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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趙胡)가 왕위에 즉위한 뒤 민월왕 추영(騶郢)이 남월을 공격하자 한나라에 상서(上書)함

 
  • 국가남월(南越)
조타(趙佗)의 손자인 조호(趙胡)가 남월왕이 되었다.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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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서는 문단이 나뉘어져 있지만, 앞의 주에서 말했듯이, 建元 4년은 조타의 손자인 胡가 즉위한 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이 구절에서 문단이 나뉘어서는 안 되고 “至建元四年(卒), 佗孫胡爲南越王”로 두 구절을 연결시켜야 된다. 『集解』는 皇甫謐의 말을 인용하여, 南越王 趙佗가 建元 4년에 사망하였는데, 이때가 漢왕조가 세워진 지 70년째 되는 해로서 조타의 나이는 100여 세 정도가 된다고 하여 조타가 사망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때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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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漢書』에는 ‘立三年’으로 되어 있으니, 武帝 建元 6년(전135)이다.

민월왕(閩越王) 추영(騶郢)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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騶郢 : 『史記』 「東越列傳」에 姓은 騶氏이고 閩越王 無諸의 아들이라 하였다.

이 군사를 일으켜 남월 변방에 있는 몇몇 읍을 공격하자 조호가 사람을 보내 상서하기를, “양월(兩越)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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兩越 : 南越과 閩越을 가리킨다.

은 모두 한(漢)의 번신(藩臣)이 되었으니 함부로 군대를 일으켜 서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월이 군대를 일으켜 신(臣)의 나라를 침범하였습니다. 신이 마음대로 군대를 일으킬 수 없어 오직 천자의 명만 기다릴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천자는 남월이 의리가 있고 맡은 바 직분을 잘 지켰음을 칭찬하며 남월을 위해 군사를 일으켜, 두 명의 장군을 파견하여 민월을 토벌하게 하였다.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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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 「武帝本紀」 建元 6년(전135)조에 “閩越王郢攻南越. 遣大行王恢將兵出豫章, 大司農韓安國出會稽, 擊之.未至, 越人殺郢降, 兵還”이라고 하여, 閩越 토벌작전이 建元 6년(전135)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두 장군은 王恢와 韓安國으로, 王恢는 預章에서, 韓安國은 會稽에서 출격하였다.

군대가 령(嶺)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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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嶺은 梅嶺일 가능성이 높다. 『史記』 「東越列傳」에 20여 년 뒤인 元鼎 5년(전112)에 누선장군 양복이 동월을 공격할 것을 청하자 예장의 매령에서 대기토록 하였다(至元鼎五年, 南越反……是時樓船將軍楊僕使使上書, 願便引兵擊東越. 上曰士卒勞倦, 不許, 罷兵, 令諸校屯豫章梅領待命)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梅嶺은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의하면, 會稽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고, 『索隱』은 徐廣의 설명이 틀렸다고 하며 豫章 30리에 梅嶺이 있으며 洪崖山 기슭이며 옛날 驛道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正義』는 『括地志』를 인용하여 梅嶺은 虔化縣 동북 128리에 있으며, 虔州는 漢대에도 豫章郡 소속이었으나 두 곳 모두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譚其驤의 『中國歷史地圖集(秦漢)』에는 預章郡에 소속되어 있으며, 현재 江西省 寧都縣 동북에 해당한다.

을 넘기도 전에 민월왕의 동생인 추여선(騶餘善) [주007]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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騶餘善 : 閩越王 騶郢의 아우이다. 閩越王 騶郢이 군사를 일으켜 南越을 공격하자 漢의 군대가 이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형인 騶郢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자립하였다. 武帝 元鼎 6년에는 ‘武帝’를 자칭하며 漢나라 군대와 맞서다가 형과 마찬가지로 吳衍 등 閩越 내부 사람들에게 피살되었다(『史記』 「東越列傳」).

추영을 죽이고 항복하자 군대를 해산하였다.

 

주 001
『史記』에서는 문단이 나뉘어져 있지만, 앞의 주에서 말했듯이, 建元 4년은 조타의 손자인 胡가 즉위한 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이 구절에서 문단이 나뉘어서는 안 되고 “至建元四年(卒), 佗孫胡爲南越王”로 두 구절을 연결시켜야 된다. 『集解』는 皇甫謐의 말을 인용하여, 南越王 趙佗가 建元 4년에 사망하였는데, 이때가 漢왕조가 세워진 지 70년째 되는 해로서 조타의 나이는 100여 세 정도가 된다고 하여 조타가 사망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주 002
이때가 『漢書』에는 ‘立三年’으로 되어 있으니, 武帝 建元 6년(전135)이다.
주 003
騶郢 : 『史記』 「東越列傳」에 姓은 騶氏이고 閩越王 無諸의 아들이라 하였다.
주 004
兩越 : 南越과 閩越을 가리킨다.
주 005
『漢書』 「武帝本紀」 建元 6년(전135)조에 “閩越王郢攻南越. 遣大行王恢將兵出豫章, 大司農韓安國出會稽, 擊之.未至, 越人殺郢降, 兵還”이라고 하여, 閩越 토벌작전이 建元 6년(전135)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두 장군은 王恢와 韓安國으로, 王恢는 預章에서, 韓安國은 會稽에서 출격하였다.
주 006
여기의 嶺은 梅嶺일 가능성이 높다. 『史記』 「東越列傳」에 20여 년 뒤인 元鼎 5년(전112)에 누선장군 양복이 동월을 공격할 것을 청하자 예장의 매령에서 대기토록 하였다(至元鼎五年, 南越反……是時樓船將軍楊僕使使上書, 願便引兵擊東越. 上曰士卒勞倦, 不許, 罷兵, 令諸校屯豫章梅領待命)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梅嶺은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의하면, 會稽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고, 『索隱』은 徐廣의 설명이 틀렸다고 하며 豫章 30리에 梅嶺이 있으며 洪崖山 기슭이며 옛날 驛道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正義』는 『括地志』를 인용하여 梅嶺은 虔化縣 동북 128리에 있으며, 虔州는 漢대에도 豫章郡 소속이었으나 두 곳 모두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譚其驤의 『中國歷史地圖集(秦漢)』에는 預章郡에 소속되어 있으며, 현재 江西省 寧都縣 동북에 해당한다.
주 007
騶餘善 : 閩越王 騶郢의 아우이다. 閩越王 騶郢이 군사를 일으켜 南越을 공격하자 漢의 군대가 이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형인 騶郢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자립하였다. 武帝 元鼎 6년에는 ‘武帝’를 자칭하며 漢나라 군대와 맞서다가 형과 마찬가지로 吳衍 등 閩越 내부 사람들에게 피살되었다(『史記』 「東越列傳」).
 
이름
조타(趙佗) , 조호(趙胡) , 추영(騶郢) , 조호 , 추여선(騶餘善) , 추영
지명
남월 , 한(漢) , 남월 , 남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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