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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장건이 도망쳐 월지에서 대하에 이르렀으나 월지의 관심을 얻지 못함

  • 국가
    대완(大宛)
흉노에 머무르는 동안주 001
각주 001)
居匈奴中 : 『漢書』 卷61에는 ‘居匈奴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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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로 [경계가] 느슨해지자 장건은 그 부하들과 함께 월지를 향해서 도망쳤다. 서쪽으로 도망친지 수십 일 만에 대완에 도착했다. 대완한나라의 풍부한 재화에 관해서 듣고 소통하려고 해도 하지 못했는데 장건을 보고는 기뻐하면서,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장건은 “한나라를 위하여 월지에 사신으로 가다가 흉노에게 [붙들려] 길이 막혔었습니다. 이제 도망쳤으니 오직 왕께서 사람을 시켜 저를 인도하시기만 [바랍니다]. 만일 제가 정말 [월지에] 이르렀다가 한나라에 돌아가게 되면, 한나라가 왕께 보내 줄 재물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완은 이를 옳다고 여겨 장건을 보내면서 그를 위해 향도와 통역주 002
각주 002)
遣騫, 爲發導繹 : 『漢書』 卷61에는 ‘遣騫, 爲發譯道’. 『索隱』은 이를 “爲發道驛抵康居”로 이해하고, “發道란 驛站을 출발하여 길을 안내해서 康居에 도달케 한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導繹’에 관해서는 ‘導驛’(嚮導와 驛傳)보다는 ‘導譯’(嚮導와 通譯)으로 이해하는 쪽이 타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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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붙여 주었다. 그가 강거(康居)주 003
각주 003)
康居 : 이에 관해서는 後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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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자 강거는 대월지(大月氏) 주 004
각주 004)
大月氏 : 前註 참조. 『正義』에는 “이 大月氏는 大宛의 西南에 위치하며, 嬀水의 北쪽에 王庭을 두었다. 『漢書』에 의하면 長安에서 11,600리 떨어져 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嬀水는 아무다리아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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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로 전달하여 데려다 주었다. 대월지의 왕은 이미 오랑캐[胡]에게 살해되었으므로 그 태자를 왕으로 세웠다.주 005
각주 005)
立其太子爲王 : 『漢書』 卷61에는 ‘立其夫人爲王’. 『史記集解』(이하 『集解』로 약칭)는 徐廣을 인용하여 “혹은 夫人이 왕을 했다고 하는데, 夷狄은 여자를 임금으로 삼기도 한다.”라고 기록했다. 余太山(2005 : 6)은 大月氏王이 피살되었을 때 太子가 어렸다면 그 母親이 攝政했던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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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大夏) 주 006
각주 006)
大夏 : 서방측 자료의 박트리아(Bactria)에 해당한다. 아무다리아 以南, 힌두쿠시 북방에 위치. 紀元前 250년경 알렉산더 제국의 동방령에서 독립한 그리이스계 셀레우코스 왕국의 太守였던 디오도투스(Diodotus)에 의해 건국되었으나 남하한 月氏에 의해 붕괴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Tarn 1938 參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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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모두주 007
각주 007)
既臣大夏而居 : 『漢書』 卷61에는 ‘既臣大夏而君之’. 『正義』는 ‘既’에 대하여 시간적 선후관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뜻과는 달리 ‘모두’를 의미한다는 注記를 덧붙이고 있으며, 여기서는 그것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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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시키며 살고 있는데, 땅은 비옥하고 약탈하는 사람도 적어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또한 스스로 한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여 특별히 오랑캐에게 복수할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장건월지에서 대하에 이르렀으나 결국 월지의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주 008
각주 008)
『索隱』에는 “要領은 要契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要契’는 물론 장건과 월지 사이의 ‘약조·합의’를 뜻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顔注는 “要는 옷의 허리춤이고 領은 옷깃이다. 대저, 옷을 잡는 사람은 허리춤과 깃을 잡는 법이다. 장건이 월지의 관심을 끌지 못하여 한나라에 복속케 할 수 없었으니, 이를 옷깃과 옷소매로 비유한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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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居匈奴中 : 『漢書』 卷61에는 ‘居匈奴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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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遣騫, 爲發導繹 : 『漢書』 卷61에는 ‘遣騫, 爲發譯道’. 『索隱』은 이를 “爲發道驛抵康居”로 이해하고, “發道란 驛站을 출발하여 길을 안내해서 康居에 도달케 한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導繹’에 관해서는 ‘導驛’(嚮導와 驛傳)보다는 ‘導譯’(嚮導와 通譯)으로 이해하는 쪽이 타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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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康居 : 이에 관해서는 後註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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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大月氏 : 前註 참조. 『正義』에는 “이 大月氏는 大宛의 西南에 위치하며, 嬀水의 北쪽에 王庭을 두었다. 『漢書』에 의하면 長安에서 11,600리 떨어져 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嬀水는 아무다리아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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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立其太子爲王 : 『漢書』 卷61에는 ‘立其夫人爲王’. 『史記集解』(이하 『集解』로 약칭)는 徐廣을 인용하여 “혹은 夫人이 왕을 했다고 하는데, 夷狄은 여자를 임금으로 삼기도 한다.”라고 기록했다. 余太山(2005 : 6)은 大月氏王이 피살되었을 때 太子가 어렸다면 그 母親이 攝政했던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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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大夏 : 서방측 자료의 박트리아(Bactria)에 해당한다. 아무다리아 以南, 힌두쿠시 북방에 위치. 紀元前 250년경 알렉산더 제국의 동방령에서 독립한 그리이스계 셀레우코스 왕국의 太守였던 디오도투스(Diodotus)에 의해 건국되었으나 남하한 月氏에 의해 붕괴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Tarn 1938 參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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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既臣大夏而居 : 『漢書』 卷61에는 ‘既臣大夏而君之’. 『正義』는 ‘既’에 대하여 시간적 선후관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뜻과는 달리 ‘모두’를 의미한다는 注記를 덧붙이고 있으며, 여기서는 그것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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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索隱』에는 “要領은 要契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要契’는 물론 장건과 월지 사이의 ‘약조·합의’를 뜻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顔注는 “要는 옷의 허리춤이고 領은 옷깃이다. 대저, 옷을 잡는 사람은 허리춤과 깃을 잡는 법이다. 장건이 월지의 관심을 끌지 못하여 한나라에 복속케 할 수 없었으니, 이를 옷깃과 옷소매로 비유한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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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장건, 장건, 장건, 장건, 장건
지명
월지, 대완, 대완, 한나라, 한나라, 월지, 월지, 한나라, 한나라, 대완, 대월지(大月氏), 대월지, 대하(大夏), 한나라, 월지, 대하, 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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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이 도망쳐 월지에서 대하에 이르렀으나 월지의 관심을 얻지 못함 자료번호 : jo.k_0001_0123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