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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반고의 말 : 흉노의 습속을 설명하며 흉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언급함

  • 국가
    흉노(匈奴)
무릇 사태를 헤아려 의론을 세울 경우, 항구적인 안전을 도모하지 않고, 구차하게 한때의 상황에만 맞추려고 한다면, 먼 장래까지 경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정벌의 성과와 진조나 한조가 [흉노에게] 행한 일에 대해서는 엄우의 평론이 타당하다.주 001
각주 001)
앞에서 嚴尤는 王莽의 대규모 匈奴 정벌을 반대하면서 漢武帝 때 匈奴를 공격한 것은 下策이고,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는 無策이라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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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선왕들은 땅을 측량하여 그 가운데에 왕기(王畿)를 세우고, 구주(九州)를 나누고, 오복(五服)을 나열해 놓고, [각지의] 토산물을 공헌하도록 하고, 외(外)와 내(內)[를 구분하는 제도]를 제정하였다. 어느 지역에는 형벌의 정치를 펴고, 어느 지역에는 문치의 덕을 밝혔다. [차이를 둔 것은]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정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추』에 제하(諸夏)는 내부로 보고, 이적은 외[족(族)]으로 [구별하여 기록하는 서법(書法)이] 있었다.주 002
각주 002)
顔師古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春秋』 成公 15년 “諸侯들이 吳와 鍾離에서 會合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公羊傳에서 “어찌하여 특별히 회합하였는가? 吳는 外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外인가? 『春秋』에서는 中國을 內로 諸夏를 外로 한다. 그리고 諸夏를 內로 하고, 夷狄을 外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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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사람은 탐욕스럽고 이익을 좋아하며 머리를 풀어 헤치고 좌임(左袵)주 003
각주 003)
左袵 : 옷의 왼쪽 섶을 오른쪽 섶 안에 넣는 것을 말한다. 오랑캐의 복장 형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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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짐승의 마음을 갖고 있다. 중국과는 복식이 다르고 습속도 다르다. 음식이 같지 아니하며 언어도 통하지 않는다. 북쪽 가장자리 찬 이슬이 내리는 곳에 치우쳐 거주하며, 풀을 따르고 가축을 좇아 [이동하며], 사냥으로 먹고 산다. [중국과 흉노는] 산과 계곡으로 격절되어 있고, 사막으로 막혀 있으니, [그 구별은] 하늘과 땅이 바깥과 안을 단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성왕은 [오랑캐를] 금수로 길렀을 뿐, 더불어 [화친을] 서약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공격하여 정벌하지도 않았다. 서약한다면 재물을 쓰고도 배신당할 수 있었으며, 공격한다면 군대를 피로하게 하며 침공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 [흉노의] 땅은 경작해서 먹을 [것을 생산할] 수 있지 않고 그 인민은 신하로 기를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외부에 두고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며, 멀리하고 가까이 두지 않는다. 정교(政敎)가 [흉노] 인민에게는 미치지 않으며, [천자의] 역법을 그 나라에 주지 않는다. 항복해 오면 경계하면서주 004
각주 004)
원문 “懲”에는 ‘벌주다, 응징하다’는 의미가 있다. 이 경우 “來”는 와서 침공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顔師古는 “懲”의 의미를 “創乂”(삼가고 경계함)로 이해하였다. 그렇다면 “來”는 來降의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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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고, 떠나 버리면 방비하면서 지킨다. 그들이 [중국의] 의(義)를 흠모하면서 공물을 바칠 경우에는 예의 바르고 겸손하게 대접한다. [요컨대] 말고삐와 쇠코뚜레[羈縻]주 005
각주 005)
원문의 “靡”는 “縻”와 통용될 수 있고, 여기에서 “羈靡”는 곧 “羈靡”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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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잡은 것과 같은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문제 발생의] 원인이 저쪽에 있도록 하는 [수동적인 태도가], 대개 성왕이 오랑캐를 통제하고 거느리는 법도이다.주 006
각주 006)
後漢代 魯恭은 “聖王之制 羈縻不絶而已”라고 하였다(『後漢書』 권25 「魯恭傳」 : 876). 漢代 외국을 ‘羈縻’한다는 것은 외국이 설령 稱臣來降해도 ‘不臣’ 즉 신하로 삼지 않고 客禮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을 ‘羈縻’하면 훗날 離叛하더라도 정벌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는 외부의 변화로부터 중국의 평화를 고수하려는 외교 원칙으로 ‘漢代 중국인들이 발견한 최선의 지혜’로 평가된다(김한규, 1988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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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앞에서 嚴尤는 王莽의 대규모 匈奴 정벌을 반대하면서 漢武帝 때 匈奴를 공격한 것은 下策이고,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는 無策이라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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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顔師古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春秋』 成公 15년 “諸侯들이 吳와 鍾離에서 會合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公羊傳에서 “어찌하여 특별히 회합하였는가? 吳는 外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外인가? 『春秋』에서는 中國을 內로 諸夏를 外로 한다. 그리고 諸夏를 內로 하고, 夷狄을 外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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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左袵 : 옷의 왼쪽 섶을 오른쪽 섶 안에 넣는 것을 말한다. 오랑캐의 복장 형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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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원문 “懲”에는 ‘벌주다, 응징하다’는 의미가 있다. 이 경우 “來”는 와서 침공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顔師古는 “懲”의 의미를 “創乂”(삼가고 경계함)로 이해하였다. 그렇다면 “來”는 來降의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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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원문의 “靡”는 “縻”와 통용될 수 있고, 여기에서 “羈靡”는 곧 “羈靡”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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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後漢代 魯恭은 “聖王之制 羈縻不絶而已”라고 하였다(『後漢書』 권25 「魯恭傳」 : 876). 漢代 외국을 ‘羈縻’한다는 것은 외국이 설령 稱臣來降해도 ‘不臣’ 즉 신하로 삼지 않고 客禮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을 ‘羈縻’하면 훗날 離叛하더라도 정벌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는 외부의 변화로부터 중국의 평화를 고수하려는 외교 원칙으로 ‘漢代 중국인들이 발견한 최선의 지혜’로 평가된다(김한규, 1988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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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엄우
서명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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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의 말 : 흉노의 습속을 설명하며 흉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언급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1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