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제가 관영(灌嬰)에게 우현왕을 공격하도록 지시했으나 제북왕(濟北王)의 모반으로 군대를 후퇴시킴
효문[제](孝文帝)가 즉위하자 다시 화친을 했다. [하지만] 그의 3년(전 여름에주 001흉노 우현왕이 하남 땅으로 쳐들어와 자리를 잡고 노략질을 하자 이에 문제가 조를 내렸다. “한나라와 흉노는 형제가 되어 변경을 침해하지 않아 흉노에게 [물자를] 보내주는 것이 아주 많다. 지금 우현왕이 그 나라를 벗어나 백성들을 거느리고 하남 땅에 사는 것은 예전에 없던 이상한 일이다. 오가면서 [변방의] 장성에 들어와 관리와 병사들을 잡아 죽이거나, 말을 몰아주 002
상군의 장성을 지키고 있던 오랑캐[蠻夷]주 003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고향에 살 수 없게 했다. 변경의 관리를 모욕하고 들어와 도둑질을 하여 그 오만주 004하고 무도함이 심한데, [이것은] 약속이 아니다. 변경의 관리와 거기(車騎) 8만을주 005징발해 고노(高奴)
주 006로 가게 하고, 승상(丞相)주 007
관영(灌嬰)
주 008
각주 008)
을 보내 [그들을] 이끌고 우현왕을 공격하게 해라.” [결국] 우현왕은 장성 밖으로 달아났다. 문제가 태원에 행행하였다. 이 때 제북왕(濟北王)주 009이 [그 틈을 타] 모반하자 [급히] 문제가 [장안으로] 귀환하면서 승상이 흉노[胡]를 공격하려고 했던 군대를 물렸다.주 010
灌嬰(?~전176) : 睢陽(지금의 河南省 商丘市 남쪽) 사람으로 원래 비단 상인이었다. 그는 劉邦이 沛公이 되었을 때부터 그를 도왔다. 楚나라와 漢나라의 승패를 결정하는 榮陽 전투에서 中大夫로 楚나라를 격파하여 糧道를 끊는 큰 공을 세웠다. 御史大夫가 되어 齊와 淮北을 평정하였다. 高祖 즉위 이후 車騎將軍으로 燕王을 격파하고 漢王 信을 토벌하여 穎陰侯로 봉해졌다. 匈奴 토벌 중에 平城에서 고생하였다. 돌아와 陳豨를 토벌하고 黥布의 반란 역시 진압하였다. 高祖 사후에 列侯로 惠帝와 呂后를 모셨다. 하지만 呂后가 죽은 뒤 ‘周勃, 陳平 등과 함께 呂氏를 몰아내고 代王을 맞아들여 文帝로 추대하였다. 周勃을 이어 승상이 되었는데, 匈奴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죽었다(『漢書』 권41 「樊酈滕灌傅靳周傳」 : 2080~2086).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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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8)
灌嬰(?~전176) : 睢陽(지금의 河南省 商丘市 남쪽) 사람으로 원래 비단 상인이었다. 그는 劉邦이 沛公이 되었을 때부터 그를 도왔다. 楚나라와 漢나라의 승패를 결정하는 榮陽 전투에서 中大夫로 楚나라를 격파하여 糧道를 끊는 큰 공을 세웠다. 御史大夫가 되어 齊와 淮北을 평정하였다. 高祖 즉위 이후 車騎將軍으로 燕王을 격파하고 漢王 信을 토벌하여 穎陰侯로 봉해졌다. 匈奴 토벌 중에 平城에서 고생하였다. 돌아와 陳豨를 토벌하고 黥布의 반란 역시 진압하였다. 高祖 사후에 列侯로 惠帝와 呂后를 모셨다. 하지만 呂后가 죽은 뒤 ‘周勃, 陳平 등과 함께 呂氏를 몰아내고 代王을 맞아들여 文帝로 추대하였다. 周勃을 이어 승상이 되었는데, 匈奴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죽었다(『漢書』 권41 「樊酈滕灌傅靳周傳」 : 2080~2086).
- 각주 009)
- 각주 010)
색인어
- 이름
- 효문[제](孝文帝), 문제, 관영(灌嬰), 문제, 문제
- 지명
- 하남, 한나라, 하남, 상군, 고노(高奴), 장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