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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비원치(卑爰疐)가 두 곤미를 겸병하려고 하자 두 곤미는 한나라 도호에 의지함

  • 국가
    오손국(烏孫國)
단회종은 흡후 난서말진장을 죽인 것이 비록 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도를 토벌한 행동과 부합되므로, 그를 견수도위(堅守都尉)주 001
각주 001)
堅守都尉 : 이 직명은 여기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難栖에게 烏孫國을 ‘堅守’하라는 의미에서 붙여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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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자고 상주를 올렸다. [한나라는] 대록·대리·대감을 견책하며 자율미가 살해된 내용을 보고토록 하고 자색 끈이 달린 금인을 빼앗고 검은 끈이 달리 동인(銅印)주 002
각주 002)
銅墨云 : ‘墨云’이라는 단어에는 무엇인가 錯誤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銅印墨綬를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漢舊儀』에는 東漢 光武帝 建武元年(후25)에 정해진 규정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金璽絳綬를 받는 諸侯王 이하, ①金印紫綬, ②銀印青綬, ③銅印墨綬, ④銅印黃綬의 4단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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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바꾸어 주었다. 말진장의 동생 비원치(卑爰疐)는 원래 대곤미를 살해하려고 공모했다가, 8만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강거에 의부하여, 군대를 빌려서 두 곤미를 겸병하려고 도모하였다.주 003
각주 003)
『漢書』 卷94下 「匈奴傳下」에는 “哀帝 建平 2년(전5), 烏孫의 庶子 卑援疐 翕侯의 人衆이 匈奴 西界로 들어와 牛畜을 寇盜하고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單于가 이를 듣고 左大當戶 烏夷泠에게 五千騎를 지휘하여 보내 烏孫을 공격케 하고 數百人을 죽이고 千餘人을 略取하고 牛畜을 끌고 갔다. 卑援疐가 두려워하여 아들 趨逯을 匈奴에 質子로 보내자, 單于가 이를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한나라에] 보고했다. 漢이 中郎將 丁野林과 ﹑副校尉 公乘音을 匈奴에 사신으로 보내 單于를 견책하고, 卑援疐의 質子를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單于가 詔勅을 받들어 그를 돌려보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卑援疐의 활동 및 흉노와의 관계가 「西域傳」에 보이는 卑爰疐와 약간의 차이가 보이기는 하지만 양자가 동일인임은 거의 분명하다. 한편 『漢書』 卷45 「息夫躬傳」에서도 그에 관한 추가 정보를 발견할 수 있다. “烏孫의 두 昆彌는 약한데 卑爰疐는 強盛합니다. 그는 彊煌之地에 머물면서 十萬의 무리를 이끌고, 東으로는 單于와 결맹하여 아들을 侍子로 보냈습니다. 그가 스스로 강성하다고 여겨서 烏〈孫〉就屠가 했던 행적을 좇아서 舉兵南伐하여 烏孫의 세력을 병합하려고 하는데, 烏孫이 병합되면 즉 匈奴가 강성해지고, 그렇게 되면 西域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 기사를 종합해 볼 때 당시 卑援疐의 세력이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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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곤미는 그를 두려워하여 [한나라] 도호와 친밀하게 되고 의지하였다.

  • 각주 001)
    堅守都尉 : 이 직명은 여기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難栖에게 烏孫國을 ‘堅守’하라는 의미에서 붙여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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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銅墨云 : ‘墨云’이라는 단어에는 무엇인가 錯誤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銅印墨綬를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漢舊儀』에는 東漢 光武帝 建武元年(후25)에 정해진 규정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金璽絳綬를 받는 諸侯王 이하, ①金印紫綬, ②銀印青綬, ③銅印墨綬, ④銅印黃綬의 4단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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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漢書』 卷94下 「匈奴傳下」에는 “哀帝 建平 2년(전5), 烏孫의 庶子 卑援疐 翕侯의 人衆이 匈奴 西界로 들어와 牛畜을 寇盜하고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單于가 이를 듣고 左大當戶 烏夷泠에게 五千騎를 지휘하여 보내 烏孫을 공격케 하고 數百人을 죽이고 千餘人을 略取하고 牛畜을 끌고 갔다. 卑援疐가 두려워하여 아들 趨逯을 匈奴에 質子로 보내자, 單于가 이를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한나라에] 보고했다. 漢이 中郎將 丁野林과 ﹑副校尉 公乘音을 匈奴에 사신으로 보내 單于를 견책하고, 卑援疐의 質子를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單于가 詔勅을 받들어 그를 돌려보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卑援疐의 활동 및 흉노와의 관계가 「西域傳」에 보이는 卑爰疐와 약간의 차이가 보이기는 하지만 양자가 동일인임은 거의 분명하다. 한편 『漢書』 卷45 「息夫躬傳」에서도 그에 관한 추가 정보를 발견할 수 있다. “烏孫의 두 昆彌는 약한데 卑爰疐는 強盛합니다. 그는 彊煌之地에 머물면서 十萬의 무리를 이끌고, 東으로는 單于와 결맹하여 아들을 侍子로 보냈습니다. 그가 스스로 강성하다고 여겨서 烏〈孫〉就屠가 했던 행적을 좇아서 舉兵南伐하여 烏孫의 세력을 병합하려고 하는데, 烏孫이 병합되면 즉 匈奴가 강성해지고, 그렇게 되면 西域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 기사를 종합해 볼 때 당시 卑援疐의 세력이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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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단회종, 난서, 말진장, 자율미, 말진장, 비원치(卑爰疐)
지명
, 한나라, 강거,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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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치(卑爰疐)가 두 곤미를 겸병하려고 하자 두 곤미는 한나라 도호에 의지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6_031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