鑑』에 의하면 烏桓과 匈奴 이외에도 鮮卑가 後漢 변경 침입에 동참하였다(『資治通鑑』 卷43 「漢紀35」 〈光武帝 建武 21年(45)條〉: 1400, “烏桓與匈奴·鮮卑連兵爲寇, 代郡以東尤被烏桓之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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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五郡: 『資治通鑑』 胡三省注에 의하면 五郡은 代郡·上谷郡·漁陽郡·右北平郡·遼西郡을 지칭한다(『資治通鑑』 卷43 「漢紀35」 〈光武帝建武 21年(45)條〉: 1400, “烏桓與匈奴·鮮卑連兵爲寇, ……五郡民庶, 家受其辜(胡注: 五郡, 謂代郡·上谷·漁陽·右北平·遼西也), 至於郡縣損壞, 百姓流亡, 邊陲蕭條, 無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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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白山: 上谷郡의 북쪽 경계선에 있던 산으로 현재 內蒙古自治區 張家口市 북쪽에 있다. 丁謙은 현재의 張家口의 察罕陀羅海山이 白山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察罕’은 ‘白’, ‘陀羅海’는 ‘頭’이므로 察罕陀羅海山은 ‘白頭山’의 뜻이며, ‘白山’이라고도 한다(丁謙, 「後漢書·烏桓傳地理考證」, 『浙江圖書館叢書』 第一集(馬長壽, 1962: 140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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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三國志』에는 이 단락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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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광무제(光武帝)
지명
후한(後漢), 대군, 한나라, 상곡[군](上谷郡), 백산(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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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환과 흉노가 연합해 변경을 노략질 해 대군(代郡) 동쪽이 피해를 더 입음 자료번호 : jo.k_0003_0120_00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