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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이지사선우가 즉위한 뒤 흉노가 여러 차례 삭방(朔方) 및 대군(代郡) 등을 침입하여 사람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해 감

  • 국가
    흉노(匈奴)
이지사선우가 즉위한 그 해 여름주 001
각주 001)
漢 武帝 元朔 3년(전12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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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수만 기가 대군으로 쳐들어와 [대군] 태수 공우(共友) 주 002
각주 002)
共友 : 姓이 共이고 이름이 友으로 太守의 이름이다. 『史記』에는 “恭友”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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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죽이고주 003
각주 003)
『史記』에는 “入殺代郡太守恭友”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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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 명을 잡아갔다. [그 해] 가을주 004
각주 004)
『漢書』 권6 「武帝紀」 : 171에는 元朔 3년(전126) 여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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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가 다시 안문[군]으로 쳐들어와 천여 명을 죽이고 잡아갔다. 이듬해주 005
각주 005)
漢 武帝 元朔 4년(전125) 여름의 일이다(『漢書』 권6 「武帝紀」 :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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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흉노가] 또 대군, 정양[군](定襄郡) 주 006
각주 006)
定襄郡 : 郡의 명칭으로 高祖 6년(전201)에 雲中郡의 땅을 나누어 설치되었다. 12개의 縣이 속해 있었으며 郡의 치소는 成樂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和林格爾縣 서북 土城子鄕 古城)이다. 관할구역은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和林格爾縣, 淸水河, 卓資縣, 察哈爾右翼中旗 등지이다. 後漢시대에 영역이 줄어들었다가 말기에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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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군으로 들어와주 007
각주 007)
『史記』에는 “匈奴又復入代郡․定襄․上郡”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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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3만 기로 수천 명을 죽이거나 잡아갔다. 흉노의 우현왕은 한나라하남 땅을 빼앗아 삭방에 [성을] 쌓은 것에 원한을 품고 여러 차례 쳐들어와주 008
각주 008)
『史記』에는 “數爲寇, 盜邊”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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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을 도둑질하였다. 그리고 하남으로 들어와 삭방[군]을 침범하고 관리와 백성들을 살해하거나 약탈한 것이 아주 많았다.

  • 각주 001)
    漢 武帝 元朔 3년(전12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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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共友 : 姓이 共이고 이름이 友으로 太守의 이름이다. 『史記』에는 “恭友”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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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史記』에는 “入殺代郡太守恭友”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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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漢書』 권6 「武帝紀」 : 171에는 元朔 3년(전126) 여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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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漢 武帝 元朔 4년(전125) 여름의 일이다(『漢書』 권6 「武帝紀」 :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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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定襄郡 : 郡의 명칭으로 高祖 6년(전201)에 雲中郡의 땅을 나누어 설치되었다. 12개의 縣이 속해 있었으며 郡의 치소는 成樂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和林格爾縣 서북 土城子鄕 古城)이다. 관할구역은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和林格爾縣, 淸水河, 卓資縣, 察哈爾右翼中旗 등지이다. 後漢시대에 영역이 줄어들었다가 말기에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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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史記』에는 “匈奴又復入代郡․定襄․上郡”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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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史記』에는 “數爲寇, 盜邊”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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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이지사선우, 공우(共友)
지명
대군, 안문[군], 대군, 정양[군](定襄郡), 상군, 한나라, 하남, 삭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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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사선우가 즉위한 뒤 흉노가 여러 차례 삭방(朔方) 및 대군(代郡) 등을 침입하여 사람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해 감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