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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지(大月氏)의 위치, 풍속 등을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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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월지(大月氏)
대월지 주 001
각주 001)
大月氏 : 前註 참조. 한편, 『正義』는 『萬震南州志』를 인용하여 “天竺의 北으로 七千里 정도 가면 땅은 높고 건조하며 멀다. 國王은 ‘天子’라고 칭하며, 國中에 항상 탈 수 있는 말이 十萬匹이며, 城郭·宮殿은 大秦國과 동일하다. 人民은 赤白色이며 弓馬 다루는 법을 배운다. 土地의 所出과 진기한 보물, 그리고 입는 옷의 고급스러움은 天竺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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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완의 서쪽으로 대략 2~3천 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규수(嬀水) 주 002
각주 002)
嬀(kwie)水 : 일반적으로 아무다리아(Amu Darya, 그리이스 문헌의 Oxus)강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唐代에는 烏滸水 혹은 縛芻河 등으로 표기. Chavannes는 嬀가 Oxus강의 파흘라비(Pahlavi)어 표기인 Weh를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Pulleyblank는 ‘嬀’가 *wa를 나타내고 ‘水’도 뜻이 아니라 音을 옮긴 것으로 추정했다. 사실 아무다리아가 고대에 Vakhshu 혹은 Wakshu 등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Pulleyblank의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오늘날에도 아무다리아 상류의 한 지류에 대해서 이러한 이름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중세 이슬람권 작가인 Biruni는 Wakhsh가 그 지역의 강을 보호하는 神의 명칭이라고 기록했으며, 또한 박트리아인들은 Wakhsh를 Anahita 女神(千手를 갖고 있어서 수많은 지류를 갖는 강을 상징)과 동일시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Barthold 1977 : 65;孫毓棠 1978;Hulsewé 1979 : 116 등 참조. 玄應은 『一切經音義』에서 아무다리아를 나타내는 漢字音寫形으로 博叉, 薄叉, 婆叉 등을 들었고, 玄奘은 縛芻, 慧超는 縛叉라고 표기하였는데, 이것들은 모두 Vakhshu 혹은 Vakhsha를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桑山正進 1992 : 172 ~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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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북쪽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 남쪽은 곧 대하요, 서쪽은 곧 안식(安息)이며, 북쪽은 곧 강거입니다. 이동국가이고 가축을 따라 옮겨다니며 풍속은 흉노와 동일합니다. 활을 당길 수 있는 사람이 대략 10~20만 명입니다. 그런 까닭에 강성함을 믿고주 003
각주 003)
故時彊 : 『漢書』 「西域傳」에는 ‘故彊’. 이는 모두 ‘故恃彊’의 오류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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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를 가볍게 보았는데, 묵특(冒頓) 주 004
각주 004)
冒頓 : 흉노제국의 건국자. 치세는 기원전? ~ 174년. 頭曼의 아들이고 老上單于의 아버지. 冒頓은 몽골어에서 ‘英雄’, ‘戰士’를 뜻하는 Baghatur, 혹은 ‘聖’을 뜻하는 Bogdo의 音寫라는 추정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묵특은 기원전 206 ~ 202년 사이에 頭曼을 살해하고 單于에 즉위한 뒤, 東胡·月氏 등 당시 東西의 양대 세력을 격파하고, 고비사막 북방의 丁靈(튀르크), 鬲昆(키르기즈) 등을 공략하고 남쪽으로는 河南의 樓煩과 白羊을 병합하여 秦의 장군 蒙恬에게 빼앗긴 땅을 회복하였다. 기원전 200년 漢高祖를 유인하여 平城(山西 大同) 부근의 白登山에서 포위하여, 기원전 198년에는 흉노에게 유리한 내용의 和親條約을 체결했다. 묵특은 두 번째로 月氏를 치고 천산 북방에 거주하던 烏孫, 樓蘭, 呼揭 등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하고, 서역 제국의 통제를 위해 日逐王 휘하에 童僕都尉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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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어서자 월지를 공파했습니다. 흉노의 노상(老上) 주 005
각주 005)
老上 : 흉노의 제2대 선우로서 치세는 기원전 174 ~ 161년. 冒頓單于의 아들이며 君臣單于의 아버지. 老上稽粥單于라고도 칭해지는데, 그는 두 차례에 걸친 묵특의 월지원정에 이어 세 번째로 공격하여 月氏王을 죽이고 그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드는 戰果를 올렸다. 또한 漢人 中行說(중항열)의 도움을 받아 내적인 안정을 도모하면서 漢나라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취하여 변경에 대한 약탈전을 강화하였다. 기원전 162년에는 변경의 혼란을 우려한 文帝와 和親을 복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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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에 이르러 월지왕을 죽이고 그 머리로써 술마시는 그릇을 삼았습니다. 처음에 월지돈황(敦煌) 주 006
각주 006)
敦煌(tuən-xwəng) : 이는 원래 漢字語가 아니라 月氏 계통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Pulleyblank (1966 : 21)는 이 말이 Turfan과 어원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으며, 『水經注』에 나오는 敦薨(카라샤르의 북쪽, 바그라시 호수의 남쪽에 위치)도 마찬가지로 아마 토하라어에서 동일한 어원과 연관된 말일 것으로 추정했다. 林梅村(1998 : 77) 역시 소그드인들의 고대 서한에 敦煌은 δrw’n으로 표기되었고, 이는 吐魯番과 동일한 어원을 갖는 말이며, ‘높다[高]’는 뜻을 지닌 토하라어(A방언에서는 täprone, B방언에서는 täprauñe)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漢武帝는 元鼎 6년(전111;一說에는 元封 4 ~ 5년, 즉 전 107 ~ 106년)에 酒泉郡을 분할하여 敦煌郡을 설치했다. 治所는 敦煌縣(현재 敦煌市 西南)이었고, 甘肅省 疏勒河 以西, 玉門關 以東지역을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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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祁連) 주 007
각주 007)
祁連’(g’ji-liän) : 顔注에 의하면 祁連은 匈奴語로 ‘하늘’을 뜻하였다. 그러나 Pulleyblank(1966 : 20)는 이 말이 月氏語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麒麟과의 연관성을 시사한 바 있다. 한편, Mair는 祁連이라는 말이 라틴어에서 ‘天空, 天堂’을 뜻하는 caelum과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林梅村(1998 : 64 ~ 69)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토하라어에서 ‘聖天’을 뜻하는 klyom 혹은 klyomo의 古形 *kilyom(o)를 音寫한 것이 祁連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舊唐書』 「地理志」 伊吾條에 “天山은 州의 북쪽 20리 지점에 있으며, 一名 白山이고 胡人들은 析羅漫山이라고 부른다.”는 기사에서 析羅漫은 折羅漫의 오류이며, 한문사료에 보이는 初羅漫은 祁羅漫의 오류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모두 祁連과 같은 어원의 말을 音寫한 것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崑崙이라는 단어 역시 토하라어의 *kilyom(o)를 가장 먼저 한자어로 음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cf. 松田壽男 1970 : 43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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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살았으나 흉노에게 패배하게 되자 멀리 도망쳐, 대완을 지나서 서쪽으로 대하를 공격하여 신하로 삼았습니다. 마침내 규수의 북쪽에 도읍을 정하고 왕정(王庭)으로 하였습니다. 그 나머지 [서쪽으로] 갈 수 없었던 소수의 무리들은 남산(南山)의 강족에게 보호를 받으며주 008
각주 008)
원문은 “保南山羌”인데,保는 원래 ‘보호하다, 방어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의] 보호를 구하다’, 즉 ‘保於南山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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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지(小月氏)라고 불리웁니다.”

  • 각주 001)
    大月氏 : 前註 참조. 한편, 『正義』는 『萬震南州志』를 인용하여 “天竺의 北으로 七千里 정도 가면 땅은 높고 건조하며 멀다. 國王은 ‘天子’라고 칭하며, 國中에 항상 탈 수 있는 말이 十萬匹이며, 城郭·宮殿은 大秦國과 동일하다. 人民은 赤白色이며 弓馬 다루는 법을 배운다. 土地의 所出과 진기한 보물, 그리고 입는 옷의 고급스러움은 天竺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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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嬀(kwie)水 : 일반적으로 아무다리아(Amu Darya, 그리이스 문헌의 Oxus)강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唐代에는 烏滸水 혹은 縛芻河 등으로 표기. Chavannes는 嬀가 Oxus강의 파흘라비(Pahlavi)어 표기인 Weh를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Pulleyblank는 ‘嬀’가 *wa를 나타내고 ‘水’도 뜻이 아니라 音을 옮긴 것으로 추정했다. 사실 아무다리아가 고대에 Vakhshu 혹은 Wakshu 등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Pulleyblank의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오늘날에도 아무다리아 상류의 한 지류에 대해서 이러한 이름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중세 이슬람권 작가인 Biruni는 Wakhsh가 그 지역의 강을 보호하는 神의 명칭이라고 기록했으며, 또한 박트리아인들은 Wakhsh를 Anahita 女神(千手를 갖고 있어서 수많은 지류를 갖는 강을 상징)과 동일시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Barthold 1977 : 65;孫毓棠 1978;Hulsewé 1979 : 116 등 참조. 玄應은 『一切經音義』에서 아무다리아를 나타내는 漢字音寫形으로 博叉, 薄叉, 婆叉 등을 들었고, 玄奘은 縛芻, 慧超는 縛叉라고 표기하였는데, 이것들은 모두 Vakhshu 혹은 Vakhsha를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桑山正進 1992 : 172 ~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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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故時彊 : 『漢書』 「西域傳」에는 ‘故彊’. 이는 모두 ‘故恃彊’의 오류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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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冒頓 : 흉노제국의 건국자. 치세는 기원전? ~ 174년. 頭曼의 아들이고 老上單于의 아버지. 冒頓은 몽골어에서 ‘英雄’, ‘戰士’를 뜻하는 Baghatur, 혹은 ‘聖’을 뜻하는 Bogdo의 音寫라는 추정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묵특은 기원전 206 ~ 202년 사이에 頭曼을 살해하고 單于에 즉위한 뒤, 東胡·月氏 등 당시 東西의 양대 세력을 격파하고, 고비사막 북방의 丁靈(튀르크), 鬲昆(키르기즈) 등을 공략하고 남쪽으로는 河南의 樓煩과 白羊을 병합하여 秦의 장군 蒙恬에게 빼앗긴 땅을 회복하였다. 기원전 200년 漢高祖를 유인하여 平城(山西 大同) 부근의 白登山에서 포위하여, 기원전 198년에는 흉노에게 유리한 내용의 和親條約을 체결했다. 묵특은 두 번째로 月氏를 치고 천산 북방에 거주하던 烏孫, 樓蘭, 呼揭 등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하고, 서역 제국의 통제를 위해 日逐王 휘하에 童僕都尉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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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老上 : 흉노의 제2대 선우로서 치세는 기원전 174 ~ 161년. 冒頓單于의 아들이며 君臣單于의 아버지. 老上稽粥單于라고도 칭해지는데, 그는 두 차례에 걸친 묵특의 월지원정에 이어 세 번째로 공격하여 月氏王을 죽이고 그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드는 戰果를 올렸다. 또한 漢人 中行說(중항열)의 도움을 받아 내적인 안정을 도모하면서 漢나라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취하여 변경에 대한 약탈전을 강화하였다. 기원전 162년에는 변경의 혼란을 우려한 文帝와 和親을 복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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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敦煌(tuən-xwəng) : 이는 원래 漢字語가 아니라 月氏 계통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Pulleyblank (1966 : 21)는 이 말이 Turfan과 어원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으며, 『水經注』에 나오는 敦薨(카라샤르의 북쪽, 바그라시 호수의 남쪽에 위치)도 마찬가지로 아마 토하라어에서 동일한 어원과 연관된 말일 것으로 추정했다. 林梅村(1998 : 77) 역시 소그드인들의 고대 서한에 敦煌은 δrw’n으로 표기되었고, 이는 吐魯番과 동일한 어원을 갖는 말이며, ‘높다[高]’는 뜻을 지닌 토하라어(A방언에서는 täprone, B방언에서는 täprauñe)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漢武帝는 元鼎 6년(전111;一說에는 元封 4 ~ 5년, 즉 전 107 ~ 106년)에 酒泉郡을 분할하여 敦煌郡을 설치했다. 治所는 敦煌縣(현재 敦煌市 西南)이었고, 甘肅省 疏勒河 以西, 玉門關 以東지역을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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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祁連’(g’ji-liän) : 顔注에 의하면 祁連은 匈奴語로 ‘하늘’을 뜻하였다. 그러나 Pulleyblank(1966 : 20)는 이 말이 月氏語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麒麟과의 연관성을 시사한 바 있다. 한편, Mair는 祁連이라는 말이 라틴어에서 ‘天空, 天堂’을 뜻하는 caelum과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林梅村(1998 : 64 ~ 69)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토하라어에서 ‘聖天’을 뜻하는 klyom 혹은 klyomo의 古形 *kilyom(o)를 音寫한 것이 祁連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舊唐書』 「地理志」 伊吾條에 “天山은 州의 북쪽 20리 지점에 있으며, 一名 白山이고 胡人들은 析羅漫山이라고 부른다.”는 기사에서 析羅漫은 折羅漫의 오류이며, 한문사료에 보이는 初羅漫은 祁羅漫의 오류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모두 祁連과 같은 어원의 말을 音寫한 것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崑崙이라는 단어 역시 토하라어의 *kilyom(o)를 가장 먼저 한자어로 음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cf. 松田壽男 1970 : 43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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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원문은 “保南山羌”인데,保는 원래 ‘보호하다, 방어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의] 보호를 구하다’, 즉 ‘保於南山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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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묵특(冒頓), 노상(老上)
지명
대월지, 대완, 규수(嬀水), 대하, 안식(安息), 월지, 월지, 돈황(敦煌), 기련(祁連), 대완, 대하, 규수, 남산(南山), 소월지(小月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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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지(大月氏)의 위치, 풍속 등을 설명함 자료번호 : jo.k_0001_0123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