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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는 흉노와의 전투에서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이광리가 흉노에 투항함

 
  • 국가흉노(匈奴)
그 후 2년이 지나서 다시 이사장군 [이광리]를 시켜 6만의 기병과 보병 7만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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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는 “十萬”으로 되어 있다.

을 거느리고 삭방에서 나아가게 했다. 강노도위 노박덕이 만여 명을 거느리고 이사[장군 이광리]와 만났다. 유격장군 [한]열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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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 : 韓說을 말한다. 弓高侯의 庶孫으로 校尉로서 大將軍을 따라 匈奴 정벌에 공을 세워 龍頟侯가 되었다가 죄를 지어 侯를 잃었다. 元鼎 6년(전111) 橫海將軍으로 東越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워 按道侯가 되었다 太初 3년(전102) 游擊將軍이 되어 五原 밖에 주둔해 있었다. 光祿勳이 되었다가 巫蠱사건으로 戾太子에게 죽임을 당했다.

은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오원[군](五原郡)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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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原郡 : 郡 명칭으로 前漢 元朔 2년(전127)에 설치되었다. 치소는 九原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烏拉特前旗 동남 黑柳子鄕 三頂房村 古城)이다. 관할구역은 內蒙古自治區 後套 이동, 陰山 이남, 包頭市 이서와 達拉特, 准噶爾旗 지역이다. 後漢 말에 폐지되었다(주721) 참조).

에서 나갔다. 인우장군 [공손]오는 만 명의 기병과 보병 삼만 명을 거느리고 안문[군]에서 나갔다. 흉노가 [이 정보를] 듣고 짐이 될 수 있는 처자와 재산[累重]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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累重 : 짐이 될 수 있는 처자와 재산을 의미한다.

을 모두 여오수(余吾水)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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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吾水 : 강의 명칭으로 『山海經』 「北山經」에서 “涂吾之水”라고 되어 있다. 지금의 몽골공화국에 있는 셀렝게강의 중요한 지류 중의 하나인 톨 강을 지칭한다.

의 북쪽으로 대피시킨 다음 선우가 10만 기를 이끌고 [여오]수 남쪽에서 기다렸다가 이사[장군 이광리]와 전투를 벌였다. 이사[장군 이광리]는 공격을 풀고 되돌아오다가 선우와 연이어 10여 일을 싸웠다. 유격[대장 한열]도 전과가 없었다. 인우[장군 공손오]도 좌현왕과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자 철수해 돌아왔다.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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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史記』와 『漢書』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인데, 『史記』에서는 “이해에 漢나라 군사로 출정해 匈奴와 싸운 사람 중에서 軍功을 따질 만한 여지조차 없어 論功할 만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한편] 조칙을 내려 太醫令 隨但을 체포했는데, [이는] 그가 貳師將軍 [李廣利의] 가족이 몰살되었다고 말해 李廣利를 匈奴에 투항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是歲漢兵之出擊匈奴者不得言功多少, 功不得御. 有詔捕太醫令隨但, 言貳師將軍家室族滅, 使廣利得降匈奴 : 2918).”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전97년까지 『史記』의 기록이 마무리되고 『漢書』에는 그 이후의 부분이 이어진다.



 

주 001
『史記』에는 “十萬”으로 되어 있다.
주 002
說 : 韓說을 말한다. 弓高侯의 庶孫으로 校尉로서 大將軍을 따라 匈奴 정벌에 공을 세워 龍頟侯가 되었다가 죄를 지어 侯를 잃었다. 元鼎 6년(전111) 橫海將軍으로 東越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워 按道侯가 되었다 太初 3년(전102) 游擊將軍이 되어 五原 밖에 주둔해 있었다. 光祿勳이 되었다가 巫蠱사건으로 戾太子에게 죽임을 당했다.
주 003
五原郡 : 郡 명칭으로 前漢 元朔 2년(전127)에 설치되었다. 치소는 九原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烏拉特前旗 동남 黑柳子鄕 三頂房村 古城)이다. 관할구역은 內蒙古自治區 後套 이동, 陰山 이남, 包頭市 이서와 達拉特, 准噶爾旗 지역이다. 後漢 말에 폐지되었다(주721) 참조).
주 004
累重 : 짐이 될 수 있는 처자와 재산을 의미한다.
주 005
余吾水 : 강의 명칭으로 『山海經』 「北山經」에서 “涂吾之水”라고 되어 있다. 지금의 몽골공화국에 있는 셀렝게강의 중요한 지류 중의 하나인 톨 강을 지칭한다.
주 006
여기까지 『史記』와 『漢書』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인데, 『史記』에서는 “이해에 漢나라 군사로 출정해 匈奴와 싸운 사람 중에서 軍功을 따질 만한 여지조차 없어 論功할 만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한편] 조칙을 내려 太醫令 隨但을 체포했는데, [이는] 그가 貳師將軍 [李廣利의] 가족이 몰살되었다고 말해 李廣利를 匈奴에 투항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是歲漢兵之出擊匈奴者不得言功多少, 功不得御. 有詔捕太醫令隨但, 言貳師將軍家室族滅, 使廣利得降匈奴 : 2918).”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전97년까지 『史記』의 기록이 마무리되고 『漢書』에는 그 이후의 부분이 이어진다.
 
이름
이광리 , 노박덕 , 이광리 , [한]열 , [공손]오 , 이광리 , 이광리 , 한열 , 공손오
지명
삭방 , 오원[군](五原郡) , 안문[군] , 여오수(余吾水) , [여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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