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왕(滇王)이 한나라에 항복하고 군현의 설치와 입조를 요청하자 익주군(益州郡)을 설치하고 왕인(王印)을 내려줌
[한무제가] 왕연우(王然于)를 사자로 보내 남월의 패망 사실과 남이를 주멸한 군사적 위세를 들어 전왕(滇王)에게 넌지시 깨우쳐주 001입조하도록 하였다. 전왕이라는 자는 그 무리가 수만 인에 그 곁 동북쪽에 노심(勞深)주 002과 미막(靡莫)이 있어 모두 동성(同姓)으로 서로 의지하는 까닭에 기꺼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주 003노심과 미막은 여러 차례 [한의] 사자와 관리 및 사졸을 침범하였다. 원봉(元封) 2년(전109)에 천자가 파촉의 군대를 일으켜 노심과 미막을 쳐서 멸하고, 그 군대로 전을 압박하였다. 전왕이 처음 한과 관계를 가진 이래로 늘 선의(善意)를 가졌기 때문에 주멸당하지 않았다.주 004전왕(滇王)이 서이(西夷)의 전례를 좇아,주 005나라[國]를 들어 항복하고, 군현의 설치와 입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익주군(益州郡)을 설치하고, 전왕에게 왕(王)의 인(印)을 내려 다시 그 민을 다스리도록 하였다[그 민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주 006서남이의 군장이 백을 헤아리는데, 오직 야랑(夜郞)과 전(滇)만이 왕인(王印)을 받았다. 전은 작은 읍(邑)이었지만, 가장 총애를 받았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색인어
- 이름
- 한무제, 왕연우(王然于)
- 지명
- 남월, 한, 파촉, 전, 한, 익주군(益州郡), 야랑(夜郞), 전(滇),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