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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공주가 오손에 도착한 뒤 고향을 그리워 하며 노래를 지어 부르자 천자가 물품을 보내 줌

  • 국가
    오손국(烏孫國)
공주가 그 나라에 도착하여 스스로 궁실(宮室)을 지어 그곳에 거주하니,주 001
각주 001)
宮室 : 물론 이는 유목민들의 이동식 천막이 아니라 固定式 居住處를 가리킨다. 그녀가 宮室을 ‘自治’했다는 것으로 보아 한 무제가 細君을 보낼 때 그녀를 동반한 “官屬宦官侍御數百人”들이 건축에 동원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들 중에는 工匠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匈奴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宮殿遺址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도 아마 이와 유사한 배경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반면 곤막은 계절이동을 했기 때문에 細君과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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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 곤막과 만나서 술과 음식을 내어놓고 왕의 좌우에 있는 귀족들에게 폐백을 나누어 주었다.주 002
각주 002)
以幣帛賜王左右貴人 : 이 구절 역시 漢-烏孫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일면을 시사한다. 즉 細君이 烏孫의 左右貴人들에게 매년 幣帛을 分賜했다는 것은 그녀가 漢 朝廷으로부터 계속적으로 물자공급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사실은 본문 바로 뒤에서 “격년에 한 번씩 사신을 보내 그녀에게 휘장과 비단과 자수를 보내어 주었다.”는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그녀는 단순히 昆莫을 회유하기 위해 보내진 婚姻政策의 희생물이 아니라, 漢의 물질적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써 烏孫의 지배층 내부에 親漢勢力을 부식하기 위한 메커니즘의 중요한 매개물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북방 유목국가에 보내진 소위 和蕃公主들에 대해서 細君의 詩에서 나타나듯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萬里異國에 억지로 보내져서 평생을 슬프게 살아가는 가련한 여인이라는 식의 ‘감상적’인 접근만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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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막은 나이가 많이 들었고 말도 통하지 않으니 공주는 슬픔에 잠겨 스스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었다.
나의 집에서는 나를 하늘 끝 먼 곳으로 시집보내서,
이국 먼 곳 오손왕에게 맡겼다네.
둥근 천막주 003
각주 003)
穹廬 : 유목민들의 조립식 천막을 지칭한다(江上波夫, 194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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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집으로 삼고, 모포[로 만든 덮개]주 004
각주 004)
旃 : 毛氈 즉 양털로 만든 펠트(felt)를 가리킨다. 유목민들의 천막은 보통 毛氈으로 만들기 때문에 旃帳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史記』 「匈奴列傳」에는 “[동물의] 껍질과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旃裘를 걸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旃裘는 곧 氈裘이며, 짐승의 털로 만든 외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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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담장으로 삼았네.
고기를 밥으로 여기고, 요구르트주 005
각주 005)
酪 : 『史記』 「匈奴列傳」에는 흉노인들이 湩=酪을 즐겼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에 대해 『集解』는 “湩은 乳汁”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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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국으로 삼았다네.
항상 고향을 생각하는 그리움[土思]주 006
각주 006)
土思 : 顔注 : “土思는 슬픈 마음으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後漢書』 卷48 「楊李翟應霍爰徐列傳」에도 “더구나 匈奴로 北征하고 서쪽으로는 三十六國과 접촉을 하게 되니 해마다 服役하게 되고 운송하는 물자의 비용이 과중하게 되었다. 또한 멀리 伊吾․樓蘭․車師․戊己 등지에 둔전을 하게 되니, 사람들은 고향 생각을 품게 되어(民懷土思), 변경 지방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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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속 마음은 상하니,
원컨대 누런 고니가 되어 고향에나 돌아가고파.
 
천자께서 이를 듣고 그녀를 가련히 여겨, 격년에 한 번씩 사신을 보내 그녀에게 휘장주 007
각주 007)
帷帳 : 帷는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으나 꼭대기가 없는 篷帳, 帳은 꼭대기가 있는 篷帳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帷幕床帳 즉 천막의 내외에 사용하는 여러 형태의 휘장(canopy, curtain)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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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비단과 자수를 보내 주었다.

  • 각주 001)
    宮室 : 물론 이는 유목민들의 이동식 천막이 아니라 固定式 居住處를 가리킨다. 그녀가 宮室을 ‘自治’했다는 것으로 보아 한 무제가 細君을 보낼 때 그녀를 동반한 “官屬宦官侍御數百人”들이 건축에 동원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들 중에는 工匠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匈奴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宮殿遺址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도 아마 이와 유사한 배경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반면 곤막은 계절이동을 했기 때문에 細君과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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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以幣帛賜王左右貴人 : 이 구절 역시 漢-烏孫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일면을 시사한다. 즉 細君이 烏孫의 左右貴人들에게 매년 幣帛을 分賜했다는 것은 그녀가 漢 朝廷으로부터 계속적으로 물자공급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사실은 본문 바로 뒤에서 “격년에 한 번씩 사신을 보내 그녀에게 휘장과 비단과 자수를 보내어 주었다.”는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그녀는 단순히 昆莫을 회유하기 위해 보내진 婚姻政策의 희생물이 아니라, 漢의 물질적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써 烏孫의 지배층 내부에 親漢勢力을 부식하기 위한 메커니즘의 중요한 매개물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북방 유목국가에 보내진 소위 和蕃公主들에 대해서 細君의 詩에서 나타나듯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萬里異國에 억지로 보내져서 평생을 슬프게 살아가는 가련한 여인이라는 식의 ‘감상적’인 접근만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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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穹廬 : 유목민들의 조립식 천막을 지칭한다(江上波夫, 194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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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旃 : 毛氈 즉 양털로 만든 펠트(felt)를 가리킨다. 유목민들의 천막은 보통 毛氈으로 만들기 때문에 旃帳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史記』 「匈奴列傳」에는 “[동물의] 껍질과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旃裘를 걸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旃裘는 곧 氈裘이며, 짐승의 털로 만든 외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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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酪 : 『史記』 「匈奴列傳」에는 흉노인들이 湩=酪을 즐겼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에 대해 『集解』는 “湩은 乳汁”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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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土思 : 顔注 : “土思는 슬픈 마음으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後漢書』 卷48 「楊李翟應霍爰徐列傳」에도 “더구나 匈奴로 北征하고 서쪽으로는 三十六國과 접촉을 하게 되니 해마다 服役하게 되고 운송하는 물자의 비용이 과중하게 되었다. 또한 멀리 伊吾․樓蘭․車師․戊己 등지에 둔전을 하게 되니, 사람들은 고향 생각을 품게 되어(民懷土思), 변경 지방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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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帷帳 : 帷는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으나 꼭대기가 없는 篷帳, 帳은 꼭대기가 있는 篷帳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帷幕床帳 즉 천막의 내외에 사용하는 여러 형태의 휘장(canopy, curtain)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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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오손에 도착한 뒤 고향을 그리워 하며 노래를 지어 부르자 천자가 물품을 보내 줌 자료번호 : jo.k_0002_0096_031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