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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월이 반란을 일으켜 한나라가 군대를 일으켰으나 민월왕의 동생인 여선이 영을 죽이고 항복하자 군대를 해산함

  • 국가
    남월(南粤)
무제(武帝) 건원(建元) 4년(전137)이 되자주 001
각주 001)
『漢書』에는 『史記』 “至建元四年卒”과 같이 ‘卒’자가 없다. 武帝 建元 4년은 기원전 137년으로, 조타는 文帝원년에 이미 ‘老夫가 월에 거한 지 49년’이라 했으니, 文帝 23년을 거쳐 景帝 16년, 武帝 建元 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43년이며 趙佗가 20여 세에 龍川令이 되었다고 했으니, 모두 합치면 110여 세가 넘는다. 列傳에 조타의 아들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建元 4년은 손자인 胡가 즉위한 해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考證』, 4653쪽에 인용된 王鳴盛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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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타의 손자인 호(胡)가 남월왕(南粤王)이 되었다. [왕이 된 지] 3년(전135)에 민월왕(閩粤王) 영(郢)이 군사를 일으켜 남월 변방에 있는 읍들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월(粤) 주 002
각주 002)
『史記』에는 趙佗의 손자 ‘胡’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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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내 상서하기를, “양월(兩粤)주 003
각주 003)
兩粤 : 南粤과 東粤(閩越)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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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두 한(漢)의 번신(藩臣)이 되었으니 함부로 군대를 일으켜 서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동월(東粤)주 004
각주 004)
東粤 : 『史記』에는 閩越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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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함부로 군대를 일으켜 신(臣)의 나라를 침범하였습니다. 신이 마음대로 군대를 일으킬 수 없으니 오직 천자의 명만 기다릴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천자는 남월이 의리가 있고 맡은 바 직분을 잘 지켰음을 칭찬하며주 005
각주 005)
顔師古에 따르면, “藩臣으로서의 직무를 지키고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은 사실(守藩臣之職, 而不踰約制)”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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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월을 위해 군사를 일으켜, 두 명의 장군을 파견해 민월을 토벌하게 하였다.주 006
각주 006)
『漢書』 「武帝本紀」 建元 6년(전135)조에 “閩粤王郢攻南粤. 遣大行王恢將兵出豫章, 大司農韓安國出會稽, 擊之. 未至, 越人殺郢降, 兵還”이라고 하여, 閩越 토벌작전이 建元 6년(전 135)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두 장군은 王恢와 韓安國으로, 王恢는 預章에서, 韓安國은 會稽에서 출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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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영(嶺)주 007
각주 007)
여기의 嶺은 梅嶺일 가능성이 높다. 『史記』 「東越列傳」에 20여 년 뒤인 元鼎 5년(전112)에 누선장군 양복이 동월을 공격할 것을 청하자 예장의 매령에서 대기토록 하였다는 기사(至元鼎五年, 南越反……是時樓船將軍楊僕使使上書, 願便引兵擊東越. 上曰士卒勞倦, 不許, 罷兵, 令諸校屯豫章梅領待命)가 있기 때문이다. 梅嶺은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따르면, 會稽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고, 『索隱』은 徐廣의 설명이 틀렸다고 하며 豫章 30리에 梅嶺이 있으며 洪崖山 기슭이며 옛날 驛道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正義』는 『括地志』를 인용하여 梅嶺은 虔化縣 동북 128리에 있으며, 虔州는 漢대에도 豫章郡 소속이었으나 두 곳 모두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譚其驤의 『역사지도집(진한)』에는 預章郡에 소속되어 있으며, 현재의 江西省 寧都縣 동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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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넘기도 전에 민월왕의 동생인 여선(餘善) 주 008
각주 008)
餘善 : 閩越王 騶郢의 아우이다. 閩越王 騶郢이 군사를 일으켜 南越을 공격하자 漢의 군대가 이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형인 騶郢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자립하였다. 武帝 元鼎 6년에는 ‘武帝’를 자칭하며 漢나라 군대와 맞서다가 형과 마찬가지로 吳衍 등 閩越 내부 사람들에게 피살되었다(『史記』 「東越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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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죽이고 항복하자 군대를 해산하였다.

  • 각주 001)
    『漢書』에는 『史記』 “至建元四年卒”과 같이 ‘卒’자가 없다. 武帝 建元 4년은 기원전 137년으로, 조타는 文帝원년에 이미 ‘老夫가 월에 거한 지 49년’이라 했으니, 文帝 23년을 거쳐 景帝 16년, 武帝 建元 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43년이며 趙佗가 20여 세에 龍川令이 되었다고 했으니, 모두 합치면 110여 세가 넘는다. 列傳에 조타의 아들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建元 4년은 손자인 胡가 즉위한 해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考證』, 4653쪽에 인용된 王鳴盛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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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史記』에는 趙佗의 손자 ‘胡’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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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兩粤 : 南粤과 東粤(閩越)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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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東粤 : 『史記』에는 閩越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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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顔師古에 따르면, “藩臣으로서의 직무를 지키고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은 사실(守藩臣之職, 而不踰約制)”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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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漢書』 「武帝本紀」 建元 6년(전135)조에 “閩粤王郢攻南粤. 遣大行王恢將兵出豫章, 大司農韓安國出會稽, 擊之. 未至, 越人殺郢降, 兵還”이라고 하여, 閩越 토벌작전이 建元 6년(전 135)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두 장군은 王恢와 韓安國으로, 王恢는 預章에서, 韓安國은 會稽에서 출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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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여기의 嶺은 梅嶺일 가능성이 높다. 『史記』 「東越列傳」에 20여 년 뒤인 元鼎 5년(전112)에 누선장군 양복이 동월을 공격할 것을 청하자 예장의 매령에서 대기토록 하였다는 기사(至元鼎五年, 南越反……是時樓船將軍楊僕使使上書, 願便引兵擊東越. 上曰士卒勞倦, 不許, 罷兵, 令諸校屯豫章梅領待命)가 있기 때문이다. 梅嶺은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따르면, 會稽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고, 『索隱』은 徐廣의 설명이 틀렸다고 하며 豫章 30리에 梅嶺이 있으며 洪崖山 기슭이며 옛날 驛道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正義』는 『括地志』를 인용하여 梅嶺은 虔化縣 동북 128리에 있으며, 虔州는 漢대에도 豫章郡 소속이었으나 두 곳 모두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譚其驤의 『역사지도집(진한)』에는 預章郡에 소속되어 있으며, 현재의 江西省 寧都縣 동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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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餘善 : 閩越王 騶郢의 아우이다. 閩越王 騶郢이 군사를 일으켜 南越을 공격하자 漢의 군대가 이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형인 騶郢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자립하였다. 武帝 元鼎 6년에는 ‘武帝’를 자칭하며 漢나라 군대와 맞서다가 형과 마찬가지로 吳衍 등 閩越 내부 사람들에게 피살되었다(『史記』 「東越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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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무제(武帝), 조타, 호(胡), 영(郢), 여선(餘善),
지명
남월, 월(粤), 한(漢), 남월, 남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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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월이 반란을 일으켜 한나라가 군대를 일으켰으나 민월왕의 동생인 여선이 영을 죽이고 항복하자 군대를 해산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5_002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