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대완이 한나라에 말을 주기를 거부하자 천자가 이광리 등을 보내 대완을 공격하게 함

  • 국가
    대하(大夏)
한나라 사신이 [외국으로] 간 사람들이 이미 많아졌고, 그 중 젊은이들[少從]주 001
각주 001)
少從 : 외국으로 파견된 사신들 가운데 지위가 낮거나 젊은 사람을 지칭한다. 『集解』 : “『漢書音義』에 ‘少從이란 [원래는] 계산한 것과 같지 않다는 뜻인데, 從行하는 사람들 가운데 微少한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進熟이라는 말이 成熟한 사람을 그럴싸하게 표현하는 말인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닫기
은 대체로 천자에게 나아가 그를 알게 되었으며, 그들이 “대완이사성(貳師城) 주 002
각주 002)
貳師(nzi-si)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호젠드와 사마르칸드 중간에 있는 Uratepe 부근의 Sutrushana(혹은 Usrushana)에 해당되는 곳으로 본다. 그러나 Pulleyblank(1966 : 26)는 아랍 역사가들의 기록에 보이는 Nesef 혹은 Nakhshab(현재의 Karshi)로 비정하였다.
닫기
에 좋은 말이 있는데 숨겨놓고는 한나라 사신에게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천자는 대완의 말을 좋아했으므로 이를 기쁜 마음으로 듣고, 용맹한 인물인 차령(車令) 등에게 천금(千金)과 금마(金馬)주 003
각주 003)
金馬 : 금으로 주조한 말을 뜻할텐데, 물론 실물 크기는 아닐 것이다. 기원후 2세기경의 분묘에서 발굴된 靑銅馬를 보면 높이가 대략 40 ~ 50cm 정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닫기
를 갖고 가서 대완왕에게 이사성의 좋은 말을 달라고 청하라고 하였다. 대완에는 [이미] 한나라 물자가 풍부했기 때문에 서로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염수(鹽水)를 지나서 [오려고 했지만] 여러 차례 실패했다.주 004
각주 004)
鹽水中數敗 : 鹽水는 鹽澤, 즉 롭 노르를 지칭하며 자세한 내용은 『漢書』 「西域傳」의 註釋 참조.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鹽水지역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패배했다.’가 되겠지만,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다. 따라서, 이는 한나라 사신이 鹽水가 있는 지역을 경과하여 대완으로 오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正義』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孔文祥이 말하기를 ‘鹽은 鹽澤이다. 물이 廣遠하여 風波가 일어나기도 하며 여러 차례 실패했다.’고 하였다. 裴矩의 『西域記』에는 ‘西州 高昌縣의 東쪽에 있으며, 東南쪽으로 瓜州와 1,300리 떨어져 있다. 모두 沙磧뿐인 땅이며 水草를 찾아보기 어렵고 사방이 모두 위험하다. 道路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行人들은 오로지 人畜의 骸骨과 駞馬의 糞으로 標驗을 삼을 수밖에 없다. 그곳의 道路가 험악하므로 人畜이 約行하지 않으면, 사막 안에서 때때로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고, 형체는 보이지 않는데, 노래나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자주 사람을 잃어버리는데 순식간에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되니, 이로 인하여 사람들이 자주 죽음을 당한다. 대저 도깨비들[魑魅魍魎]의 소행이다.’라고 하였다.”
닫기
그 북쪽으로 나가면 오랑캐에게 약탈당하고, 남쪽으로 나가면 수초가 없다.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이어서 식량을 구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한나라 사신 수백 명이 한 무리가 되어 오지만 항상 식량이 부족하여 죽는 사람이 반이상인데, 어찌 대군을 보낼 수 있겠는가?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사의 말[貳師馬]은 대완의 보마(寶馬)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나라 사신에게 [말을] 주기를 거부했다. 한나라 사신은 분노하여 욕을 퍼붓고주 005
각주 005)
妄言 : 『集解』 : “如淳이 말하기를 ‘욕하다’는 뜻이다.”
닫기
금마를 부셔 버리고는 떠나갔다. 대완의 귀족이 분노하며 “한나라 사신이 우리를 매우 멸시한다.”고 말하고, 한나라 사신을 떠나 보낸 뒤 그 동쪽 변경의 욱성(郁成) 주 006
각주 006)
郁成(iuk-ziäng) : 미확인 지명. 余太山(2005 : 43)은 Ush, Uzkent, Gasiani 등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닫기
에게 한나라 사신을 가로막고 죽이고 그 재물을 빼앗으라고 하였다. 이에 천자께서 크게 노하셨다. 일찍이 대완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들 가운데 요정한(姚定漢) 주 007
각주 007)
다른 자료에서는 확인이 안 되는 인물이다.
닫기
등이 말하기를, 대완의 군대가 취약하니 만일 3천 명이 안 되는 [소수의] 한나라 병사를 동원한다고 해도 강력한 쇠뇌[彊弩]로 공격하면 대완을 격파하고 모두 포로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천자는 이미 착야후 [조파노]로 하여금 누란을 공격하라고 했는데, 그가 700명의 기병을 데리고 먼저 도착하여 그 왕을 포로로 잡은 적이 있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천자는] 정한 등의 말이 옳다고 여기고 또한 자신이 총애하는 이씨(李氏)에게 봉작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광리(李廣利) 주 008
각주 008)
李廣利 : (? ~ 전90). 中山(현재의 河北 定縣)人. 그의 누이 李夫人은 武帝의 총애를 입고 劉髆을 출생했다. 이런 연줄로 李廣利도 등용되어 太初 元年(전104) 大宛의 善馬를 구하기 위해 貳師城 원정의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貳師將軍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本文에서도 설명되었듯이 원정하는 도중 沿道의 도시들이 식량을 제공해 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다가 貳師城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敦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武帝의 嚴命을 받아 다시 수만 명의 군사를 규합하여 2차원정을 감행하였고, 貳師城의 水源을 차단하면서 40일간을 포위한 끝에 굴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원래의 목표였던 善馬는 불과 수십 필밖에 구하지 못했지만, 주위의 康居·烏孫 등에게 漢의 위용을 과시하는 결과를 낳았고, 李廣利는 貳師원정의 공으로 海西侯에 봉해졌다. 후일 天漢 2년(전99)과 天漢 4년(전97) 흉노원정을 나갔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征和 3년(전90) 황제의 명으로 흉노를 치러 출정했는데, 李夫人의 아들 昌邑哀王(劉髆)을 皇太子로 옹립하려는 문제와 연관된 讒訴를 받게 되었다. 그는 흉노에 대한 戰果를 올려 만회하려고 했지만 도리여 패배하고 포로가 되어 살해되는 운명을 맞았다.
닫기
를 이사장군(貳師將軍)으로 삼고, 속국에서 징발한 기병 6천 명과 아울러 군국(郡國)의 불량배들[惡少年]주 009
각주 009)
惡少年 : 顔注는 『漢書』 卷7 「昭帝紀」에서 “惡少年은 無賴子弟를 뜻한다.”고 하였고, 卷61 「張騫·李廣利傳」에서는 “行義가 없는 者”라고 설명하였다.
닫기
수만 명을 데리고 가서 대완을 정벌하도록 했다. 그가 이사성에 도착해서 좋은 말을 취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에 ‘이사장군’이라는 칭호를 준 것이다. 조시성(趙始成)을 군정(軍正)주 010
각주 010)
軍正 : 春秋시대에 처음 두어졌으며 軍隊의 司法官이다.
닫기
으로 삼고, 과거에 호후(浩侯)였던 왕회(王恢)로 하여금 군대의 향도(導軍)로 삼았으며, 이치(李哆)를 교위(校尉)로 삼아 군대를 통제하도록 하였다. 이는 태초(太初) 원년(전104)의 일이었다. 또한 관동(關東) 주 011
각주 011)
關東 : 秦·漢·唐은 長安에 도읍을 정했던 왕조로, 函谷關 혹은 潼關 以東지역을 關東이라 불렀으며 ‘關外’라고도 하였다. 戰國七雄 가운데 秦을 제외한 나머지 六國에 대해서 ‘關東六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닫기
에서는 메뚜기 떼가 크게 일어나 서쪽으로 돈황까지 확대되었다.

  • 각주 001)
    少從 : 외국으로 파견된 사신들 가운데 지위가 낮거나 젊은 사람을 지칭한다. 『集解』 : “『漢書音義』에 ‘少從이란 [원래는] 계산한 것과 같지 않다는 뜻인데, 從行하는 사람들 가운데 微少한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進熟이라는 말이 成熟한 사람을 그럴싸하게 표현하는 말인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2)
    貳師(nzi-si)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호젠드와 사마르칸드 중간에 있는 Uratepe 부근의 Sutrushana(혹은 Usrushana)에 해당되는 곳으로 본다. 그러나 Pulleyblank(1966 : 26)는 아랍 역사가들의 기록에 보이는 Nesef 혹은 Nakhshab(현재의 Karshi)로 비정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3)
    金馬 : 금으로 주조한 말을 뜻할텐데, 물론 실물 크기는 아닐 것이다. 기원후 2세기경의 분묘에서 발굴된 靑銅馬를 보면 높이가 대략 40 ~ 50cm 정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鹽水中數敗 : 鹽水는 鹽澤, 즉 롭 노르를 지칭하며 자세한 내용은 『漢書』 「西域傳」의 註釋 참조.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鹽水지역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패배했다.’가 되겠지만,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다. 따라서, 이는 한나라 사신이 鹽水가 있는 지역을 경과하여 대완으로 오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正義』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孔文祥이 말하기를 ‘鹽은 鹽澤이다. 물이 廣遠하여 風波가 일어나기도 하며 여러 차례 실패했다.’고 하였다. 裴矩의 『西域記』에는 ‘西州 高昌縣의 東쪽에 있으며, 東南쪽으로 瓜州와 1,300리 떨어져 있다. 모두 沙磧뿐인 땅이며 水草를 찾아보기 어렵고 사방이 모두 위험하다. 道路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行人들은 오로지 人畜의 骸骨과 駞馬의 糞으로 標驗을 삼을 수밖에 없다. 그곳의 道路가 험악하므로 人畜이 約行하지 않으면, 사막 안에서 때때로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고, 형체는 보이지 않는데, 노래나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자주 사람을 잃어버리는데 순식간에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되니, 이로 인하여 사람들이 자주 죽음을 당한다. 대저 도깨비들[魑魅魍魎]의 소행이다.’라고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5)
    妄言 : 『集解』 : “如淳이 말하기를 ‘욕하다’는 뜻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6)
    郁成(iuk-ziäng) : 미확인 지명. 余太山(2005 : 43)은 Ush, Uzkent, Gasiani 등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7)
    다른 자료에서는 확인이 안 되는 인물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8)
    李廣利 : (? ~ 전90). 中山(현재의 河北 定縣)人. 그의 누이 李夫人은 武帝의 총애를 입고 劉髆을 출생했다. 이런 연줄로 李廣利도 등용되어 太初 元年(전104) 大宛의 善馬를 구하기 위해 貳師城 원정의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貳師將軍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本文에서도 설명되었듯이 원정하는 도중 沿道의 도시들이 식량을 제공해 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다가 貳師城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敦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武帝의 嚴命을 받아 다시 수만 명의 군사를 규합하여 2차원정을 감행하였고, 貳師城의 水源을 차단하면서 40일간을 포위한 끝에 굴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원래의 목표였던 善馬는 불과 수십 필밖에 구하지 못했지만, 주위의 康居·烏孫 등에게 漢의 위용을 과시하는 결과를 낳았고, 李廣利는 貳師원정의 공으로 海西侯에 봉해졌다. 후일 天漢 2년(전99)과 天漢 4년(전97) 흉노원정을 나갔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征和 3년(전90) 황제의 명으로 흉노를 치러 출정했는데, 李夫人의 아들 昌邑哀王(劉髆)을 皇太子로 옹립하려는 문제와 연관된 讒訴를 받게 되었다. 그는 흉노에 대한 戰果를 올려 만회하려고 했지만 도리여 패배하고 포로가 되어 살해되는 운명을 맞았다.
     바로가기
  • 각주 009)
    惡少年 : 顔注는 『漢書』 卷7 「昭帝紀」에서 “惡少年은 無賴子弟를 뜻한다.”고 하였고, 卷61 「張騫·李廣利傳」에서는 “行義가 없는 者”라고 설명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10)
    軍正 : 春秋시대에 처음 두어졌으며 軍隊의 司法官이다.
     바로가기
  • 각주 011)
    關東 : 秦·漢·唐은 長安에 도읍을 정했던 왕조로, 函谷關 혹은 潼關 以東지역을 關東이라 불렀으며 ‘關外’라고도 하였다. 戰國七雄 가운데 秦을 제외한 나머지 六國에 대해서 ‘關東六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차령(車令), 요정한(姚定漢), 조파노, 정한, 이광리(李廣利), 조시성(趙始成), 왕회(王恢), 이치(李哆)
지명
한나라, 대완, 이사성(貳師城), 한나라, 대완, 이사성, 대완, 한나라, 한나라, 염수(鹽水), 한나라, 대완, 한나라, 한나라, 대완, 한나라, 한나라, 욱성(郁成), 한나라, 대완, 대완, 한나라, 대완, 누란, 대완, 이사성, 관동(關東), 돈황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대완이 한나라에 말을 주기를 거부하자 천자가 이광리 등을 보내 대완을 공격하게 함 자료번호 : jo.k_0001_0123_0080_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