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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오손이 장건을 귀환시키고 사신을 보내 한나라를 살피도록 함

  • 국가
    대하(大夏)
이에 장건대완, 강거, 대월지, 대하, 안식, 신독, 우전, 우미 및 인근의 여러 나라에 부사(副使)들을 나누어 파견했다. 오손은 향도와 통역주 001
각주 001)
導譯 : 前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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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내서 장건을 귀환시켰다. 장건[이 귀환할 때] 오손은 [황제에게] 답례를 하기 위해 사신 수십 명, 말 수십 필을 함께 보냈는데, 그것을 기회로 한나라를 살피고 그 규모를 파악하도록 했다. 장건은 돌아와서 대행(大行)주 002
각주 002)
大行 : 春秋시대에 처음 설치된 官名. ‘大行人’·‘小行人’이라고 칭해지기도 하며, 四方賓客을 영접하는 儀禮를 관장하며, 外交·出使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景帝 치세인 기원전 144년에 大行을 行人으로 改名했는데, 武帝 太初 元年(전104)에 다시 大行令으로 고쳤고 줄여서 大行이라 불렀으며, 大鴻臚에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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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배수되어 구경(九卿)주 003
각주 003)
九卿 : 漢代에는 奉常(太常), 郞中令(光祿勳), 太僕, 廷尉(大理), 典客(大鴻臚), 宗正, 治粟內史(大司農), 少府, 衛尉, 中尉(執金吾), 三輔長官 가운데 二千石一級의 중앙 각 고급행정기구의 장관들을 모두 九卿이라 칭한 것이지, 굳이 9종류의 고관만을 칭했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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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반열에 들었는데, 1년여 뒤에 사망했다.주 004
각주 004)
歲餘卒 : 일반적으로 張騫은 元狩 4년(전119)에 烏孫에 사신으로 갔다가 元鼎 2년(전115)에 귀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元鼎 2년에 大行에 배수되었고, 사망은 元鼎 4년(전113)으로 추정된다. 그의 묘지는 陝西省 成固 부근의 張家村에 있으며, 1945년 보수하는 도중에 ‘博望家造’라는 글자가 새겨진 土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Hulsewé 1979 :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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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導譯 : 前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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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大行 : 春秋시대에 처음 설치된 官名. ‘大行人’·‘小行人’이라고 칭해지기도 하며, 四方賓客을 영접하는 儀禮를 관장하며, 外交·出使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景帝 치세인 기원전 144년에 大行을 行人으로 改名했는데, 武帝 太初 元年(전104)에 다시 大行令으로 고쳤고 줄여서 大行이라 불렀으며, 大鴻臚에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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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九卿 : 漢代에는 奉常(太常), 郞中令(光祿勳), 太僕, 廷尉(大理), 典客(大鴻臚), 宗正, 治粟內史(大司農), 少府, 衛尉, 中尉(執金吾), 三輔長官 가운데 二千石一級의 중앙 각 고급행정기구의 장관들을 모두 九卿이라 칭한 것이지, 굳이 9종류의 고관만을 칭했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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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歲餘卒 : 일반적으로 張騫은 元狩 4년(전119)에 烏孫에 사신으로 갔다가 元鼎 2년(전115)에 귀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元鼎 2년에 大行에 배수되었고, 사망은 元鼎 4년(전113)으로 추정된다. 그의 묘지는 陝西省 成固 부근의 張家村에 있으며, 1945년 보수하는 도중에 ‘博望家造’라는 글자가 새겨진 土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Hulsewé 1979 :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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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장건, 장건, 장건, 장건
지명
대완, 강거, 대월지, 대하, 안식, 신독, 우전, 우미, 오손, 오손,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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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이 장건을 귀환시키고 사신을 보내 한나라를 살피도록 함 자료번호 : jo.k_0001_0123_008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