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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묵특선우(冒頓單于)가 혼유(渾庾), 굴역(屈射), 정령(丁零). 격곤(鬲昆), 신리(薪犁) 등 다섯나라를 복속함

  • 국가
    흉노(匈奴)
그 후 [묵특선우는] 북방으로 혼유(渾窳)주 001
각주 001)
渾窳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몽골공화국 북방 시베리아 오브강과 셀렝게강 주변 즉, 匈奴의 북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史記』에는 “渾庾”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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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석(屈射)주 002
각주 002)
屈射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음은 ‘굴석’ 또는 ‘굴역’이다. 주로 몽골공화국 북방 시베리아 바이칼 호 동쪽 지역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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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丁零)주 003
각주 003)
丁零 : 기원전 3세기∼기원후 5세기에 걸쳐 몽골 초원에서 유목한 투르크계 종족을 총칭한다. 丁令 또는 丁靈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車輪’을 나타내는 고대 투르크어 ‘테그레크(tegrek)’의 음역이라는 설과 투르크(türk)를 음역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匈奴의 전성시대에는 바이칼호의 남쪽에서 알타이산맥지방에 걸쳐 거주하면서 그 지배를 받다가 이후 독립하여 匈奴를 공격하였다. 魏晉南北朝時代에는 丁零의 일부가 분산하여 중국 북변에서 北西邊 사이에 흩어져 살았고 일부가 中國 내부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주력은 몽골 지역에 살면서 鮮卑, 柔然 등과 대립하였다. 몽골고원에 남아 있던 丁零 유목민들을 中國人은 高車丁零․高車라고 불렀다. 4세기 이후에 柔然이 몽골 초원을 지배하게 되면서 정복되었다. 中國에서는 이들을 勅勒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 이후 隋唐代 바이칼호 남쪽에서 아랄해, 카스피해에 걸친 영역에 분포한 것으로 中國에 기록된 鐵勒이 바로 高車, 즉 丁零의 후예들이다(段連勤,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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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곤(隔昆)주 004
각주 004)
隔昆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몽골공화국의 사얀산맥 북쪽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상류지역에 거주했다. 그 이후 堅昆으로, 唐代에는 黠戛斯로 불렸다. 『史記』에는 “鬲昆”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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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리(新䔣)주 005
각주 005)
新䔣 : 고대 종족의 명칭이다. 몽골 초원의 북방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소재지는 알 수 없다. 『史記』에는 “薪犂”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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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다섯]주 006
각주 006)
渾窳, 屈射, 丁零, 隔昆, 新䔣 등은 다섯 개의 작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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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國]주 007
각주 007)
國 : 일반적으로는 ‘나라’로 번역되나 어떤 구체적인 정치집단으로 보기보다는 부족 내지는 하나의 종족집단을 의미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북방민족에 대한 기록에서 國 내지는 部 등이 혼용되어 사용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突厥에서는 이것을 일(il) 또는 엘(el)이라고 했고, 몽골에서는 이것을 울루스(ulus)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층차의 단위가 모두 포함된다(丁載勳, 2003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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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복속시켰다. 이에 흉노의 귀인(貴人)과 대신(大臣)들이 모두 [그에게] 감복하여 묵특[선우] 주 008
각주 008)
『史記』에는 “單于”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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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현군으로 [받들어] 모셨다.

  • 각주 001)
    渾窳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몽골공화국 북방 시베리아 오브강과 셀렝게강 주변 즉, 匈奴의 북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史記』에는 “渾庾”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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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屈射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음은 ‘굴석’ 또는 ‘굴역’이다. 주로 몽골공화국 북방 시베리아 바이칼 호 동쪽 지역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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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丁零 : 기원전 3세기∼기원후 5세기에 걸쳐 몽골 초원에서 유목한 투르크계 종족을 총칭한다. 丁令 또는 丁靈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車輪’을 나타내는 고대 투르크어 ‘테그레크(tegrek)’의 음역이라는 설과 투르크(türk)를 음역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匈奴의 전성시대에는 바이칼호의 남쪽에서 알타이산맥지방에 걸쳐 거주하면서 그 지배를 받다가 이후 독립하여 匈奴를 공격하였다. 魏晉南北朝時代에는 丁零의 일부가 분산하여 중국 북변에서 北西邊 사이에 흩어져 살았고 일부가 中國 내부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주력은 몽골 지역에 살면서 鮮卑, 柔然 등과 대립하였다. 몽골고원에 남아 있던 丁零 유목민들을 中國人은 高車丁零․高車라고 불렀다. 4세기 이후에 柔然이 몽골 초원을 지배하게 되면서 정복되었다. 中國에서는 이들을 勅勒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 이후 隋唐代 바이칼호 남쪽에서 아랄해, 카스피해에 걸친 영역에 분포한 것으로 中國에 기록된 鐵勒이 바로 高車, 즉 丁零의 후예들이다(段連勤,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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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隔昆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몽골공화국의 사얀산맥 북쪽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상류지역에 거주했다. 그 이후 堅昆으로, 唐代에는 黠戛斯로 불렸다. 『史記』에는 “鬲昆”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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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新䔣 : 고대 종족의 명칭이다. 몽골 초원의 북방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소재지는 알 수 없다. 『史記』에는 “薪犂”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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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渾窳, 屈射, 丁零, 隔昆, 新䔣 등은 다섯 개의 작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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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國 : 일반적으로는 ‘나라’로 번역되나 어떤 구체적인 정치집단으로 보기보다는 부족 내지는 하나의 종족집단을 의미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북방민족에 대한 기록에서 國 내지는 部 등이 혼용되어 사용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突厥에서는 이것을 일(il) 또는 엘(el)이라고 했고, 몽골에서는 이것을 울루스(ulus)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층차의 단위가 모두 포함된다(丁載勳, 2003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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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史記』에는 “單于”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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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묵특선우, 묵특[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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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특선우(冒頓單于)가 혼유(渾庾), 굴역(屈射), 정령(丁零). 격곤(鬲昆), 신리(薪犁) 등 다섯나라를 복속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