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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한열(韓說) 등을 보내 동월과 전투를 벌임

  • 국가
    동월(東越)
여선(餘善)은 ‘무제(武帝)’새를 새겨 자립하여 그 백성을 속이고 망언을 일삼았다. 천자는 횡해장군(橫海將軍) 한열(韓說) 주 001
각주 001)
橫海將軍 韓說 : 『史記』 「衛將軍驃騎列傳」에 “將軍 韓說은 弓高侯의 庶孫이다. 교위로 대장군을 따라 공을 세워 용액후가 되었다. 주금률에 걸려 봉후를 잃었다. 원정 6년에 대조로 횡해장군이 되어 동월을 쳐 공을 세워 안도후가 되었다. 태초 3년에 유격장군이 되어 오원 밖 열성에 주둔하였다. 광록훈이 되어 태자궁에서 고를 파내 위태자가 살해하였다(將軍韓說, 弓高侯庶孫也. 以校尉從大將軍有功, 爲龍額侯, 坐酎金失侯. 元鼎六年, 以待詔爲橫海將軍, 擊東越有功, 爲按道侯. 以太初三年爲游擊將軍, 屯於五原外列城. 爲光祿勳, 掘蠱太子宮, 衛太子殺之).”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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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내 구장(句章) 주 002
각주 002)
句章 : 『索隱』에 인용된 鄭氏에 의하면 句章의 句는 음이 ‘구(勾)’이며 會稽의 縣이다. 『正義』에 의하면 句章故城은 越州 鄮縣 서쪽 100리에 있으며 漢의 縣이다. 현재의 浙江省 餘饒市 동남쪽 50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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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출격하도록 하였는데, 바다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가게 하였다. 누선장군 양복(楊僕)무림(武林)에서 출격하였고, 중위(中尉)주 003
각주 003)
中尉 : 수도의 治安을 담당하고 국가의 武庫를 관리하는 관직이다. 병졸을 이끌고 경성을 지키나 때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기도 한다. 九卿 중의 하나이며 秩은 中二千石이다. 후에 ‘執金吾’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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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온서(王溫舒) 주 004
각주 004)
王溫舒 : 漢武帝기 대표적인 酷吏이다. 陽陵(현재의 陝西省 高陵縣) 사람이며 관리가 되어서 治獄으로 廷史가 되었고, 張湯을 섬겨 御史로 승진하였다. 당시 도적을 감독하였는데, 매우 혹독하여 살상이 많았으며 廣平都尉로 승진, 廣平 일대가 道不拾遺하여 천자가 이 소식을 듣고 河內太守에 임명, 얼마 안 있어 다시 中尉로 승진을 거듭한다. 東越 원정에서 돌아와 비리가 적발되어 잠시 좌천되었다가 中尉 소속 병졸을 돌려 通天臺 축성에 이용한 공로로 少府에 임명되고 다시 右內史까지 승진한다. 뒤에 그가 저지른 비리가 적발되어 三族에 처해져 자살하였다(『史記』 「酷吏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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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령(梅嶺)에서 출격하였으며,주 005
각주 005)
『史記』와 달리 「將相表」와 『漢書』 「武帝本紀」에는 韓說과 王溫舒는 會稽에서 출격하고 楊僕은 預章에서 출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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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越侯)는 과선장군(戈船將軍)과 하뢰장군(下瀨將軍)주 006
각주 006)
梁廷楠의 『南越吾主傳』에 의하면, 戈船將軍은 鄭嚴이고 下瀨將軍은 田甲이었다고 한다. 모두 漢에 귀의해서 후가 된 남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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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어 약사(若邪) 주 007
각주 007)
若邪 : 현재의 浙江省 紹興 이남이다. 『漢書』 「兩粤傳」에는 ‘如邪’로 되어 있다. 『正義』에 의하면 越州에 若耶山과 若耶溪가 있다. ‘若’은 ‘如’와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正義』는 若邪를 越州에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沈欽韓은 越州라면 너무 멀다고 생각하여 『輿地廣記』를 인용하여 新昌縣 서쪽에 鹽溪가 있어 일명 ‘若邪溪’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若邪라고 보았다(『考證』, 46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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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白沙) 주 008
각주 008)
白沙 : 현재 江西省 鄱陽縣 서쪽에 있다. 『正義』는 預州에 白沙山이 있고 백사 동쪽이 이전의 閩州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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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출격하였다. 원봉(元封) 원년(전110) 겨울, 모두 동월로 들어갔다. 동월은 평소대로 군대를 일으켜 험한 곳에 의지하여 순북장군(徇北將軍)주 009
각주 009)
徇北將軍 : 순북은 ‘徇罰 북방’, 즉 북방[漢]의 죄를 돌아다니며 대중에게 널리 알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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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무림을 지키도록 하였는데, 누선장군의 몇몇 교위(校尉)를 괴멸시키고 장리(長吏)주 010
각주 010)
長吏 : 『漢書』 「兩粤傳」에는 ‘長史’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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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살해하였다. 누선장군은 전당(錢唐) 주 011
각주 011)
錢唐 : 縣名. 『正義』는 杭州의 縣이라 하였고, 顔師古는 “회계현(錢唐, 會稽縣也)”이라 하였다. 治所가 현재의 浙江省 杭州市 서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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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고(轅終古) 주 012
각주 012)
轅終古 : 『正義』에 의하면 轅은 姓이고 終古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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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끌고 순북장군을 베니, [원종고를] 어아후(禦兒侯) 주 013
각주 013)
禦兒侯 : 『集解』에 인용된 『漢書音義』에 의하면, 禦兒는 吳南亭이다. 『正義』는 ‘禦’자가 당시에는 ‘語’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語兒鄕은 蘇州 嘉興縣 남쪽 70리에 있는데, 官이 설치한 도로에 임해 있다고 한다. 현재의 浙江省 餘杭縣 동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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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봉하였다. [누선장군이 거느린 한나라] 군대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의 일이었다[自兵未往].주 014
각주 014)
自兵未往 : 『考證』은 이 구절을 뒤에 연결시키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중화서국본에 따라 문단을 앞에서 끊어서 해석하였다. 『考證』처럼 뒷문단과 연결시키면, 한나라 군대가 이르기 전에 월연후 오양이 여선을 죽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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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橫海將軍 韓說 : 『史記』 「衛將軍驃騎列傳」에 “將軍 韓說은 弓高侯의 庶孫이다. 교위로 대장군을 따라 공을 세워 용액후가 되었다. 주금률에 걸려 봉후를 잃었다. 원정 6년에 대조로 횡해장군이 되어 동월을 쳐 공을 세워 안도후가 되었다. 태초 3년에 유격장군이 되어 오원 밖 열성에 주둔하였다. 광록훈이 되어 태자궁에서 고를 파내 위태자가 살해하였다(將軍韓說, 弓高侯庶孫也. 以校尉從大將軍有功, 爲龍額侯, 坐酎金失侯. 元鼎六年, 以待詔爲橫海將軍, 擊東越有功, 爲按道侯. 以太初三年爲游擊將軍, 屯於五原外列城. 爲光祿勳, 掘蠱太子宮, 衛太子殺之).”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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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句章 : 『索隱』에 인용된 鄭氏에 의하면 句章의 句는 음이 ‘구(勾)’이며 會稽의 縣이다. 『正義』에 의하면 句章故城은 越州 鄮縣 서쪽 100리에 있으며 漢의 縣이다. 현재의 浙江省 餘饒市 동남쪽 50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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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中尉 : 수도의 治安을 담당하고 국가의 武庫를 관리하는 관직이다. 병졸을 이끌고 경성을 지키나 때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기도 한다. 九卿 중의 하나이며 秩은 中二千石이다. 후에 ‘執金吾’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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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王溫舒 : 漢武帝기 대표적인 酷吏이다. 陽陵(현재의 陝西省 高陵縣) 사람이며 관리가 되어서 治獄으로 廷史가 되었고, 張湯을 섬겨 御史로 승진하였다. 당시 도적을 감독하였는데, 매우 혹독하여 살상이 많았으며 廣平都尉로 승진, 廣平 일대가 道不拾遺하여 천자가 이 소식을 듣고 河內太守에 임명, 얼마 안 있어 다시 中尉로 승진을 거듭한다. 東越 원정에서 돌아와 비리가 적발되어 잠시 좌천되었다가 中尉 소속 병졸을 돌려 通天臺 축성에 이용한 공로로 少府에 임명되고 다시 右內史까지 승진한다. 뒤에 그가 저지른 비리가 적발되어 三族에 처해져 자살하였다(『史記』 「酷吏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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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史記』와 달리 「將相表」와 『漢書』 「武帝本紀」에는 韓說과 王溫舒는 會稽에서 출격하고 楊僕은 預章에서 출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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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梁廷楠의 『南越吾主傳』에 의하면, 戈船將軍은 鄭嚴이고 下瀨將軍은 田甲이었다고 한다. 모두 漢에 귀의해서 후가 된 남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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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若邪 : 현재의 浙江省 紹興 이남이다. 『漢書』 「兩粤傳」에는 ‘如邪’로 되어 있다. 『正義』에 의하면 越州에 若耶山과 若耶溪가 있다. ‘若’은 ‘如’와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正義』는 若邪를 越州에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沈欽韓은 越州라면 너무 멀다고 생각하여 『輿地廣記』를 인용하여 新昌縣 서쪽에 鹽溪가 있어 일명 ‘若邪溪’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若邪라고 보았다(『考證』, 46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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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白沙 : 현재 江西省 鄱陽縣 서쪽에 있다. 『正義』는 預州에 白沙山이 있고 백사 동쪽이 이전의 閩州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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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徇北將軍 : 순북은 ‘徇罰 북방’, 즉 북방[漢]의 죄를 돌아다니며 대중에게 널리 알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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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長吏 : 『漢書』 「兩粤傳」에는 ‘長史’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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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錢唐 : 縣名. 『正義』는 杭州의 縣이라 하였고, 顔師古는 “회계현(錢唐, 會稽縣也)”이라 하였다. 治所가 현재의 浙江省 杭州市 서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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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轅終古 : 『正義』에 의하면 轅은 姓이고 終古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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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3)
    禦兒侯 : 『集解』에 인용된 『漢書音義』에 의하면, 禦兒는 吳南亭이다. 『正義』는 ‘禦’자가 당시에는 ‘語’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語兒鄕은 蘇州 嘉興縣 남쪽 70리에 있는데, 官이 설치한 도로에 임해 있다고 한다. 현재의 浙江省 餘杭縣 동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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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4)
    自兵未往 : 『考證』은 이 구절을 뒤에 연결시키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중화서국본에 따라 문단을 앞에서 끊어서 해석하였다. 『考證』처럼 뒷문단과 연결시키면, 한나라 군대가 이르기 전에 월연후 오양이 여선을 죽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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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여선(餘善), 한열(韓說), 양복(楊僕), 왕온서(王溫舒), 원종고(轅終古), 원종고, 어아후(禦兒侯)
지명
구장(句章), 무림(武林), 매령(梅嶺), 약사(若邪), 백사(白沙), 무림, 전당(錢唐),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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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한열(韓說) 등을 보내 동월과 전투를 벌임 자료번호 : jo.k_0001_0114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