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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찬(贊): 한나라 문제(文帝) 때부터의 무제(武帝) 때까지 서역 나라의의 관계를 통한 상황을 설명함

문제(文帝)경제(景帝)의 그윽하고 잠잠한 통치[玄默]는 백성들에게 오세(五世)주 001
각주 001)
五世 : 高祖, 惠帝, 文帝, 景帝, 武帝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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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휴식을 주었고, 온 세상이 부유해져 재정에도 여유가 생겼으며, 군마[士馬]도 강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코뿔소의 뿔[犀]주 002
각주 002)
코뿔소의 뿔에 대해서는 Schafer (1963 : 83-8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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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상아[象]주 003
각주 003)
布 : ‘象’의 誤字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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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모(瑇瑁)주 004
각주 004)
瑇瑁 : 바다거북과에 속하며 그 甲은 細工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열대․아열대 해양에 걸쳐 분포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희귀한 물품이었다(Schafer, 1963 :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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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목도하니 주애(珠崖) 등의 칠군(七郡)주 005
각주 005)
珠崖七郡 : 漢 武帝 元鼎 6년(전111)에 설치된 것으로 南海郡․蒼梧郡․鬱林郡․合浦郡․交趾郡․九真郡․日南郡․珠崖郡․儋耳郡 등을 일컫는다. 오늘날 廣西와 越南 北部가 이들 지역에 해당된다. ‘七郡’은 ‘九郡’이 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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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건립하였고, 구장(枸醬)주 006
각주 006)
枸醬 : 종려科에 속하는 말레이시아 원산의 상록교목인 빈랑나무의 열매(betelnut)로, 다량의 타닌과 알칼로이드․아레콜린 등을 함유하며 조충구제․설사․피부병․두통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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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죽장(竹杖)을 알게 되니 장가(牂柯)·월수(越嶲) 등[의 군]을 열었으며,주 007
각주 007)
『漢書』 卷6 「武帝紀」에 “西南夷를 평정하여 武都․牂柯․越嶲․沈黎․文山郡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오늘날 四川․貴州의 일부 지방이 이들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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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天馬)와 포도(蒲陶)를 듣고서 대완·안식과 소통하게 되었다. 그 뒤 명주(明珠)주 008
각주 008)
明珠 : 영롱한 광택을 내는 眞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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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文甲)주 009
각주 009)
文甲 : 瑇瑁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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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서(通犀)주 010
각주 010)
通犀는 중앙이 白色이고 양쪽 끝이 서로 통하는(通兩頭) 犀角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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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우(翠羽)주 011
각주 011)
翠羽 : 翠鳥의 羽毛이며 고대에 장식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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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진귀한 물건들이 후궁에 가득하게 되고, 포초(蒲梢)·용문(龍文)·어목(魚目)·한혈마(汗血)주 012
각주 012)
孟康에 따르면 이들은 ‘四駿馬’의 이름이라고 한다. ‘蒲捎’는 ‘蒲稍’라고도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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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말이 황문(黃門)주 013
각주 013)
黃門 : 여기서는 宮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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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채웠고, 거상(鉅象)주 014
각주 014)
鉅象 : 즉 巨象(큰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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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師子)·맹견(猛犬)·대작(大雀)과 같은 무리가 바깥 뜰에서 사육되게 되었다. 먼 지방의 진기한 물건들이 사방에서 도달하니, 이에 널리 상림원(上林苑)을 열고, 곤명지(昆明池)주 015
각주 015)
上林苑과 昆明池에 관해서는 前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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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굴착했으며,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가구가 거주하는 궁주 016
각주 016)
千門萬戶之宮 : 이는 太初元年(전104)에 건설된 建章宮을 지칭하며, 未央宮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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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짓고 신명(神明)과 통천(通天)의 망대[臺]주 017
각주 017)
神明通天之臺 : 『漢書』 「武帝紀」에는 元封 2년(전109) 여름 甘泉通天臺를 세웠다는 기록이 보이고, 이에 대해 “높이가 30丈이고 長安城을 바라볼 수 있다”는 顔注가 있다. 또한 『漢書』 「校祀志下」에는 神明臺를 건설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이에 대해 “높이가 50丈이고 위에는 9室이 있다”는 顔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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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세웠으며, 갖가지 휘장주 018
각주 018)
甲乙之帳 : 顔注 : “그 숫자가 하나가 아니며, 甲乙로써 차례로 그것들을 지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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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어서 수주(隨珠)주 019
각주 019)
隨珠和璧 : 隨侯珠와 和氏璧의 幷稱. 傳說에 따르면 古代에 隨國의 姬姓 諸侯가 한 마리 큰 뱀이 상처를 입고 끊어진 것을 보고 藥을 발라서 고쳐주었다고 한다. 그 후 그 뱀이 江에서 明月珠를 물어다 주어 그 은덕에 보답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를 가리켜 隨侯珠라고 하며 靈蛇珠라고도 부른다. 한편 楚人 卞和가 荊山에서 하나의 璞玉을 얻었는데 武王․文王에게 차례로 獻給했으나 모두 돌(石)로 여겼고, 和는 欺君罪를 뒤집어 쓰고 兩足이 잘리는 형을 받았다. 成王이 즉위한 뒤 사람을 시켜 璞을 갈라보니 그 안에 과연 夜光寶玉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일컬어 和氏璧이라 이름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韓非子․和氏』, 『淮南子․覽冥訓』 등에 보인다. 후에 ‘隨珠和璧’은 珍寶 혹은 珍寶 중에서도 上品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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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화벽(和璧)으로 연결[落]주 020
각주 020)
顔注 : “落은 絡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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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천자는 보의(黼依)주 021
각주 021)
黼依 : 古代 帝王이 앉는 寶座 뒤에 黑白色이 섞인 斧形 花紋의 屛風이 비단으로 만들어져 설치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黼依’이라고 불렀다. 顔注 : “依는 扆으로 읽어야 한다. 扆는 小屏風과 같고, 黼 문양으로 되어 있다. 白과 黑[이 섞인 것]을 黼라고 부르며, 또한 도끼(斧) 모양으로 되어 있다. 襲은 중복해서 입는 의복(重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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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등지고 취피(翠被)주 022
각주 022)
翠被 : 翡翠(물총새)의 털(羽)로 만든 背帔. 被는 帔와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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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걸치고, 옥으로 된 탁자에 기대어 그 안에 기거하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주 023
각주 023)
酒池肉林 : 앞의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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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잔치를 열어 사이(四夷)의 손님을 향응하고, 파유(巴俞)주 024
각주 024)
巴俞 : 顔注 : “巴人은 巴州人이고, 俞는 水名이니, 오늘날의 渝州이다. 巴俞의 사람들은 이른바 賨人이니, 힘이 세고 민첩하여 춤추는 데에 능하다. 본시 高祖를 따라 三秦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웠는데, 高祖가 그 춤추는 것을 보기를 기뻐하여 樂人으로 하여금 그것을 익히도록 했으니 이런 연유로 巴俞之樂이 생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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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도로(都盧)주 025
각주 025)
都盧 : 晉灼 : “都盧는 國名이다.” 李奇 : “都盧는 體輕善緣者이다.” 都盧는 원래 南海의 國名인데 그 나라 사람들이 몸이 가벼워서 매달리는 묘기에 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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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중탕극(海中碭極)주 026
각주 026)
海中碭極 : 樂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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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연(漫衍)과 어룡(魚龍)주 027
각주 027)
‘漫衍’과 ‘魚龍’은 모두 雜戱의 명칭이다. 顔師古는 漫衍에 대해서 張衡이 『西京賦』에서 ‘거대한 짐승을 형용하여 하는 놀이’라고 한 것이며, 魚龍에 대해서는 거대한 물고기가 殿前의 물속에 들어가 입에서 뿜어내어 햇빛을 가리면서 재주를 부리는 놀이라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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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저(角抵)주 028
각주 028)
角抵 : 前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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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은 놀이를 보여주었다. 아울러 보내준 선물과 증물, 만 리 먼 길에 필요한 경비, 군대의 자금 등은 헤아리기도 힘들었으니, 사용하기에 부족하게 되자 이에 술거래[酒酤]와 염철(鹽鐵)을 전매하고, 백금을 녹이고 피폐(皮幣)를 만들었으며, 수레와 배를 헤아리고 육축(六畜)에 대해서도 세금을 매기게 되었다. 백성들의 힘이 꺾이고 재력이 고갈되었으며 게다가 흉년까지 겹치니, 도적이 함께 일어나고 도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황제가] 직접 지명한 사신이 처음으로 나가서, 비단옷을 입고 도끼를 들고 군국(郡國)에서 [그 같은 도적들을] 죽여버리니, 그리고 나서야 비로서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무제는] 말년에 마침내 윤대의 땅을 포기하고 애통해하는 조칙을 내렸으니, 어찌 인자하고 성스러운 군주가 후회하지 않았겠는가? 또한 서역과 교통할 때 가까이에는 백룡퇴가 있고 멀리에는 총령이 있으며 신열두통현도의 장애가 있었다. 회남(淮南)주 029
각주 029)
淮南 : 『漢書』 卷64上 「嚴助傳」에는 淮南王이 “越은 方外之地이며 劗髮文身의 주민들입니다. 冠帶의 國法과 度理로서 대해서는 안 됩니다. 三代의 번성함이 있은 이래 胡越은 正朔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습니다. 힘으로써가 아니면 복속시킬 수 없고 위엄으로는 제압할 수는 없으니,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며 다스릴 만한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로 인하여] 중국을 힘들게 하기에 족하지 못합니다.”라고 諫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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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흠(杜欽) 주 030
각주 030)
杜欽 : 杜欽이 大將軍 王鳳에게 말한 내용은 앞의 본문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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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웅(揚雄) 주 031
각주 031)
揚雄 : 『漢書』 卷94下 「匈奴傳下」에는 建平 4년(전3)에 揚雄이 上書한 내용이 나와 있다. “또한 과거에 西域을 도모하고 車師를 제압하고 城郭을 두어서 三十六國을 都護하였지만, 그 비용이 매년 극도로 많이(大萬) 들어가니, 어떻게 康居와 烏孫을 [치기] 위해서 白龍堆를 넘어가 西邊을 공격하겠습니까. 그러니 匈奴만을 제압하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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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한 것처럼 이것들은 모두 천지에 경계와 구역을 지어서 안과 밖을 격절시키는 것이다. 서경(書經)에 “서융(西戎)이 곧 질서가 잡혔다.”고 하였는데, 이는 우왕(禹王)이 가서 질서가 잡힌 것이었으니, 그가 뛰어난 권위를 지니지 못했다면 그들로 하여금 공물을 갖고 오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각주 001)
    五世 : 高祖, 惠帝, 文帝, 景帝, 武帝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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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코뿔소의 뿔에 대해서는 Schafer (1963 : 83-8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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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布 : ‘象’의 誤字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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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瑇瑁 : 바다거북과에 속하며 그 甲은 細工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열대․아열대 해양에 걸쳐 분포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희귀한 물품이었다(Schafer, 1963 :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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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珠崖七郡 : 漢 武帝 元鼎 6년(전111)에 설치된 것으로 南海郡․蒼梧郡․鬱林郡․合浦郡․交趾郡․九真郡․日南郡․珠崖郡․儋耳郡 등을 일컫는다. 오늘날 廣西와 越南 北部가 이들 지역에 해당된다. ‘七郡’은 ‘九郡’이 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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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枸醬 : 종려科에 속하는 말레이시아 원산의 상록교목인 빈랑나무의 열매(betelnut)로, 다량의 타닌과 알칼로이드․아레콜린 등을 함유하며 조충구제․설사․피부병․두통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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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漢書』 卷6 「武帝紀」에 “西南夷를 평정하여 武都․牂柯․越嶲․沈黎․文山郡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오늘날 四川․貴州의 일부 지방이 이들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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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明珠 : 영롱한 광택을 내는 眞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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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文甲 : 瑇瑁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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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通犀는 중앙이 白色이고 양쪽 끝이 서로 통하는(通兩頭) 犀角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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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翠羽 : 翠鳥의 羽毛이며 고대에 장식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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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孟康에 따르면 이들은 ‘四駿馬’의 이름이라고 한다. ‘蒲捎’는 ‘蒲稍’라고도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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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3)
    黃門 : 여기서는 宮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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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4)
    鉅象 : 즉 巨象(큰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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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5)
    上林苑과 昆明池에 관해서는 前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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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6)
    千門萬戶之宮 : 이는 太初元年(전104)에 건설된 建章宮을 지칭하며, 未央宮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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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7)
    神明通天之臺 : 『漢書』 「武帝紀」에는 元封 2년(전109) 여름 甘泉通天臺를 세웠다는 기록이 보이고, 이에 대해 “높이가 30丈이고 長安城을 바라볼 수 있다”는 顔注가 있다. 또한 『漢書』 「校祀志下」에는 神明臺를 건설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이에 대해 “높이가 50丈이고 위에는 9室이 있다”는 顔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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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8)
    甲乙之帳 : 顔注 : “그 숫자가 하나가 아니며, 甲乙로써 차례로 그것들을 지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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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9)
    隨珠和璧 : 隨侯珠와 和氏璧의 幷稱. 傳說에 따르면 古代에 隨國의 姬姓 諸侯가 한 마리 큰 뱀이 상처를 입고 끊어진 것을 보고 藥을 발라서 고쳐주었다고 한다. 그 후 그 뱀이 江에서 明月珠를 물어다 주어 그 은덕에 보답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를 가리켜 隨侯珠라고 하며 靈蛇珠라고도 부른다. 한편 楚人 卞和가 荊山에서 하나의 璞玉을 얻었는데 武王․文王에게 차례로 獻給했으나 모두 돌(石)로 여겼고, 和는 欺君罪를 뒤집어 쓰고 兩足이 잘리는 형을 받았다. 成王이 즉위한 뒤 사람을 시켜 璞을 갈라보니 그 안에 과연 夜光寶玉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일컬어 和氏璧이라 이름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韓非子․和氏』, 『淮南子․覽冥訓』 등에 보인다. 후에 ‘隨珠和璧’은 珍寶 혹은 珍寶 중에서도 上品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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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0)
    顔注 : “落은 絡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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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1)
    黼依 : 古代 帝王이 앉는 寶座 뒤에 黑白色이 섞인 斧形 花紋의 屛風이 비단으로 만들어져 설치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黼依’이라고 불렀다. 顔注 : “依는 扆으로 읽어야 한다. 扆는 小屏風과 같고, 黼 문양으로 되어 있다. 白과 黑[이 섞인 것]을 黼라고 부르며, 또한 도끼(斧) 모양으로 되어 있다. 襲은 중복해서 입는 의복(重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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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2)
    翠被 : 翡翠(물총새)의 털(羽)로 만든 背帔. 被는 帔와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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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3)
    酒池肉林 : 앞의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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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4)
    巴俞 : 顔注 : “巴人은 巴州人이고, 俞는 水名이니, 오늘날의 渝州이다. 巴俞의 사람들은 이른바 賨人이니, 힘이 세고 민첩하여 춤추는 데에 능하다. 본시 高祖를 따라 三秦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웠는데, 高祖가 그 춤추는 것을 보기를 기뻐하여 樂人으로 하여금 그것을 익히도록 했으니 이런 연유로 巴俞之樂이 생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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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5)
    都盧 : 晉灼 : “都盧는 國名이다.” 李奇 : “都盧는 體輕善緣者이다.” 都盧는 원래 南海의 國名인데 그 나라 사람들이 몸이 가벼워서 매달리는 묘기에 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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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6)
    海中碭極 : 樂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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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7)
    ‘漫衍’과 ‘魚龍’은 모두 雜戱의 명칭이다. 顔師古는 漫衍에 대해서 張衡이 『西京賦』에서 ‘거대한 짐승을 형용하여 하는 놀이’라고 한 것이며, 魚龍에 대해서는 거대한 물고기가 殿前의 물속에 들어가 입에서 뿜어내어 햇빛을 가리면서 재주를 부리는 놀이라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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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8)
    角抵 : 前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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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9)
    淮南 : 『漢書』 卷64上 「嚴助傳」에는 淮南王이 “越은 方外之地이며 劗髮文身의 주민들입니다. 冠帶의 國法과 度理로서 대해서는 안 됩니다. 三代의 번성함이 있은 이래 胡越은 正朔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습니다. 힘으로써가 아니면 복속시킬 수 없고 위엄으로는 제압할 수는 없으니,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며 다스릴 만한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로 인하여] 중국을 힘들게 하기에 족하지 못합니다.”라고 諫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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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30)
    杜欽 : 杜欽이 大將軍 王鳳에게 말한 내용은 앞의 본문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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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31)
    揚雄 : 『漢書』 卷94下 「匈奴傳下」에는 建平 4년(전3)에 揚雄이 上書한 내용이 나와 있다. “또한 과거에 西域을 도모하고 車師를 제압하고 城郭을 두어서 三十六國을 都護하였지만, 그 비용이 매년 극도로 많이(大萬) 들어가니, 어떻게 康居와 烏孫을 [치기] 위해서 白龍堆를 넘어가 西邊을 공격하겠습니까. 그러니 匈奴만을 제압하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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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문제(文帝), 경제(景帝), 무제, 두흠(杜欽), 양웅(揚雄), 우왕(禹王)
지명
주애(珠崖), 장가(牂柯), 월수(越嶲), 대완, 안식, 총령, 신열, 두통, 현도
서명
서경(書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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