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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에 군주가 없는 틈을 타 비미호(卑彌呼)가 왕위에 오름

 
  • 국가왜(倭)
환제(桓帝)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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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帝: 후한의 제11대 황제이다. 이름은 劉志이고, 치세는 146~167년의 21년간이다.

영제(靈帝)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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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帝: 후한의 제12대 황제이다. 이름은 劉宏이고, 치세는 167~189년의 22년간이다.

의 치세에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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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靈間”이라는 표현은 후한 말의 난세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므로 반드시 그 시기로 한정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따라서 卑彌呼가 즉위한 시기보다 좀 더 앞선 시기인 3세기 초기 상황으로 보기도 한다.

왜국(倭國)에서 대란(大亂)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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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國大亂: 180년대를 중심으로 九州地域부터 關東地域에 걸쳐 발생하였던 大亂을 말한다. 이 대란의 흔적을 고고학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北部九州 내부에서는 전쟁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으나, 北部九州에서 東部九州를 잇는 지역에서 봉수대를 포함하는 高地性 集落이 조성되었다. 이는 동쪽, 즉 畿內와 瀨戶內 등으로부터의 군사적 압박에 대하여 北部九州가 대비하였음을 보여 준다. 한편 瀨戶內 연안부에서도 바다에 면한 高地性 集落이 조성된 예가 많다. 또한 2세기 말에서 3세기 전반에 걸친 奈良縣 櫻井市의 纏向遺跡에서는 동쪽으로는 關東에서, 서쪽으로는 北部九州에서 반입된 토기가 전체 토기의 15%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 유적이 이 시기에 九州에서 關東에 이르는 인적, 물적 교류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한편, 濃尾平野를 중심으로 한 일본 中部(東海)地域은 야요이시대 중기까지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1세기 말에 銅鐸(말방울과 같은 실용적인 도구에서 기원한 청동기)이 급격하게 대형화되고 祭器로서 사용된다. 그러한 銅鐸에는 近畿式과 三遠式이 있는데, 東海地域은 三遠式 동탁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2세기 말이 되면 三遠式 銅鐸은 사라지고, 이 지역에서 銅鐸을 생산하던 사람들은 畿內式 銅鐸의 생산조직에 흡수되고 近畿式 銅鐸만 제작된다. 이는 中部地域의 자립성이 畿內勢力에 의해 부정되었음을 상징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야요이시대 후기에 關東地域의 개발이 활발해지고, 각지에서 환호집락이 격증한다. 이러한 집락에서는 東海系 土器가 대량으로 출토되는데, 이는 關東地域의 개발에 東海地域으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이 깊이 관여하였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 시기에 關東地域의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었던 사실도 확인된다.이처럼 2세기 말엽에 해당하는 야요이시대 후기 왜인 사회에서는 北部九州에서 關東에 걸친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國立歷史民俗博物館編, 『倭國亂る』, 朝日新聞社, 1996: 180~181).

이 일어나서 서로 공격하고 치니 오랫동안 군주(君主)가 없었다.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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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에는 “倭國亂, 相攻伐歴年”이라고 되어 있다.

이름이 비미호(卑彌呼)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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卑彌呼: 3세기 초 邪馬臺國의 여왕. 卑彌呼는 히미코(ヒミコ, 日命, 日尊이란 말의 略稱일 것이다.) 또는 히메코(ヒメコ, 姬子)라는 당시 용어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新井白石은 ‘日御子’로서 天皇으로 간주하고 있다(『古史通或問』). 한편 邪馬臺國이 畿內 지역에 있었다고 보는 이른바 大和說에서는 『日本書紀』에 기재되어 있는 神功皇后, 倭姬命 그리고 崇神天皇의 여동생 倭迹迹日百襲姬命(笠井新也) 등으로 비정하고 있고, 九州說에서는 熊襲女酋, 『日本書紀』 神代卷에 보이는 火之戶幡姬兒千千姬命 및 萬幡姬兒玉依姬命, 土蜘蛛田油津媛의 조상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 더불어서 那珂通世와 白鳥庫吉 등이 제기한 熊襲(구마소) 혹은 隼人(하야토)의 女酋란 설도 있다(石原道博, 2005: 49-50). 그러나 那珂나 白鳥는 제국주의시대의 천황관에 입각하여 무녀와 다름없고 중국에 조공한 卑彌呼를 천황의 조상으로 간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라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었지만 시집을 가지 않고 귀신의 도[鬼神道] [주007]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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鬼神道: 『三國志』에는 “鬼道”로 되어 있다. 鬼道는 일반적으로 ‘惑世誣民하는 術法’을 가리킨다. 鬼道라는 용어는 『史記』이후 『明史』까지 폭넓게 나타나지만 鬼神道는 『後漢書』의 이 기사와 『新唐書』에 한 차례 보일 뿐이다. 神은 鬼의 영험한 것을 뜻한다고 하므로 전체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넓게는 중국의 신선사상 그리고 좁게는 후한 말에 유행하였던 張魯의 五斗米道와도 일정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三國志』의 「張魯傳」에서는 漢中地域에서 교세를 떨쳤던 張魯에 대하여, “魯는 漢中에 거점을 두고, 鬼道로써 백성을 가르치고 스스로 師君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한편 魏가 여왕에게 하사한 동경은 三角緣神獸鏡인데, 이 거울은 神仙과 상서로운 동물을 배치한 道敎的인 성격의 거울이다. 이전 시대까지 일본열도에서 제기로 사용된 銅鐸을 대신하여 銅鏡이 새로운 祭儀, 특히 葬送儀禮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이 무렵 일본열도의 수장층들이 신선사상을 수용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를 섬기면서 괴이한 술수[妖]로 사람들을 미혹하였다. [주008]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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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에는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壻.”라고 되어 있다.

이에 [사람들이 그녀를] 공동으로 세워[共立]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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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烏丸鮮卑東夷傳」에서는 이밖에도 “共立”이라는 말이 두 차례 더 쓰였다. 부여조에서 왕인 位宮이 적자가 없었으므로, 사후에 諸加들이 孽子인 麻余를 共立하였다는 기사와 고구려조에서 長子인 拔奇가 不肖하므로 “國人”들이 伊夷模를 共立하였다는 기사이다. 어느 경우나 왕위계승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한 경우이다.

왕으로 삼았다. [그녀의] 시비(侍婢)는 천여 인이었지만, [그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적었다. 단, [그녀에게] 음식을 공급하는 한 남자가 있어서 [그녀의] 말을 전하였다. [그녀의] 거처(居處)인 궁실(宮室), 누관(樓觀) [주010]
각주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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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 형태의 건축물을 뜻한다. 彌生時代의 요시노가리(吉野ヵ里) 유적에서는 높은 망루가 확인되고 있다. 祭殿으로 생각되는 건축물도 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책(城柵)을 [병사들이] 병기(兵器)를 가지고 수위(守衛)하였다. [주011]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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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에는 “有男弟佐治國,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飲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라고 되어 있다.

법속(法俗)이 엄준(嚴峻)하였다.

 

주 001
桓帝: 후한의 제11대 황제이다. 이름은 劉志이고, 치세는 146~167년의 21년간이다.
주 002
靈帝: 후한의 제12대 황제이다. 이름은 劉宏이고, 치세는 167~189년의 22년간이다.
주 003
“桓·靈間”이라는 표현은 후한 말의 난세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므로 반드시 그 시기로 한정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따라서 卑彌呼가 즉위한 시기보다 좀 더 앞선 시기인 3세기 초기 상황으로 보기도 한다.
주 004
倭國大亂: 180년대를 중심으로 九州地域부터 關東地域에 걸쳐 발생하였던 大亂을 말한다. 이 대란의 흔적을 고고학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北部九州 내부에서는 전쟁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으나, 北部九州에서 東部九州를 잇는 지역에서 봉수대를 포함하는 高地性 集落이 조성되었다. 이는 동쪽, 즉 畿內와 瀨戶內 등으로부터의 군사적 압박에 대하여 北部九州가 대비하였음을 보여 준다. 한편 瀨戶內 연안부에서도 바다에 면한 高地性 集落이 조성된 예가 많다. 또한 2세기 말에서 3세기 전반에 걸친 奈良縣 櫻井市의 纏向遺跡에서는 동쪽으로는 關東에서, 서쪽으로는 北部九州에서 반입된 토기가 전체 토기의 15%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 유적이 이 시기에 九州에서 關東에 이르는 인적, 물적 교류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한편, 濃尾平野를 중심으로 한 일본 中部(東海)地域은 야요이시대 중기까지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1세기 말에 銅鐸(말방울과 같은 실용적인 도구에서 기원한 청동기)이 급격하게 대형화되고 祭器로서 사용된다. 그러한 銅鐸에는 近畿式과 三遠式이 있는데, 東海地域은 三遠式 동탁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2세기 말이 되면 三遠式 銅鐸은 사라지고, 이 지역에서 銅鐸을 생산하던 사람들은 畿內式 銅鐸의 생산조직에 흡수되고 近畿式 銅鐸만 제작된다. 이는 中部地域의 자립성이 畿內勢力에 의해 부정되었음을 상징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야요이시대 후기에 關東地域의 개발이 활발해지고, 각지에서 환호집락이 격증한다. 이러한 집락에서는 東海系 土器가 대량으로 출토되는데, 이는 關東地域의 개발에 東海地域으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이 깊이 관여하였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 시기에 關東地域의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었던 사실도 확인된다.이처럼 2세기 말엽에 해당하는 야요이시대 후기 왜인 사회에서는 北部九州에서 關東에 걸친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國立歷史民俗博物館編, 『倭國亂る』, 朝日新聞社, 1996: 180~181).
주 005
『三國志』에는 “倭國亂, 相攻伐歴年”이라고 되어 있다.
주 006
卑彌呼: 3세기 초 邪馬臺國의 여왕. 卑彌呼는 히미코(ヒミコ, 日命, 日尊이란 말의 略稱일 것이다.) 또는 히메코(ヒメコ, 姬子)라는 당시 용어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新井白石은 ‘日御子’로서 天皇으로 간주하고 있다(『古史通或問』). 한편 邪馬臺國이 畿內 지역에 있었다고 보는 이른바 大和說에서는 『日本書紀』에 기재되어 있는 神功皇后, 倭姬命 그리고 崇神天皇의 여동생 倭迹迹日百襲姬命(笠井新也) 등으로 비정하고 있고, 九州說에서는 熊襲女酋, 『日本書紀』 神代卷에 보이는 火之戶幡姬兒千千姬命 및 萬幡姬兒玉依姬命, 土蜘蛛田油津媛의 조상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 더불어서 那珂通世와 白鳥庫吉 등이 제기한 熊襲(구마소) 혹은 隼人(하야토)의 女酋란 설도 있다(石原道博, 2005: 49-50). 그러나 那珂나 白鳥는 제국주의시대의 천황관에 입각하여 무녀와 다름없고 중국에 조공한 卑彌呼를 천황의 조상으로 간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주 007
鬼神道: 『三國志』에는 “鬼道”로 되어 있다. 鬼道는 일반적으로 ‘惑世誣民하는 術法’을 가리킨다. 鬼道라는 용어는 『史記』이후 『明史』까지 폭넓게 나타나지만 鬼神道는 『後漢書』의 이 기사와 『新唐書』에 한 차례 보일 뿐이다. 神은 鬼의 영험한 것을 뜻한다고 하므로 전체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넓게는 중국의 신선사상 그리고 좁게는 후한 말에 유행하였던 張魯의 五斗米道와도 일정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三國志』의 「張魯傳」에서는 漢中地域에서 교세를 떨쳤던 張魯에 대하여, “魯는 漢中에 거점을 두고, 鬼道로써 백성을 가르치고 스스로 師君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한편 魏가 여왕에게 하사한 동경은 三角緣神獸鏡인데, 이 거울은 神仙과 상서로운 동물을 배치한 道敎的인 성격의 거울이다. 이전 시대까지 일본열도에서 제기로 사용된 銅鐸을 대신하여 銅鏡이 새로운 祭儀, 특히 葬送儀禮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이 무렵 일본열도의 수장층들이 신선사상을 수용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주 008
『三國志』에는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壻.”라고 되어 있다.
주 009
『三國志』 「烏丸鮮卑東夷傳」에서는 이밖에도 “共立”이라는 말이 두 차례 더 쓰였다. 부여조에서 왕인 位宮이 적자가 없었으므로, 사후에 諸加들이 孽子인 麻余를 共立하였다는 기사와 고구려조에서 長子인 拔奇가 不肖하므로 “國人”들이 伊夷模를 共立하였다는 기사이다. 어느 경우나 왕위계승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한 경우이다.
주 010
누각 형태의 건축물을 뜻한다. 彌生時代의 요시노가리(吉野ヵ里) 유적에서는 높은 망루가 확인되고 있다. 祭殿으로 생각되는 건축물도 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주 011
『三國志』에는 “有男弟佐治國,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飲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라고 되어 있다.
 
이름
환제(桓帝) , 영제(靈帝) , 비미호(卑彌呼)
지명
왜국(倭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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