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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월이 남월을 공격한 뒤 한나라가 군대를 일으켰으나 민월왕 영(郢)의 동생인 여선(餘善)이 영을 죽이자 군대를 해산함

  • 국가
    동월(東越)
건원(建元) 6년(전135)에 민월이 남월을 공격하였다. 남월은 천자와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지 않고 이 사실을 [에] 알렸다. 천자는 대행(大行)주 001
각주 001)
大行 : 『漢書』 「百官公卿表」에 의하면, “전객이며 진관이다. 귀의해 오는 만이를 담당한다. 승이 있다. 경제 중원 6년에 대행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무제 태초 원년에 다시 대홍려로 바꾸었다(典客, 秦官, 掌諸歸義蠻夷, 有丞. 景帝中六年)更名大行令, 武帝太初元年更名大鴻臚).” 秩은 中二千石이며 丞의 秩은 千石이다. 제후왕과 열후 그리고 귀의한 이민족의 책봉, 조빙, 연회에서의 의례를 담당하였다. 또한 지방에서 올라오는 上計吏들의 접대도 담당하였다. 속관에는 行人令, 丞, 譯官令, 丞, 別火(獄官)令, 丞과 郡邸長丞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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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회(王恢) 주 002
각주 002)
王恢 : 燕나라 사람이며 武帝시기 흉노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흉노가 화친을 청하자 한안국과는 반대로 정벌을 주장하여 武帝시기 흉노 원정의 시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제안한 馬邑 매복전이 실패로 끝난 뒤 그 추죄로 자살하고 말았다. 그와 韓安國과의 흉노전쟁에 관한 논의는 『史記』 「韓長孺傳」에 상세히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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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豫章) 주 003
각주 003)
預章 : 漢高帝 초년(전202)에 설치된 郡. 郡治는 南昌이었고 18개 縣을 관할하였다. 분포지역은 赣江, 盱江, 信江, 修水, 袁水 연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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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출병하도록 하고, 대농(大農)주 004
각주 004)
大農 : 『史記』 「景帝本紀」에 景帝 中元 6년(전145) “치속내사를 대농으로 고치다(治粟內史爲大農).”라고 하였는데, 정확한 명칭은 ‘大農令’이다. 『集解』에 인용된 『漢書』 「百官公卿表」에 의하면, “치속내사는 진관으로 곡물과 재화를 담당한다(治粟內史, 秦官, 掌穀貨也).”라고 하였으니 국가재정을 담당하는 관직이다. 『漢書』에는 ‘大司農’으로 되어 있는데, 武帝 太初 원년(전104)에 大司農으로 개칭되었다. 太初 元年 이전이니 대농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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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안국(韓安國) 주 005
각주 005)
韓安國(? ~ 전127) : 梁縣 成安(현재의 汝州 小屯村 北쪽) 사람이다. 建元 초에 太尉 田蚡의 추천으로 北地都尉에 임명되었고 얼마 안 있어 大農, 즉 大司農으로 영전하였다. 뒤에 閩越의 원정 뒤에는 御史大夫가 되었으며, 이때 匈奴 원정을 둘러싸고 王恢와 갑론을박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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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會稽)에서 출병하도록 하였는데, 모두 장군(將軍)에 임명하였다. 군대가 미처 영을 넘지 못했을 때 민월왕(閩越王) 영(郢)은 군사를 징발하여 험한 지세에 의지하여 저항하였다. 그러자 의 동생인 여선(餘善)이 (민월의) 상(相) 및 종친들과 [다음과 같이] 모의하였다. “왕이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남월을 공격해놓고 천자에게 주청하지 않으니 천자의 군대가 징벌하러 오고 있소. 지금 한나라의 군대는 수가 많고 강하오. 지금 운좋아 이긴다 해도 뒤에 오는 군사는 더 많을테니 나라가 망해야 끝날 것이오. 지금 왕을 죽여 천자에게 사죄합시다. 천자가 이를 받아들여 군사를 물리면 온전히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요,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힘을 다해 싸웁시다. 이기지 못하면 도망하여 바다로 나갑시다.” 모두들 “좋습니다.”라고 찬성하였다. 그리하여 왕을 쳐서 죽이고[鏦殺]주 006
각주 006)
鏦殺 : 『索隱』에 인용된 劉氏에 의하면, 음이 ‘창(窗)’으로도 읽는다고 하였다. 그 뜻은 치다[撞]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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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머리를 사신에게 들려보내 대행(大行)에게 바치도록 하였다. 대행이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왕을 벌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왕의 머리가 내 앞에 있고 [저들이] 용서를 빌고 있으니 이는 싸우지 않고도 적을 제거한 것이다[不戰而耘].주 007
각주 007)
不戰而耘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의하면, 『漢書』에는 ‘耘’이 ‘殞’으로 되어 있다. 그 글자는 ‘풀을 베어 없애다.’는 뜻으로 제거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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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임의로 군대를 멈추고 대농(大農)의 군대에게 연락을 취하는 한편, 사신에게 왕의 머리를 가지고 말을 달려 천자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천자는 두 장군의 군대를 해산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그리고 “영(郢) 등이 원흉이지, 저 무제(無諸)의 손자인 요군(繇君) 축(丑) 주 008
각주 008)
繇君 丑 : 『索隱』에 의하면, 繇의 음은 ‘요(搖)’이고 邑名이며, 丑은 사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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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홀로 모의에 가담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낭중장(郎中將)주 009
각주 009)
郎中將 : 郎中을 총괄하는 관이다. 궁중의 문을 수비하는 직책으로 郎中令 소속이다. 일의 계통에 따라 車將, 戶將, 騎將으로 불리기도 한다. 秩은 比千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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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내 을 세워 월요왕(越繇王)으로 삼고 민월(閩越)의 선조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 각주 001)
    大行 : 『漢書』 「百官公卿表」에 의하면, “전객이며 진관이다. 귀의해 오는 만이를 담당한다. 승이 있다. 경제 중원 6년에 대행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무제 태초 원년에 다시 대홍려로 바꾸었다(典客, 秦官, 掌諸歸義蠻夷, 有丞. 景帝中六年)更名大行令, 武帝太初元年更名大鴻臚).” 秩은 中二千石이며 丞의 秩은 千石이다. 제후왕과 열후 그리고 귀의한 이민족의 책봉, 조빙, 연회에서의 의례를 담당하였다. 또한 지방에서 올라오는 上計吏들의 접대도 담당하였다. 속관에는 行人令, 丞, 譯官令, 丞, 別火(獄官)令, 丞과 郡邸長丞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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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王恢 : 燕나라 사람이며 武帝시기 흉노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흉노가 화친을 청하자 한안국과는 반대로 정벌을 주장하여 武帝시기 흉노 원정의 시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제안한 馬邑 매복전이 실패로 끝난 뒤 그 추죄로 자살하고 말았다. 그와 韓安國과의 흉노전쟁에 관한 논의는 『史記』 「韓長孺傳」에 상세히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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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預章 : 漢高帝 초년(전202)에 설치된 郡. 郡治는 南昌이었고 18개 縣을 관할하였다. 분포지역은 赣江, 盱江, 信江, 修水, 袁水 연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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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大農 : 『史記』 「景帝本紀」에 景帝 中元 6년(전145) “치속내사를 대농으로 고치다(治粟內史爲大農).”라고 하였는데, 정확한 명칭은 ‘大農令’이다. 『集解』에 인용된 『漢書』 「百官公卿表」에 의하면, “치속내사는 진관으로 곡물과 재화를 담당한다(治粟內史, 秦官, 掌穀貨也).”라고 하였으니 국가재정을 담당하는 관직이다. 『漢書』에는 ‘大司農’으로 되어 있는데, 武帝 太初 원년(전104)에 大司農으로 개칭되었다. 太初 元年 이전이니 대농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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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韓安國(? ~ 전127) : 梁縣 成安(현재의 汝州 小屯村 北쪽) 사람이다. 建元 초에 太尉 田蚡의 추천으로 北地都尉에 임명되었고 얼마 안 있어 大農, 즉 大司農으로 영전하였다. 뒤에 閩越의 원정 뒤에는 御史大夫가 되었으며, 이때 匈奴 원정을 둘러싸고 王恢와 갑론을박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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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鏦殺 : 『索隱』에 인용된 劉氏에 의하면, 음이 ‘창(窗)’으로도 읽는다고 하였다. 그 뜻은 치다[撞]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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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不戰而耘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의하면, 『漢書』에는 ‘耘’이 ‘殞’으로 되어 있다. 그 글자는 ‘풀을 베어 없애다.’는 뜻으로 제거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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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繇君 丑 : 『索隱』에 의하면, 繇의 음은 ‘요(搖)’이고 邑名이며, 丑은 사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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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郎中將 : 郎中을 총괄하는 관이다. 궁중의 문을 수비하는 직책으로 郎中令 소속이다. 일의 계통에 따라 車將, 戶將, 騎將으로 불리기도 한다. 秩은 比千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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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왕회(王恢), 한안국(韓安國), 영(郢), , 여선(餘善), 영(郢), 무제(無諸), 축(丑),
지명
남월, 남월, , 예장(豫章), 회계(會稽), 남월,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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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월이 남월을 공격한 뒤 한나라가 군대를 일으켰으나 민월왕 영(郢)의 동생인 여선(餘善)이 영을 죽이자 군대를 해산함 자료번호 : jo.k_0001_0114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