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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2차례의 대완원정 결과 공에 따라 관직을 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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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大夏)
처음에 이사장군이 이차원정[後行]을 갔을 때, 천자께서 사신을 오손에게 보내어 통고하기를 많은 군대를 징발하여 [한나라 군대와] 힘을 합하여 대완을 공격하라고 했다. 오손은 2천 명의 기병을 보내었지만 양쪽을 저울질하며 전진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사장군이 동쪽으로 행군할 때 지나가는 도중에 있는 여러 소국들이 대완의 격파 소식을 듣고 모두 그 자제로 하여금 군대를 따라서 보내 들어와 [공물을] 헌상하였으며, 천자를 뵙고 그리하여 인질이 되었다. 이사장군이 대완을 정벌함에 있어서 군정 조시성이 힘을 다해 싸웠는데 그의 공이 가장 많았다. 또한 상관걸은 두려워 않고 [적국 안에] 깊이 들어갔고, 이치는 그를 위해서 전략을 세웠다. 군대가 옥문으로 들어온 것이 만여 명이고 군마는 천여 필이었다. 이사장군의 이차원정에서 군대는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사자가 많이 생길 수 없었는데, 장교들이 탐욕스러워 그들 다수가 사졸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군량을] 갈취하여 그로 인해서 사상자가 많이 생겼다. 천자께서는 그들이 만 리 먼 곳에 가서 대완을 정벌했다고 해서 허물을 기록치 아니하시고, 이광리해서후(海西侯)에 봉하고, 직접 욱성왕을 참수한 기사 조제신치후(新畤侯)로 봉했으며, 군정 조시성을 광록대부(光祿大夫)주 001
각주 001)
光祿大夫 : 大夫 중에서는 최고위(秩二千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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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상관걸을 소부(少府)주 002
각주 002)
少府 : 秦漢代의 官職으로 九卿의 하나이고 秩二千石이었다. 皇室의 財政을 관장하고, 宮廷에서 필요로 하는 일용품을 공급하며, 궁정의 시종과 수공업을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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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치를 상당(上黨)주 003
각주 003)
上黨 : 현재의 山西 和順·楡社 等縣 以南, 沁河 以東의 지명. 지대가 매우 높아서 예부터 하늘과 한 무리(黨)를 이룬다는 뜻에서 上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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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태수로 삼았다. 군관들 가운데 구경(九卿)에 오른 자가 3명이나 되었고, 제후상(諸侯相)주 004
각주 004)
諸侯相 : 諸侯王國의 相. 처음에 高帝 때에 王國에 丞相을 두어 衆官들을 통할토록 했으며 秩二千石이고 조정에서 임명하였는데, 景帝 이후 諸侯王들이 王國을 다스릴 수 없게 된 뒤에 丞相을 相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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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郡守)주 005
각주 005)
郡守 : 戰國時代에 처음 두어졌다. 당초 武職으로 邊郡의 방위를 담당했으나, 후에 郡 단위 지방행정기구의 장관으로 변모되었다. ‘守’라고 略稱되었으며 秩二千石이었다. 景帝 2년(전155)에 太守로 개명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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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석(二千石)주 006
각주 006)
二千石 : 漢의 官秩로서 郡守(太守)에 대한 通稱으로도 사용되었다. 『漢書』 「百官公卿表」에 대한 顔注는 “二千石은 (月各)百二十斛”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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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오른 자가 백여 명이었으며, 천 석(千石)주 007
각주 007)
千石 : 漢의 官秩로 比二千石 다음에 위치. 『漢書』 「百官公卿表」에 대한 顔注는 “千石은 (月各)九十斛”이라고 하였다. 御史中丞, 丞相의 長史 등이 이 등급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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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 [스스로] 열심을 내어 갔던주 008
각주 008)
奮行 : 『集解』는 『漢書音義』를 인용하여 “奮은 迅이다. 스스로 즐겨 간 사람들을 뜻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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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관직은 그들의 기대를 넘었고, 죄를 지어서 갔던 사람들은 모두 그 노고로써 [죄를] 무르게 주었다.주 009
각주 009)
絀其勞 : 『集解』는 徐廣을 인용하여 “奮行者와 適行者가 비록 모두 功勞를 세웠으나, 이제 賞을 내림에 있어서 그 전에 罪지은 것[을 무르는 것]으로 賞賜를 대신하였으므로, ‘그 노고를 絀했다.’라고 말한 것인데, 絀은 抑退 [즉 되무르다]는 뜻이다. 이는 본시 適行한 경우 功勞가 아주 크지 않다면 그것으로 무르고, 奮行者와 같이 상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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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졸들에게 내린 하사액은 4만 금이었다. 두 차례의 대완원정은 대체로 4년 만에 끝나게 된 것이다.

  • 각주 001)
    光祿大夫 : 大夫 중에서는 최고위(秩二千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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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少府 : 秦漢代의 官職으로 九卿의 하나이고 秩二千石이었다. 皇室의 財政을 관장하고, 宮廷에서 필요로 하는 일용품을 공급하며, 궁정의 시종과 수공업을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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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上黨 : 현재의 山西 和順·楡社 等縣 以南, 沁河 以東의 지명. 지대가 매우 높아서 예부터 하늘과 한 무리(黨)를 이룬다는 뜻에서 上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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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諸侯相 : 諸侯王國의 相. 처음에 高帝 때에 王國에 丞相을 두어 衆官들을 통할토록 했으며 秩二千石이고 조정에서 임명하였는데, 景帝 이후 諸侯王들이 王國을 다스릴 수 없게 된 뒤에 丞相을 相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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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郡守 : 戰國時代에 처음 두어졌다. 당초 武職으로 邊郡의 방위를 담당했으나, 후에 郡 단위 지방행정기구의 장관으로 변모되었다. ‘守’라고 略稱되었으며 秩二千石이었다. 景帝 2년(전155)에 太守로 개명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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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二千石 : 漢의 官秩로서 郡守(太守)에 대한 通稱으로도 사용되었다. 『漢書』 「百官公卿表」에 대한 顔注는 “二千石은 (月各)百二十斛”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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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千石 : 漢의 官秩로 比二千石 다음에 위치. 『漢書』 「百官公卿表」에 대한 顔注는 “千石은 (月各)九十斛”이라고 하였다. 御史中丞, 丞相의 長史 등이 이 등급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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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奮行 : 『集解』는 『漢書音義』를 인용하여 “奮은 迅이다. 스스로 즐겨 간 사람들을 뜻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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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絀其勞 : 『集解』는 徐廣을 인용하여 “奮行者와 適行者가 비록 모두 功勞를 세웠으나, 이제 賞을 내림에 있어서 그 전에 罪지은 것[을 무르는 것]으로 賞賜를 대신하였으므로, ‘그 노고를 絀했다.’라고 말한 것인데, 絀은 抑退 [즉 되무르다]는 뜻이다. 이는 본시 適行한 경우 功勞가 아주 크지 않다면 그것으로 무르고, 奮行者와 같이 상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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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조시성, 상관걸, 이치, 이광리, 해서후(海西侯), 조제, 신치후(新畤侯), 조시성, 상관걸, 이치
지명
한나라, 대완, 대완, 대완, 대완, 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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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례의 대완원정 결과 공에 따라 관직을 제수함 자료번호 : jo.k_0001_0123_0080_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