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이 즉위 한 뒤에도 서남이의 반란이 끊이지 않음
[始建國 1년(후9) 秋] 왕망(王莽)이 제위(帝位)를 찬탈하였다. 한(漢)의 제도를 고치고, 구정왕의 작(爵)을 떨어뜨려 후(侯)로 삼았다. [후12년] 구정왕 함(邯)이 원망하여 한(恨)을 품자,주 001
장가군의 대윤(牂柯大尹) 주흠(周欽)이 함을 속여 살해하였다. 함의 아우 승(承)이 주흠을 공격하여 살해하였다. 익주와 소속 군이 쳤으나,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天鳳 1년; 후14) 삼변의 만이(蠻夷)가 근심으로 요란(擾亂)하여 모두 반란을 일으켰으며, 또 익주군의 대윤 정륭(程隆)을 죽였다. [天鳳 3年(후16) 시월] 왕망은 평만장군(平蠻將軍) 풍무(馮茂)를 파견하여 파군, 촉군 그리고 건위군의 속리(屬吏)와 병사를 일으키고, 민(民)에서 부렴(賦斂)을 필요한 만큼 취하여 익주군을 공격하였다. 출동하여 [익주군에] 들어간지 3년이 지났는데, 질병과 역병으로 죽은 자가 10에 7이나 되니, 파촉의 [민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이에) 왕망이 풍무를 소환하여 죽였다. 다시 영시장군(寧始將軍) 염단(廉丹)과 용부목(庸部牧)주 002
사웅(史熊)을 파견하여, 천수군(天水郡)과 농서군(隴西郡)의 기사(騎士) 그리고 광한군(廣漢郡), 파군, 촉군, 건위군의 속리와 민(民) 10만 인을 징발하고, 수송을 담당한 자들까지 합하여 20만 인이 공격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참수한 것이 자못 많아 수천에 달했으나, 그 뒤로는 군량의 수송이 앞뒤로 서로 이어지지 못하여, 사졸이 굶주리고 전염병이 돌았으니, 3년여가 지나자 죽은 자가 수만이었다. 그리고 월수(粵嶲)의 만이 임귀(任貴) 또한 태수 매근(枚根)을 죽이고 자립하여 공곡왕(邛穀王)이 되었다.주 003때마침 왕망이 패망하고 한(漢)이 흥하여, 임귀를 주멸하고 옛 호칭을 회복하였다.주 004
색인어
- 이름
- 왕망(王莽), 함(邯), 주흠(周欽), 함, 함, 승(承), 주흠, 정륭(程隆), 왕망, 풍무(馮茂), 왕망, 풍무, 염단(廉丹), 사웅(史熊), 임귀(任貴), 매근(枚根), 왕망, 임귀
- 지명
- 한(漢), 장가군, 익주, 익주군, 파군, 촉군, 건위군, 익주군, 익주군, 파촉, 천수군(天水郡), 농서군(隴西郡), 광한군(廣漢郡), 파군, 촉군, 건위군, 한(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