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공도이(邛都夷)가 개척되어 공도현(邛都縣)이 된 후 이후 월수군(越嶲郡)으로 명칭이 변경됨

  • 국가
    공도이(邛都夷)
공도이(邛都夷)는 무제가 개척하여 공도현(邛都縣)으로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함몰하여 늪지가 되어 버려, ‘공지(邛池)’라고 이름지어졌다. 남방 사람들은 ‘공하(邛河)’라고 하였다.주 001
각주 001)
邛河: 李賢注에 여러 가지 전적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雟州 越雟縣 동남쪽에 있다. 『南中八郡志」에 邛河는 강안을 따라 20여 리 정도 들어가며 깊이는 백여 장이다. 큰 물고기가 많은데 길이는 1, 2장으로 머리부분이 특히 크고 멀리서 보면 쇠도끼를 이고 있는 모습이다. 李膺의 『益州記』: 邛都縣 아래에 늙은 노파가 하나 살고 있는데, 집이 가난하고 외로워 밥을 먹을 때마다 문득 작은 뱀이 머리 위에 뿔을 이고 침상 사이에 나타났는데, 노파가 이를 가엾게 여겨 그것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나중에 점차 커서 마침내 그 길이가 1장을 넘게 되었다. 그 고을의 현령에게는 준마가 있었는데, 마침내 뱀이 그것을 물어 죽였다. 현령이 이 일로 크게 분하여 노파에게 뱀이 나오는 곳을 물었다. 노파는 침상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 현령이 즉시 땅을 파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현령은 다시 분노의 대상을 옮겨 노파를 죽였다. 뱀이 이에 사람의 입을 빌려 신비한 말로 현령을 꾸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내 어미를 죽인 것이냐? 마땅히 어미를 위해 복수할 것이다.’ 이후 밤마다 문득 우뢰 같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기도 한 것이 들리기를 40일간이나 지속되었는데, 백성들이 서로 쳐다보며 모두 놀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들 머리에는 어찌하여 물고기를 얹고 있는 것이요?’ 이 날 밤 사방 40리 지역과 성이 한꺼번에 함께 꺼져서 호수가 되니 그 지방 사람들이 이것을 일러 ‘陷河’라고 하였다. 오직 노파의 집만 아무 해가 없었는데,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때 반드시 그 집에 의지하는데, 풍랑이 있을 때마다 바로 그 집 주변에 머물면 편안해져서 다른 재앙이 없게 된다. 바람이 고요하고 물이 맑으면 성곽과 보루가 솟아 있는 것까지도 볼 수 있다. 오늘날 물이 얕아지자 저 지역의 토착민들은 물 속에 들어가 옛 목재를 건져오는데 견고하여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검은 광택은 옻칠을 한 것과 같아 오늘날 호사가들은 이것으로 베개를 만들어 서로에게 선물한다(在今雟州越雟縣東南. 南中八郡志曰: “邛河縱廣岸二十里, 深百餘丈. 多大魚, 長一二丈, 頭特大, 遙視如戴鐵釜狀.” 李膺益州記云: “邛都縣下有一老姥, 家貧孤獨, 每食, 輒有小蛇頭上戴角在床閒, 姥憐之飴之. 後稍長大, 遂長丈餘. 令有駿馬, 蛇遂吸殺之. 令因大忿(姥)恨, 責[姥]出蛇. 姥云在床下. 令卽掘地, 愈深愈大, 而無所見. 令又遷怒殺姥. 蛇乃感人以靈言瞋令: ‘何殺我母? 當爲母報讎.’ 此後每夜輒聞若雷若風, 四十許日, 百姓相見咸驚語: ‘汝頭那忽戴魚?’ 是夜方四十里與城一時俱陷爲湖, 土人謂之爲‘陷河’. 唯姥宅無恙, 訖今猶存. 漁人採捕, 必依止宿, 每有風浪, 輒居宅側, 恬靜無它. 風靜水淸, 猶見城郭樓櫓畟然. 今水淺時, 彼土人沒水取得舊木, 堅貞, 光黑如漆, 今好事人以爲枕相贈.” 畟音測.).”
닫기
후에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며, 원정(元鼎) 6년에 한(漢)의 군사가 수수(嶲水)를 넘어 정벌하여 월수군(越雟郡)이라 하였다.주 002
각주 002)
雟水: 李賢注에서 雟水는 당시 雟州 邛部縣 서남쪽에 있는 雟山 아래에서 발원한다. 『漢書』 「地理志」에서는 雟山를 넘어가서 군을 설치했으므로 그렇게 명명한 것이라고 하였다(雟水源出今雟州邛部縣西南雟山下. 前書地理志曰, 言其越雟水以置郡, 故名焉.).
닫기
그 토지가 평평한 들판으로 도전(稻田)이 있었다. 청령현(靑蛉縣) 우동산(禺同山)에 벽계신(碧雞神)과 금마사(金馬社)가 있어 때때로 모습을 드러낸다.주 003
각주 003)
靑蛉縣: 현재 雲南省 大姚縣 부근. 禺同山: 현 雲南 大姚縣 東北 紫丘山. 王褒의 〈碧雞頌〉에서 “持節使 王褒가 남쪽 산벼랑을 보고 금빛 눈동자를 가진 신마와 푸른 닭을 공손히 옮겨 남쪽의 황무지에 안치하였네. 계곡으로 깊이 들어가 산골짜기로 돌아드니 인간의 마을 아니네. 귀의하고 귀의하리니 한실의 덕이 무궁하기 때문이라네. 당우의 덕을 겸비하였고 그 은택은 삼황과 짝을 이루는 구나.”라고 읊었다. 『華陽國志』에는 “푸른 닭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주 본다. 『漢書音義』에 금과 같은 모습은 말과 유사하며, 청옥과 같은 모습은 닭과 비슷하다.”고 하였다(王褒碧雞頌曰: “持節使王褒謹拜南崖, 敬移金精神馬縹碧之雞, 處南之荒. 深谿回谷, 非土之鄕. 歸來歸來, 漢德無疆. (廉平)[廉乎]唐虞, 澤配三皇.” 華陽國志曰: “碧雞光景, 人多見之.” 前書音義曰: “金形似馬, 碧形似雞也.”).
닫기
그 지역의 풍속이 놀고 방탕하는 것이 많고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데, 대체로 장가(牂柯)와 유사하였다. 공도이(邛都夷)의 호수(豪帥)들은 방종스러워, 이들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 각주 001)
    邛河: 李賢注에 여러 가지 전적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雟州 越雟縣 동남쪽에 있다. 『南中八郡志」에 邛河는 강안을 따라 20여 리 정도 들어가며 깊이는 백여 장이다. 큰 물고기가 많은데 길이는 1, 2장으로 머리부분이 특히 크고 멀리서 보면 쇠도끼를 이고 있는 모습이다. 李膺의 『益州記』: 邛都縣 아래에 늙은 노파가 하나 살고 있는데, 집이 가난하고 외로워 밥을 먹을 때마다 문득 작은 뱀이 머리 위에 뿔을 이고 침상 사이에 나타났는데, 노파가 이를 가엾게 여겨 그것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나중에 점차 커서 마침내 그 길이가 1장을 넘게 되었다. 그 고을의 현령에게는 준마가 있었는데, 마침내 뱀이 그것을 물어 죽였다. 현령이 이 일로 크게 분하여 노파에게 뱀이 나오는 곳을 물었다. 노파는 침상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 현령이 즉시 땅을 파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현령은 다시 분노의 대상을 옮겨 노파를 죽였다. 뱀이 이에 사람의 입을 빌려 신비한 말로 현령을 꾸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내 어미를 죽인 것이냐? 마땅히 어미를 위해 복수할 것이다.’ 이후 밤마다 문득 우뢰 같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기도 한 것이 들리기를 40일간이나 지속되었는데, 백성들이 서로 쳐다보며 모두 놀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들 머리에는 어찌하여 물고기를 얹고 있는 것이요?’ 이 날 밤 사방 40리 지역과 성이 한꺼번에 함께 꺼져서 호수가 되니 그 지방 사람들이 이것을 일러 ‘陷河’라고 하였다. 오직 노파의 집만 아무 해가 없었는데,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때 반드시 그 집에 의지하는데, 풍랑이 있을 때마다 바로 그 집 주변에 머물면 편안해져서 다른 재앙이 없게 된다. 바람이 고요하고 물이 맑으면 성곽과 보루가 솟아 있는 것까지도 볼 수 있다. 오늘날 물이 얕아지자 저 지역의 토착민들은 물 속에 들어가 옛 목재를 건져오는데 견고하여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검은 광택은 옻칠을 한 것과 같아 오늘날 호사가들은 이것으로 베개를 만들어 서로에게 선물한다(在今雟州越雟縣東南. 南中八郡志曰: “邛河縱廣岸二十里, 深百餘丈. 多大魚, 長一二丈, 頭特大, 遙視如戴鐵釜狀.” 李膺益州記云: “邛都縣下有一老姥, 家貧孤獨, 每食, 輒有小蛇頭上戴角在床閒, 姥憐之飴之. 後稍長大, 遂長丈餘. 令有駿馬, 蛇遂吸殺之. 令因大忿(姥)恨, 責[姥]出蛇. 姥云在床下. 令卽掘地, 愈深愈大, 而無所見. 令又遷怒殺姥. 蛇乃感人以靈言瞋令: ‘何殺我母? 當爲母報讎.’ 此後每夜輒聞若雷若風, 四十許日, 百姓相見咸驚語: ‘汝頭那忽戴魚?’ 是夜方四十里與城一時俱陷爲湖, 土人謂之爲‘陷河’. 唯姥宅無恙, 訖今猶存. 漁人採捕, 必依止宿, 每有風浪, 輒居宅側, 恬靜無它. 風靜水淸, 猶見城郭樓櫓畟然. 今水淺時, 彼土人沒水取得舊木, 堅貞, 光黑如漆, 今好事人以爲枕相贈.” 畟音測.).”
     바로가기
  • 각주 002)
    雟水: 李賢注에서 雟水는 당시 雟州 邛部縣 서남쪽에 있는 雟山 아래에서 발원한다. 『漢書』 「地理志」에서는 雟山를 넘어가서 군을 설치했으므로 그렇게 명명한 것이라고 하였다(雟水源出今雟州邛部縣西南雟山下. 前書地理志曰, 言其越雟水以置郡, 故名焉.).
     바로가기
  • 각주 003)
    靑蛉縣: 현재 雲南省 大姚縣 부근. 禺同山: 현 雲南 大姚縣 東北 紫丘山. 王褒의 〈碧雞頌〉에서 “持節使 王褒가 남쪽 산벼랑을 보고 금빛 눈동자를 가진 신마와 푸른 닭을 공손히 옮겨 남쪽의 황무지에 안치하였네. 계곡으로 깊이 들어가 산골짜기로 돌아드니 인간의 마을 아니네. 귀의하고 귀의하리니 한실의 덕이 무궁하기 때문이라네. 당우의 덕을 겸비하였고 그 은택은 삼황과 짝을 이루는 구나.”라고 읊었다. 『華陽國志』에는 “푸른 닭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주 본다. 『漢書音義』에 금과 같은 모습은 말과 유사하며, 청옥과 같은 모습은 닭과 비슷하다.”고 하였다(王褒碧雞頌曰: “持節使王褒謹拜南崖, 敬移金精神馬縹碧之雞, 處南之荒. 深谿回谷, 非土之鄕. 歸來歸來, 漢德無疆. (廉平)[廉乎]唐虞, 澤配三皇.” 華陽國志曰: “碧雞光景, 人多見之.” 前書音義曰: “金形似馬, 碧形似雞也.”).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무제
지명
공도현(邛都縣), 공지(邛池), 공하(邛河), 한(漢), 수수(嶲水), 월수군(越雟郡), 청령현(靑蛉縣), 우동산(禺同山), 장가(牂柯)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공도이(邛都夷)가 개척되어 공도현(邛都縣)이 된 후 이후 월수군(越嶲郡)으로 명칭이 변경됨 자료번호 : jo.k_0003_0116_009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