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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오취도(烏就屠)가 광왕(狂王)을 습격한 뒤 곤미로 자립함

  • 국가
    오손국(烏孫國)
처음에 비왕 옹귀미가 오랑캐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 오취도(烏就屠)광왕이 부상을 입었을 때 놀라서 다른 여러 흡후들과 함께 모두 떠나서 북쪽의 산속에 머무르면서, 외갓집인 흉노의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떠들었고, 그래서 무리들이 그에게 돌아갔다. 그 뒤 마침내 광왕을 습격하여 살해한 뒤 곤미로 자립하였다. 한나라는 파강장군(破羌將軍) 신무현(辛武賢) 주 001
각주 001)
辛武賢 : 『史記』 卷22 「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에 따르면, 酒泉太守 辛武賢은 神爵 元年 4월 破羌將軍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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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병사 15,000명을 지휘하여 가도록 파견했다. 그는 돈황에 이르러 사신들을 보내어 길을 조사하고 표지를 세웠으며, 비제후 우물[卑鞮侯井]의 서쪽을 굴착하여 곡식을 운반할 운하[渠]를 개통하고,주 002
각주 002)
卑鞮侯井 : 이에 대해 孟康은 “6개의 大井이니 通渠이다. 그 아래로는 泉流가 湧出하며, 白龍堆 東쪽 土山 아래에 있다.”라는 주석을 첨가하였다. 敦煌 懸泉漢簡에 따르면 당시에는 운하 굴착의 사무를 전담하는 ‘穿渠校尉’가 두어지기도 하였다. 王國維를 비롯한 중국의 학자들은 이 같은 通渠는 일종의 ‘井渠’이고 곧 地下水路인 카레즈(karez)를 굴착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투르판 지방에 카레즈가 도입된 시기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嶋崎昌, 1977 : 343-4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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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려창(居廬倉)주 003
각주 003)
居廬倉 : 거려창은 鄯善國의 수도 즉 伊循城 부근에 두어진 屯田에서 수확된 곡식을 쌓아두는 倉庫였고, 서역을 출입하는 漢의 使臣이나 軍隊를 위한 곡식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1930~1934년에 西北科學考察團이 롭 노르를 조사할 당시 居廬倉 遺址로 보이는 폐허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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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곡식을 쌓은 뒤에 그를 토벌하려고 하였다.

  • 각주 001)
    辛武賢 : 『史記』 卷22 「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에 따르면, 酒泉太守 辛武賢은 神爵 元年 4월 破羌將軍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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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卑鞮侯井 : 이에 대해 孟康은 “6개의 大井이니 通渠이다. 그 아래로는 泉流가 湧出하며, 白龍堆 東쪽 土山 아래에 있다.”라는 주석을 첨가하였다. 敦煌 懸泉漢簡에 따르면 당시에는 운하 굴착의 사무를 전담하는 ‘穿渠校尉’가 두어지기도 하였다. 王國維를 비롯한 중국의 학자들은 이 같은 通渠는 일종의 ‘井渠’이고 곧 地下水路인 카레즈(karez)를 굴착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투르판 지방에 카레즈가 도입된 시기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嶋崎昌, 1977 : 343-4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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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居廬倉 : 거려창은 鄯善國의 수도 즉 伊循城 부근에 두어진 屯田에서 수확된 곡식을 쌓아두는 倉庫였고, 서역을 출입하는 漢의 使臣이나 軍隊를 위한 곡식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1930~1934년에 西北科學考察團이 롭 노르를 조사할 당시 居廬倉 遺址로 보이는 폐허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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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비왕, 옹귀미, 오취도(烏就屠), 광왕, 광왕, 신무현(辛武賢)
지명
한나라, 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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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취도(烏就屠)가 광왕(狂王)을 습격한 뒤 곤미로 자립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6_031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