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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高帝)가 육가(陸賈)를 보내 남월왕의 즉위를 인정하고 사신을 왕래하도록 함

  • 국가
    남월(南粤)
고제(高帝) 주 001
각주 001)
高帝 : 漢高祖 劉邦을 말한다. 『史記』는 「高祖本紀」라 하였고, 『漢書』는 「高帝本紀」라고 篇名을 삼았다. 다만 『史記』 본문에서는 高帝와 高祖가 거의 별다른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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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천하를 평정한 뒤 중국이 전쟁으로 피폐해졌다고 생각하여 조타를 책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釋佗].주 002
각주 002)
釋佗 : 顔師古注는 “釋, 置也”, 즉 ‘방치하다’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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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196)주 003
각주 003)
11년이라 함은 漢高祖 11년을 말하며, 기원전 196년이다. 『史記』에는 앞에 ‘漢’이 덧붙여져 있어 “漢十一年”으로 되어 있다. 『漢書』 「高祖本紀」 十一年五月詔에 “粵人之俗, 好相攻擊, 前時秦徙中縣之民南方三郡, 使與百粵雜處. 會天下誅秦, 南海尉它居南方長治之, 甚有文理, 中縣人以故不耗減, 粵人相攻擊之俗益止. 俱賴其力. 今立它爲南粵王”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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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陸賈) 주 004
각주 004)
陸賈 : 楚人으로 前漢 초기 漢高祖 劉邦이 기의했을 때부터 그 휘하에서 활동하였고, 漢 건국 후에도 漢高祖 劉邦을 측근에서 보좌한 인물이다. 그는 高祖에게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없다”는 충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외에 漢高祖 劉邦에게 秦의 멸망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하여 『新語』라는 저서를 편찬하여 지어 바쳤다. 『史記』 「酈生陸賈列傳」에는 그가 언변이 뛰어나 사신의 일을 자주 맡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경력 때문에 남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列傳에는 陸賈가 조타를 상대로 유세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본문과 관련 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면, “足下는 중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친척과 형제, 조상의 무덤이 眞定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足下는 천성을 위반하여 冠帶를 버리고 구구한 越나라로 천자와 맞서 敵國이 되고자 하니 장차 화가 일신에 미칠 것입니다. 또 저 秦나라는 失政하여 제후들과 호걸들이 모두 봉기하였는데, 오직 漢王만이 제일 먼저 入關하여 咸陽을 점거하였습니다. 項羽가 약조를 배반하고 스스로 西楚霸王으로 자처하자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귀속되니 참으로 강력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漢王은 巴蜀에서 봉기하여 천하 사람들을 채찍질하여 다른 제후들을 평정하고 마침내 項羽를 주멸하였습니다. 그 후 5년 사이 海內가 평정되었으니 이는 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하늘이 세워 준 일입니다. 천자께서는 君王이 南越의 王이 되어 천하를 도와 폭도를 주멸하지 않았음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將相들이 군대를 일으켜 왕을 주벌하고자 하였지만 천자께서는 백성들의 노고를 가엾게 여겨 전역을 쉬게 하려고 臣을 보내 군왕께 印을 하사하고 황제의 符節을 나눠 사신을 왕래토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군왕은 마땅히 郊에 나와 이를 맞이해야 하며 北面하여 稱臣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새로 만든 미완의 남월로 이와 같이 한나라에 대하여 강경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漢나라에서 만일 이 소식을 듣게 되면 군왕의 조상들의 무덤을 불태우고 종족들을 모두 없앨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부장으로 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월나라를 공격하게 할 것입니다. 그때 월나라 사람들이 군왕을 죽여 한에 항복하는 것은 손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울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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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내 조타를 그대로 인정하여 남월왕에 책봉하고 부(符)를 나눠(剖符)주 005
각주 005)
剖符 : 황제가 제후를 분봉할 때나 전쟁에 장수를 파견할 때 金, 玉, 銅, 竹 등으로 만든 符를 2개로 쪼개 각각 황제와 신하가 나눠 가짐으로써 신의의 징표로 삼았던 것을 말한다. 필요할 때에는 서로 합쳐 보아 진위를 따질 수 있다. 이것은 한왕조가 정식으로 조타를 남월왕에 임명한 표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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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의 징표로 삼고] 사신을 왕래토록 하였다. 또한 조타로 하여금 백월(百粵)의 [여러 부족들]을 평화롭게 이끌어[和輯百粵]주 006
각주 006)
和輯百粵 : 顔師古注는 원문의 ‘輯’을 모으다[集]과 같이 보았다(“輯與集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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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의 남쪽 변경에서 우환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장사국(長沙國) 주 007
각주 007)
長沙國 : 기원전 202년에 건립되어 기원후 37년에 폐지될 때까지 209년간 존속하였다. 秦代 長沙郡이 설치되었던 관할지역을 계승한 것으로 治所는 ‘湘縣’(뒤에 臨湘縣으로 개명, 현재의 湖南省 長沙)을 국도로 삼았다. 漢의 개국공신인 吳芮가 제1대 長沙王에 봉해졌다. 그 후 王莽에 의해(8) 모든 侯國이 폐지됨에 따라 長沙國은 ‘塡蠻郡’으로 강등되었고 국도인 臨湘縣 또한 ‘撫睦縣’으로 개명되었다가 후한 때 劉秀에 의해 원래 이름으로 회복되었으나 국이 아닌 군으로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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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 각주 001)
    高帝 : 漢高祖 劉邦을 말한다. 『史記』는 「高祖本紀」라 하였고, 『漢書』는 「高帝本紀」라고 篇名을 삼았다. 다만 『史記』 본문에서는 高帝와 高祖가 거의 별다른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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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釋佗 : 顔師古注는 “釋, 置也”, 즉 ‘방치하다’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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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11년이라 함은 漢高祖 11년을 말하며, 기원전 196년이다. 『史記』에는 앞에 ‘漢’이 덧붙여져 있어 “漢十一年”으로 되어 있다. 『漢書』 「高祖本紀」 十一年五月詔에 “粵人之俗, 好相攻擊, 前時秦徙中縣之民南方三郡, 使與百粵雜處. 會天下誅秦, 南海尉它居南方長治之, 甚有文理, 中縣人以故不耗減, 粵人相攻擊之俗益止. 俱賴其力. 今立它爲南粵王”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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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陸賈 : 楚人으로 前漢 초기 漢高祖 劉邦이 기의했을 때부터 그 휘하에서 활동하였고, 漢 건국 후에도 漢高祖 劉邦을 측근에서 보좌한 인물이다. 그는 高祖에게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없다”는 충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외에 漢高祖 劉邦에게 秦의 멸망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하여 『新語』라는 저서를 편찬하여 지어 바쳤다. 『史記』 「酈生陸賈列傳」에는 그가 언변이 뛰어나 사신의 일을 자주 맡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경력 때문에 남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列傳에는 陸賈가 조타를 상대로 유세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본문과 관련 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면, “足下는 중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친척과 형제, 조상의 무덤이 眞定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足下는 천성을 위반하여 冠帶를 버리고 구구한 越나라로 천자와 맞서 敵國이 되고자 하니 장차 화가 일신에 미칠 것입니다. 또 저 秦나라는 失政하여 제후들과 호걸들이 모두 봉기하였는데, 오직 漢王만이 제일 먼저 入關하여 咸陽을 점거하였습니다. 項羽가 약조를 배반하고 스스로 西楚霸王으로 자처하자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귀속되니 참으로 강력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漢王은 巴蜀에서 봉기하여 천하 사람들을 채찍질하여 다른 제후들을 평정하고 마침내 項羽를 주멸하였습니다. 그 후 5년 사이 海內가 평정되었으니 이는 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하늘이 세워 준 일입니다. 천자께서는 君王이 南越의 王이 되어 천하를 도와 폭도를 주멸하지 않았음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將相들이 군대를 일으켜 왕을 주벌하고자 하였지만 천자께서는 백성들의 노고를 가엾게 여겨 전역을 쉬게 하려고 臣을 보내 군왕께 印을 하사하고 황제의 符節을 나눠 사신을 왕래토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군왕은 마땅히 郊에 나와 이를 맞이해야 하며 北面하여 稱臣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새로 만든 미완의 남월로 이와 같이 한나라에 대하여 강경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漢나라에서 만일 이 소식을 듣게 되면 군왕의 조상들의 무덤을 불태우고 종족들을 모두 없앨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부장으로 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월나라를 공격하게 할 것입니다. 그때 월나라 사람들이 군왕을 죽여 한에 항복하는 것은 손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울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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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剖符 : 황제가 제후를 분봉할 때나 전쟁에 장수를 파견할 때 金, 玉, 銅, 竹 등으로 만든 符를 2개로 쪼개 각각 황제와 신하가 나눠 가짐으로써 신의의 징표로 삼았던 것을 말한다. 필요할 때에는 서로 합쳐 보아 진위를 따질 수 있다. 이것은 한왕조가 정식으로 조타를 남월왕에 임명한 표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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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和輯百粵 : 顔師古注는 원문의 ‘輯’을 모으다[集]과 같이 보았다(“輯與集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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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長沙國 : 기원전 202년에 건립되어 기원후 37년에 폐지될 때까지 209년간 존속하였다. 秦代 長沙郡이 설치되었던 관할지역을 계승한 것으로 治所는 ‘湘縣’(뒤에 臨湘縣으로 개명, 현재의 湖南省 長沙)을 국도로 삼았다. 漢의 개국공신인 吳芮가 제1대 長沙王에 봉해졌다. 그 후 王莽에 의해(8) 모든 侯國이 폐지됨에 따라 長沙國은 ‘塡蠻郡’으로 강등되었고 국도인 臨湘縣 또한 ‘撫睦縣’으로 개명되었다가 후한 때 劉秀에 의해 원래 이름으로 회복되었으나 국이 아닌 군으로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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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고제(高帝), 조타, 육가(陸賈), 조타, 조타
지명
한(漢), 장사국(長沙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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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高帝)가 육가(陸賈)를 보내 남월왕의 즉위를 인정하고 사신을 왕래하도록 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5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