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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會稽) 밖에 20여개의 나라

  • 국가
    왜(倭)
회계(會稽)의 바다 바깥에 동제인(東鯷人)주 001
각주 001)
“東鯷人”은 현재까지 밝혀진 것이 없다. ‘鯷’는 물고기 ‘메기’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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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는데, [이들은] 나뉘어져서 20여 나라를 이루었다. 또 이주(夷洲) 주 002
각주 002)
夷洲: 지금의 중국 남부의 臺灣島(臺灣省)을 가리킨다. 漢代에서 南朝時代까지 夷洲로 불렀으나, 隋代(581~ 618)에 流求로 부르기도 하였다(譚其驤, 1997: 286, 石原道博, 2005: 59). 그밖에도 이민족이 사는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용어로 고유명사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나 현재의 오키나와로 보는 주장도 있다. 저본의 주석에 따르면, 沈瑩의 『臨海水土志』에, “夷洲在臨海東南, 去郡二千里. 土地無霜雪, 草木不死. 四面是山谿. 人皆髠髮穿耳, 女人不穿耳. 土地饒沃, 既生五穀, 又多魚肉. 有犬, 尾短如麕尾狀. 此夷舅姑子婦臥息共一大牀, 略不相避. 地有銅鐵, 唯用鹿格爲矛以戰鬬, 摩礪青石以作矢鏃. 取生魚肉雜貯大瓦器中, 以鹽鹵之, 歷月所日, 乃啖食之, 以爲上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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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澶洲) 주 003
각주 003)
澶洲: 탐라, 즉 제주도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石原道博, 2005: 59). 澶洲는 『三國志』 卷47 「孫權傳」: 1136에는 “亶州”로 기재되어 있고, 同書 권58 「陸遜傳」: 1350과 同書 권60 「全琮傳」: 1382에는 “夷州”와 병기된 것이 澶州가 아닌 “珠崖”(지금의 海南省 海口市 지역)이다. 澶은 ‘멀 단’, ‘고요할 전’이라는 두 가지 음을 갖는데, 의미상으로 보면 “멀 단”을 택해서 단주로 읽는 편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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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다. 전해 내려온 말에 “진시황(秦始皇) 주 004
각주 004)
秦始皇: 기원전 221년에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秦나라의 始皇帝를 가리킨다. 그 治世는 기원전 246년에서 기원전 210년까지 37년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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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사(方士)주 005
각주 005)
方士: 중국 고대에 스스로 仙煉丹을 찾아서 不老長生을 추구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方術之士 혹은 道士라고도 하였다. 『史記』 권28 「封禪書」에 “鄒衍以陰陽主運顯於諸侯, 而燕齊海上之方士傳其術不能通.”에서 처음으로 方士란 말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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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徐福) 주 006
각주 006)
徐福: 秦의 方士로서 齊(지금의 山東省) 지역의 사람이다. 『史記』 등의 서적에는 “徐巿”로 씌어져 있다. 徐福의 入海求仙에 관한 내용은 『史記』 권6 「始皇本紀」: 247에 보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旣已, 齊人徐巿等上書, 言海中有三神山, 名曰蓬萊·方丈·瀛洲, 僊人居之, 請得齋戒, 與童男女求之. 於是遣徐巿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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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시켜서 남녀 아이들[童] 수천 명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서 봉래(蓬萊)주 007
각주 007)
蓬萊: 신선이 산다고 하는 상상 속의 섬으로 봉래산이라고도 한다. 渤海에 있다고 전해지지만, 徐福의 전승과 함께 동아시아 도처에 관련된 지명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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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신선(神仙)을 찾게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서복은 [뜻을 이루지 못한 죄를 물어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감히 돌아오지 못하고, 마침내 이 주(洲)들에 머무르게 되었으며, 그들은 대대로 이어져서 수만 가(家)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인민이 때로는 회계(會稽)에 와서 교역하기도 하였다. 회계 동야현(東冶縣) 사람 중에 바다에 들어가서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단주(澶洲)에 도착한 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있는 곳이 대단히 멀어서, 왕래할 수가 없다.주 008
각주 008)
이와 같은 내용의 기사가 『三國志』 卷47 「孫權傳」: 1136에는 “黃龍二年(230), 遣將軍衛溫·諸葛職將甲士萬人浮海求夷洲及亶州. 亶州在海中, 長老傳言秦始皇帝遣方士徐福將童男女數千人入海, 求蓬萊神山及仙藥, 止此洲不還. 世世承有數萬家, 其上人民, 時有至會稽貨布, 會稽東縣人海行, 亦有遭風流移至亶州者. 所在絶遠, 卒不可得之, 但得夷洲數千人還”이라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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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東鯷人”은 현재까지 밝혀진 것이 없다. ‘鯷’는 물고기 ‘메기’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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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夷洲: 지금의 중국 남부의 臺灣島(臺灣省)을 가리킨다. 漢代에서 南朝時代까지 夷洲로 불렀으나, 隋代(581~ 618)에 流求로 부르기도 하였다(譚其驤, 1997: 286, 石原道博, 2005: 59). 그밖에도 이민족이 사는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용어로 고유명사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나 현재의 오키나와로 보는 주장도 있다. 저본의 주석에 따르면, 沈瑩의 『臨海水土志』에, “夷洲在臨海東南, 去郡二千里. 土地無霜雪, 草木不死. 四面是山谿. 人皆髠髮穿耳, 女人不穿耳. 土地饒沃, 既生五穀, 又多魚肉. 有犬, 尾短如麕尾狀. 此夷舅姑子婦臥息共一大牀, 略不相避. 地有銅鐵, 唯用鹿格爲矛以戰鬬, 摩礪青石以作矢鏃. 取生魚肉雜貯大瓦器中, 以鹽鹵之, 歷月所日, 乃啖食之, 以爲上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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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澶洲: 탐라, 즉 제주도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石原道博, 2005: 59). 澶洲는 『三國志』 卷47 「孫權傳」: 1136에는 “亶州”로 기재되어 있고, 同書 권58 「陸遜傳」: 1350과 同書 권60 「全琮傳」: 1382에는 “夷州”와 병기된 것이 澶州가 아닌 “珠崖”(지금의 海南省 海口市 지역)이다. 澶은 ‘멀 단’, ‘고요할 전’이라는 두 가지 음을 갖는데, 의미상으로 보면 “멀 단”을 택해서 단주로 읽는 편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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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秦始皇: 기원전 221년에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秦나라의 始皇帝를 가리킨다. 그 治世는 기원전 246년에서 기원전 210년까지 37년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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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方士: 중국 고대에 스스로 仙煉丹을 찾아서 不老長生을 추구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方術之士 혹은 道士라고도 하였다. 『史記』 권28 「封禪書」에 “鄒衍以陰陽主運顯於諸侯, 而燕齊海上之方士傳其術不能通.”에서 처음으로 方士란 말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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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徐福: 秦의 方士로서 齊(지금의 山東省) 지역의 사람이다. 『史記』 등의 서적에는 “徐巿”로 씌어져 있다. 徐福의 入海求仙에 관한 내용은 『史記』 권6 「始皇本紀」: 247에 보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旣已, 齊人徐巿等上書, 言海中有三神山, 名曰蓬萊·方丈·瀛洲, 僊人居之, 請得齋戒, 與童男女求之. 於是遣徐巿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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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蓬萊: 신선이 산다고 하는 상상 속의 섬으로 봉래산이라고도 한다. 渤海에 있다고 전해지지만, 徐福의 전승과 함께 동아시아 도처에 관련된 지명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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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이와 같은 내용의 기사가 『三國志』 卷47 「孫權傳」: 1136에는 “黃龍二年(230), 遣將軍衛溫·諸葛職將甲士萬人浮海求夷洲及亶州. 亶州在海中, 長老傳言秦始皇帝遣方士徐福將童男女數千人入海, 求蓬萊神山及仙藥, 止此洲不還. 世世承有數萬家, 其上人民, 時有至會稽貨布, 會稽東縣人海行, 亦有遭風流移至亶州者. 所在絶遠, 卒不可得之, 但得夷洲數千人還”이라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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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진시황(秦始皇), 서복(徐福), 서복
지명
회계(會稽), 이주(夷洲), 단주(澶洲), 회계(會稽), 회계, 동야현(東冶縣), 단주(澶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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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會稽) 밖에 20여개의 나라 자료번호 : jo.k_0003_0115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