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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여선이 여가(呂嘉)를 치겠다고 청하고 은밀히 남월과 내통함

  • 국가
    동월(東越)
원정(元鼎) 5년(전112)에 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월왕 여선이 상서하여 병졸 8천 명을 이끌고 누선장군(樓船將軍)을 따라 여가(呂嘉) 등을 치겠노라고 청하였다. 군대가 게양(揭揚) 주 001
각주 001)
揭陽 : 秦代 설치되었으며 南海郡 속현이다. 治所는 현재의 廣東省 揭陽市 西北이다. 揭陽嶺 남쪽에 있어 揭陽이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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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자 바다에 파도가 심하다는 핑계로 더 나아가지 않은 채 두 마음을 품고 은밀히 남월과 내통하고 있었다. 번우(番禺)를 격파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때 누선장군 양복(楊僕) 주 002
각주 002)
楊僕 : 그의 사적에 대해서는, 『史記』 「酷吏列傳」에 “楊僕은 宜陽 사람이다. 千夫로 관리가 되었다. 河南郡守 案의 추천으로 御史가 되었고 關東의 도적을 감찰하였다. 尹齊를 모방하여 다스렸다. 벼슬이 主爵都尉에까지 이르러 九卿의 반열에 들어섰다. 천자가 능력이 있다고 여겨 南越이 반란을 일으키자 樓船將軍에 제수하였고 공을 세워 將梁侯에 봉하였다. 荀彘에게 잡혔다가 병사하고 말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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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신에게 서신을 올리게 하여 곧바로 군대를 일으켜 동월을 치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천자는 사졸이 지쳐 있다고 하며 이를 허락하지 않고 군대를 일단 멈추게 하고 모든 교위들에게 예장군(豫章郡) 매령(梅嶺) 주 003
각주 003)
梅嶺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의하면, 梅嶺은 會稽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索隱』은 徐廣의 이 설이 틀렸다고 하며 豫章 30리에 梅嶺이 洪崖山 기슭에 있으며 옛날 驛道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正義』는 『括地志』를 인용하여 梅嶺은 虔化縣 동북 128리에 있으며, 虔州는 漢대에도 豫章郡 소속이었으나 두 곳 모두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江西省 寧都縣 동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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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주둔하여 명을 기다리도록 하였다.

  • 각주 001)
    揭陽 : 秦代 설치되었으며 南海郡 속현이다. 治所는 현재의 廣東省 揭陽市 西北이다. 揭陽嶺 남쪽에 있어 揭陽이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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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楊僕 : 그의 사적에 대해서는, 『史記』 「酷吏列傳」에 “楊僕은 宜陽 사람이다. 千夫로 관리가 되었다. 河南郡守 案의 추천으로 御史가 되었고 關東의 도적을 감찰하였다. 尹齊를 모방하여 다스렸다. 벼슬이 主爵都尉에까지 이르러 九卿의 반열에 들어섰다. 천자가 능력이 있다고 여겨 南越이 반란을 일으키자 樓船將軍에 제수하였고 공을 세워 將梁侯에 봉하였다. 荀彘에게 잡혔다가 병사하고 말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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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梅嶺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의하면, 梅嶺은 會稽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索隱』은 徐廣의 이 설이 틀렸다고 하며 豫章 30리에 梅嶺이 洪崖山 기슭에 있으며 옛날 驛道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正義』는 『括地志』를 인용하여 梅嶺은 虔化縣 동북 128리에 있으며, 虔州는 漢대에도 豫章郡 소속이었으나 두 곳 모두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江西省 寧都縣 동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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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여선, 여가(呂嘉), 양복(楊僕)
지명
남월, 게양(揭揚), 남월, , 번우(番禺), 예장군(豫章郡), 매령(梅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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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이 여가(呂嘉)를 치겠다고 청하고 은밀히 남월과 내통함 자료번호 : jo.k_0001_0114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