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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공주가 광왕(狂王)을 해칠 모의를 꾀했으나 실패하였고 한나라가 군대를 보냄

  • 국가
    오손국(烏孫國)
광왕’은 다시 초나라 공주 해우를 부인으로 맞아들여 치미(鴟靡)라는 사내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공주와 사이가 좋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포악하여 [따르는] 무리도 잃어버렸다. 한나라는 위사마(衛司馬)인 위화의(魏和意)와 부후(副候) 임창(任昌) 주 001
각주 001)
衛司馬가 軍職의 일종이었음은 분명하지만 魏和意의 경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료가 없다. 또한 副候라는 직책과 任昌이라는 인물에 대한 언급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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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하여금 질자로 와 있던 아들을 데리고 가도록 했는데, 공주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광왕오손에서도 우환거리가 되었으니 주살하기 쉬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주연을 준비하기로 음모를 꾸몄고, 주연이 끝나자 병사들에게 검을 뽑아서 그를 치도록 했다. [그러나] 검은 옆으로 [비껴서] 맞았고 광왕은 부상을 입은 채 말을 타고 떠나갔다. 그의 아들 세심수(細沈瘦)는 군대를 모아서 위화의임창과 공주를 적곡성에서 포위하였다. 여러 달이 지나서 도호 정길이 여러 나라의 군대를 징발하여 구원하러 가니 드디어 포위를 풀고 가버렸다.주 002
각주 002)
五鳳年間(전57~전54)의 사건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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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는 중랑장 장준(張遵)으로 하여금 약을 갖고 가서 광왕을 치료하고 금 20근과 채색 비단을 하사했다. 그 기회에 위화의임창을 붙들어 사슬에 묶은 뒤, 위리(尉犂)의 감차(檻車)주 003
각주 003)
檻車 : 죄수를 가두어 호송할 때 사용하는 수레. 尉犂는 西域 36국 가운데 하나로 현재 Bugur로 比定되므로, 張遵 등 한나라 관리들이 오손으로 파견되어 위화의와 임창 2인을 사슬로 포박하고 尉犂까지 끌고와 거기서 檻車에 실어 호송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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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실어 장안으로 데리고 와서 참수하였다. 거기장군(車騎將軍)주 004
각주 004)
車騎將軍 : 漢代에는 大將軍․驃騎將軍보다는 낮고 衛將軍보다는 높은 고위군직으로 金印紫綏를 받았으며, 지위는 上卿에 버금가 三公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前漢 때에는 원정이나 정벌할 일이 생기면 부여받는 臨時職이었으나, 後漢 末期에 가게 되면 常職으로 바뀌었다. 최초의 車騎將軍은 文帝 元年에 薄昭를 임명한 것이며, 그 뒤 灌嬰, 周亞夫, 金日磾 등이 임명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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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장사(長史)였던 장옹(張翁)은 [오손에] 남아서 공주와 사자가 광왕을 모살하려고 했던 정황을 조사했는데, 공주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변명을 하자, 장옹은 공주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을 해댔다. 공주가 [주상께] 글월을 올리자 장옹이 귀환하여 사형에 처해졌다. 부사(副使) 계도(季都)는 별도로 의사를 데리고 가서 광왕을 보살피게 했는데, 광왕은 십여명의 기병을 데리고 그를 환송해 주었다. 계도가 귀환했는데, 광왕이 주살되어야 마땅함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받아 잠실(蠶室)로 내려보내졌다.주 005
각주 005)
狂王 : 본명은 泥靡로서 岑陬(軍須靡)와 胡婦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烏孫人들은 翁歸靡(=肥王)가 사망한 뒤 그와 解憂 사이에서 태어난 元貴靡를 옹립하지 않고, ‘故約’에 따라 泥靡를 세우자, 실망한 한나라는 泥靡를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烏孫과 漢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을 우려하여, 중랑장 장준, 장사 장옹, 부사 계도 등을 보내어 泥靡를 위무하는 한편 위화의와 임창 두 사람을 처형시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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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衛司馬가 軍職의 일종이었음은 분명하지만 魏和意의 경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료가 없다. 또한 副候라는 직책과 任昌이라는 인물에 대한 언급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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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五鳳年間(전57~전54)의 사건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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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檻車 : 죄수를 가두어 호송할 때 사용하는 수레. 尉犂는 西域 36국 가운데 하나로 현재 Bugur로 比定되므로, 張遵 등 한나라 관리들이 오손으로 파견되어 위화의와 임창 2인을 사슬로 포박하고 尉犂까지 끌고와 거기서 檻車에 실어 호송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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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車騎將軍 : 漢代에는 大將軍․驃騎將軍보다는 낮고 衛將軍보다는 높은 고위군직으로 金印紫綏를 받았으며, 지위는 上卿에 버금가 三公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前漢 때에는 원정이나 정벌할 일이 생기면 부여받는 臨時職이었으나, 後漢 末期에 가게 되면 常職으로 바뀌었다. 최초의 車騎將軍은 文帝 元年에 薄昭를 임명한 것이며, 그 뒤 灌嬰, 周亞夫, 金日磾 등이 임명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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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狂王 : 본명은 泥靡로서 岑陬(軍須靡)와 胡婦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烏孫人들은 翁歸靡(=肥王)가 사망한 뒤 그와 解憂 사이에서 태어난 元貴靡를 옹립하지 않고, ‘故約’에 따라 泥靡를 세우자, 실망한 한나라는 泥靡를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烏孫과 漢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을 우려하여, 중랑장 장준, 장사 장옹, 부사 계도 등을 보내어 泥靡를 위무하는 한편 위화의와 임창 두 사람을 처형시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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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광왕, 해우, 치미(鴟靡), 위화의(魏和意), 임창(任昌), 광왕, 광왕, 세심수(細沈瘦), 위화의, 임창, 정길, 장준(張遵), 광왕, 위화의, 임창, 장옹(張翁), 광왕, 장옹, 계도(季都), 광왕, 광왕, 계도, 광왕
지명
초나라, 한나라, 오손, 적곡성, 한나라, 위리(尉犂), 장안, 오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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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광왕(狂王)을 해칠 모의를 꾀했으나 실패하였고 한나라가 군대를 보냄 자료번호 : jo.k_0002_0096_031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