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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호한야의 뒤를 이어 조도막고(雕陶莫車)가 복주류약제선우(復株絫若鞮單于)로 즉위함

  • 국가
    흉노(匈奴)
왕소군(王昭君)은 [흉노에서] 영호연지(寧胡閼氏)라고 불렸다.주 001
각주 001)
“閼氏”는 顔師古에 따르면 匈奴 皇后를 부르는 이름이다. ‘연지’로 읽힌다. 또한 오랑캐가 王昭君을 얻음으로써 國이 안녕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寧胡”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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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이도지아사(伊屠智牙師)이고 우일축왕이 되었다. 호한야는 즉위한 지 28년이 되어 [성제] 건시 2년(전31)에 죽었다. 처음 호한야는 좌이질자의 형 호연왕(呼衍王)의 두 딸을 사랑하였다. 장녀인 전거연지(顓渠閼氏)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을 저막거(且莫車)라 하고 둘째를 낭지아사(囊知牙斯)라 했다. 둘째 딸은 대연지(大閼氏)가 되었으며, 네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은 조도막고(雕陶莫皋), 둘째 아들은 저미서(且麋胥)라 했는데 모두 저막거보다 연상이었다. 어린 아들 함(咸)낙(樂) 두 명은 모두 낭지아사보다 어렸다. 또한 다른 연지의 아들 10여 명이 있었다. 전거연지의 지위가 높았고, [그의 큰아들] 저막거가 [선우의] 사랑을 받았다.
호한야가 병이 들어 죽을 때 저막거를 세우려 했다. 그의 모친 전거연지는 말했다. “흉노에 10여 년간 난리가 발생했지만 머리카락처럼 끊어지지 않았으며, 의 힘에 의지하게 되어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평정을 찾은 지 오래 되지 않았으며 인민들도 전투를 삼가고 경계합니다. 저막거는 나이가 어리고 백성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를 세우면] 다시 나라가 위태롭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저와 대연지는 한 집안의 친자매로 서로의 자식들을 사랑함에 차이가 없습니다.주 002
각주 002)
원문의 “一家”란 顔師古에 따르면 친자매라는 말이다. 또한 “共子”란 둘이 낳은 자식들을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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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지의 큰 아들] 조도막고를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연지는 말했다. “저막거는 비록 어리다 해도 대신들이 국사를 함께 처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귀인[의 아들]을 버리고 천한 [저의 아들]을 세운다면 후세에 반드시 난이 발생할 것입니다.” 선우는 마침내 전거연지의 생각에 따라 [대연지의 아들] 조도막고를 세우고, 동생에게 나라를 물려주도록 약(約)을 맺었다. 호한야가 죽은 뒤 조도막고가 옹립되어 복주류약제선우(復株絫若鞮單于) 주 003
각주 003)
復株絫若鞮單于(재위 전31∼20) : 呼韓邪單于의 차녀인 大閼氏가 낳은 아들이다. 이름은 雕陶莫皋이다. 호한야선우가 사망한 다음 單于가 되었으며 다시 王昭君을 처로 삼아 두 딸을 낳았고 10년간 재위하였다. 成帝 鴻嘉 1년(전20)에 사망한다. 復株絫若鞮單于부터 匈奴의 單于號에는 ‘若鞮’라는 말이 들어간다. 이는 漢語의 ‘孝’에 해당하며 漢 皇帝의 諡號에 ‘孝’자를 집어넣은 것을 모방한 것이다. 다만 匈奴의 경우에는 살아 있을 때의 호칭과 죽은 뒤 시호의 구별은 없었던 것 같다(栗原朋信, 1970 :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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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되었다.

  • 각주 001)
    “閼氏”는 顔師古에 따르면 匈奴 皇后를 부르는 이름이다. ‘연지’로 읽힌다. 또한 오랑캐가 王昭君을 얻음으로써 國이 안녕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寧胡”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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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원문의 “一家”란 顔師古에 따르면 친자매라는 말이다. 또한 “共子”란 둘이 낳은 자식들을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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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復株絫若鞮單于(재위 전31∼20) : 呼韓邪單于의 차녀인 大閼氏가 낳은 아들이다. 이름은 雕陶莫皋이다. 호한야선우가 사망한 다음 單于가 되었으며 다시 王昭君을 처로 삼아 두 딸을 낳았고 10년간 재위하였다. 成帝 鴻嘉 1년(전20)에 사망한다. 復株絫若鞮單于부터 匈奴의 單于號에는 ‘若鞮’라는 말이 들어간다. 이는 漢語의 ‘孝’에 해당하며 漢 皇帝의 諡號에 ‘孝’자를 집어넣은 것을 모방한 것이다. 다만 匈奴의 경우에는 살아 있을 때의 호칭과 죽은 뒤 시호의 구별은 없었던 것 같다(栗原朋信, 1970 :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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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왕소군(王昭君), 이도지아사(伊屠智牙師), 호한야, 호한야, 저막거(且莫車), 낭지아사(囊知牙斯), 조도막고(雕陶莫皋), 저미서(且麋胥), 저막거, 함(咸), 낙(樂), 낭지아사, 저막거, 호한야, 저막거, 저막거, 조도막고, 저막거, 조도막고, 호한야, 조도막고, 복주류약제선우(復株絫若鞮單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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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한야의 뒤를 이어 조도막고(雕陶莫車)가 복주류약제선우(復株絫若鞮單于)로 즉위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