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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군(巴郡)의 장흡(張翕)이 인심을 얻어 이인(夷人)들이 죽은뒤 장례를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줌

  • 국가
    공도이(邛都夷)
영평(永平) 원년(58) 고복이(姑復夷)주 001
각주 001)
姑復: 丁謙은 四川省 塩源縣의 東南으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水經注』 권37 「淹水條」의 주석에서 楊守敬은 雲南省 永滕縣으로 비정하였다. 『漢書』 권28 「地理志」 上에 姑復은 남쪽으로 池滭을 임하고 있다고 하고 있어 雲南永滕縣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早稻田大學 長江文化硏究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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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익주자사가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고 그 거수(渠帥)를 참수하여 머리를 경사(京師)로 보냈다. 후에 태수 파군장흡(張翕)이 정치와 교화가 깨끗하고 공평하여, 이인(夷人)들의 인심을 얻었다. 17년간 군태수로 재직하다가 사망하자, 이인(夷人)들이 숭모하여 부모를 장사지내는 것처럼 하였다. 소기(蘇祈)의 수인(叟人) 200여 인이 소와 양을 올려 상례를 치루었는데, 장흡의 고향인 안한현(安漢縣)에까지 와서 분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주 002
각주 002)
蘇祈는 越雟郡의 屬縣으로 현재 四川省 西昌市이다. 安漢은 巴郡의 屬縣. 현재 四川省 南充市 北淸泉垻인데, 西漢시기 처음 설치되었다가 王莽 때에 安新縣으로 바뀌었다가 후한에 다시 복원되었다. 後漢 初平 원년(189) 巴郡의 통치를 받다가 建安 6년(201)에는 巴西郡에 통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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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가] 조서를 내려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사당(祠堂)을 세우도록 하였다.

  • 각주 001)
    姑復: 丁謙은 四川省 塩源縣의 東南으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水經注』 권37 「淹水條」의 주석에서 楊守敬은 雲南省 永滕縣으로 비정하였다. 『漢書』 권28 「地理志」 上에 姑復은 남쪽으로 池滭을 임하고 있다고 하고 있어 雲南永滕縣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早稻田大學 長江文化硏究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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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蘇祈는 越雟郡의 屬縣으로 현재 四川省 西昌市이다. 安漢은 巴郡의 屬縣. 현재 四川省 南充市 北淸泉垻인데, 西漢시기 처음 설치되었다가 王莽 때에 安新縣으로 바뀌었다가 후한에 다시 복원되었다. 後漢 初平 원년(189) 巴郡의 통치를 받다가 建安 6년(201)에는 巴西郡에 통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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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장흡(張翕), 장흡
지명
고복, 익주, 파군, 소기(蘇祈), 안한현(安漢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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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군(巴郡)의 장흡(張翕)이 인심을 얻어 이인(夷人)들이 죽은뒤 장례를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줌 자료번호 : jo.k_0003_0116_009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