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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진(晉)이 강성했을 때 존재한 여러 이민족을 설명

  • 국가
    흉노(匈奴)
이 무렵 진(秦)나라진(晉)나라가 강한 나라였다.주 001
각주 001)
기원전 7세기 秦 穆公(재위 전659 ~ 전621) 任好와 晉 文公(재위 전636 ~ 전628) 重耳가 覇者로서 列國 중에서 강국의 지위에 올랐던 사실을 말한다. ‘彊’은 ‘强’과 통하는데, 아래의 다른 용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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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문공은 융적을 몰아내 [그들을] 하서(河西) 주 002
각주 002)
河西 : 지금의 陝西省 동부 黃河 남단과 그 西岸 지역이다. 『漢書』에는 “西河”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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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圁水) 주 003
각주 003)
圁水 : 禿尾河라고도 한다. 지금 陝西省 북부의 榆林과 葭縣의 경계에 있다. 『漢書』에는 “居於西河圜·洛之間”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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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 주 004
각주 004)
洛水 : 지금의 北洛河로 陝西省 북부에서 발원하여 吳旗·延安縣 경계를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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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살게 하고 적적(赤翟)주 005
각주 005)
赤翟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赤狄’이라고도 한다. 春秋時代 狄人의 하나이다. 그들의 분포지역은 대체적으로 지금의 山西省 長治縣 북부에 해당되는데, 이곳에서 晉나라 사람과 섞여 살았다. 그들이 붉은 색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에 晉나라에 복속되었다. 이들과 관련하여 『左傳』 宣公 16年조에 “晉師滅赤狄潞氏”라는 기록이 있다. 과거에 赤翟이 山西省 長治縣에 거주하였는데, 本文에서는 赤翟이 河西의 圁·洛之間에 거주한다고 했다. 이로 인해 杜預는 ‘潞’를 赤翟의 다른 종류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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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적(白翟)주 006
각주 006)
白翟 : 고대 종족 명칭으로 ‘白狄’이라고도 한다. 春秋時代 狄人의 하나이다. 지금의 山西省 介休縣와 陝西省 延安市 경계지대에 거주했다가 이후에 河北省 경계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하얀 색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에 晉나라에 복속되었다. 隗姓으로 春秋時代에 晉나라와 通婚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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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불렀다. [또], 진(秦)나라목공(穆公)유여(由余) 주 007
각주 007)
由余 : 春秋時代 秦나라의 大夫인데, 그의 조상은 원래 秦나라 사람으로 戎의 땅으로 흘러들어갔다. 이후에 戎의 왕이 秦나라의 상황을 정탐하러 보냈는데 왕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秦나라에 투항하였다. 이후 秦나라는 由余의 策略을 이용하여 西戎의 8개 부락을 정복하고 땅을 천여 리 넓혀 일약 패자가 될 수 있었다(『史記』 권5 「秦本紀」 : 192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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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얻어 서융의 여덟 개 나라주 008
각주 008)
『鹽鐵論』 「論勇篇」에도 이때 정복한 나라를 여덟 개라고 하였다. 하지만 『史記』 「秦本紀」, 『韓詩外傳』, 『韓非子』 「十過篇」, 『說苑』 「反質篇」, 『金樓子』 「說蕃篇」 등에서는 모두 열두 개 나라라고 하였고, 『漢書』 「韓安國傳」에서는 열 개 나라라고 하는 등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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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에 복속되게 했다. 따라서 농[산](隴山) 주 009
각주 009)
隴山 : 지금의 六盤山 남단으로 陝西省, 甘肅省 경계에 위치한 산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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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서쪽에 면저(緜諸)주 010
각주 010)
緜諸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현재의 甘肅省 通渭縣의 서북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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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융(緄戎)주 011
각주 011)
緄戎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緄戎의 ‘緄’은 ‘混’이 되어야 한다. 『漢書』에는 “畎夷”로 되어 있다. 그들은 지금의 甘肅省 天水縣에 거주했다. 緄戎은 『春秋』에는 “犬戎”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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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환(翟䝠)주 012
각주 012)
翟䝠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로 음은 ‘적환’이다. 지금의 甘肅省 通渭縣 부근에 거주했다. 『史記』의 저본에서는 “翟䝠”을 ‘翟’과 ‘䝠’으로 끊었으나 『漢書』에는 이를 “狄獂”으로 묶어 기록하였고, 여기에서는 이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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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융이 있었고, 기산, 양산(梁山) 주 013
각주 013)
梁山 : 지금의 陝西省 韓城縣 서북쪽에 위치한 산 명칭이다. 『漢書』에는 “梁”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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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수, 칠수(漆水) 주 014
각주 014)
漆水 : 지금의 陝西省 舊同官縣에서 시작해 西南으로 耀州로 흘러들어가는 강의 명칭이다. 沮水와 합쳐 石州河가 되었다가 南으로 흘러가 渭水와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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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에는 의거(義渠)주 015
각주 015)
義渠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이들은 원래 北地郡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甘肅省 東南部와 寧夏回族自治區 南部 일대이다. 前漢시대의 名將 公孫昆邪, 公孫賀, 公孫敖 등이 모두 義渠 출신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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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려(大荔)주 016
각주 016)
大荔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이후에 명칭을 ‘臨晉’으로 바꾸었고, 馮翊에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陝西省 大荔縣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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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烏氏)주 017
각주 017)
烏氏 : 고대 종족 명칭이며 西戎의 하나로 음은 ‘오지’이다. 이들은 涇州 安定縣 동쪽 3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甘肅省 涇川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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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연(胊衍)주 018
각주 018)
胊衍 : 고대 종족의 명칭이며 西戎의 하나로 음은 ‘후연’ 또는 ‘유연’이라고 읽을 수 있다. 鹽州(지금의 寧夏回族自治區 鹽池縣) 부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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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융이 있었다. 그리고 진(晉)나라의 북쪽에 임호(林胡)주 019
각주 019)
林胡 : 고대 종족 명칭으로 ‘林人’, ‘儋林’이라고도 한다. 樓煩, 東胡와 함께 ‘三胡’라고 지칭된다. 戰國時代 지금의 山西省 朔縣에 거주했다. 목축과 수렵에 종사하였고, 말 키우는 데 능숙했다. 기원전 7세기 중반 晉나라의 북변에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5 ~ 3세기에 燕나라의 북변으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晉나라의 북변으로 이주했다. 趙나라의 肅侯(재위 전349 ~ 전326)가 군대를 보내 荏(山西省 북부)에서 대패시켰고, 武靈王이 전306년에 대파하자 그에 복속되어 공물을 바쳤다. 趙나라 孝成王(재위 전265 ~ 전244)이 李牧을 시켜 匈奴 십여 만 기를 격파할 때 이들 역시 완전히 복속되었다. 그 이후 이들은 소멸되었다. (林幹, 2003 : 45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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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번(樓煩)주 020
각주 020)
樓煩 : 고대 종족 명칭으로 林胡의 서쪽에 거주하고 있었다. 春秋末에 주로 山西省 靈武縣, 岢嵐縣 등지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騎射에 능숙하고 목축업에 종사하였다. 이후 陝北과 內蒙古 남부지역에서 활동하다가 秦나라 말기 匈奴에게 정복되었다. 이후에 지금의 內蒙古 오르도스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漢武帝 元朔 2년(전127)에 衛靑이 이들을 격파하였다. 이런 종족명으로의 해석과 달리 『史記索隱』에서는 이것을 縣의 명칭으로 해석하고 있다. 縣으로서의 樓煩은 원래 異民族의 땅으로 漢代에는 雁門郡에 속했다. 이곳은 지금의 山西省 神池, 五寨 등지에 해당한다. (林幹, 2003 : 46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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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융이 있었으며, 연나라의 북쪽에 동호(東胡)주 021
각주 021)
東胡 : 고대 종족 명칭이다. 匈奴의 동쪽에 거주했기 때문에 東胡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長成 동북의 광활한 범위에 걸쳐 살았고, 목축업에 주로 종사하였다. 春秋戰國시대에는 남으로 燕나라와 접했다. 燕나라에게 패배해 북쪽의 遼河 상류지역으로 이주했다. 秦나라 말기에 東胡가 다시 강해졌지만 匈奴의 冒頓單于에게 패배하여 대부분이 그에 병합되었다. 이들은 이후에 등장하는 烏丸과 鮮卑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습속은 水草를 따라 다니고 고정적인 주거가 없었다. 아비의 이름을 성으로 삼았고, 부자 남녀가 모두 머리를 깎아서 가볍고 편안했다. (林幹, 1995 : 9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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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융 등이 있었다. [그들은] 각각 계곡에 흩어져 살면서 나름의 군장(君長)이 있어 가끔씩 무리를 이룬 것이 백여 개의 융(戎)주 022
각주 022)
戎 : 일반적으로 중국 자료에서는 好戰的인 異民族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데, 그 용례는 아주 다양하다. 그 의미는 ‘尙武的인’, ‘軍隊의’, ‘戰爭’, ‘武器’ 등과 관련이 있다. 『左傳』에서도 戎은 “御戎(전차를 몰다)”, “戎車(전차)”와 같은 구절에서 戰車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西周時代에는 이 단어가 ‘오랑캐 또는 異民族’이라기보다는 ‘敵對國’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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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는데, 서로 하나로 [묶이지는] 않았다.

  • 각주 001)
    기원전 7세기 秦 穆公(재위 전659 ~ 전621) 任好와 晉 文公(재위 전636 ~ 전628) 重耳가 覇者로서 列國 중에서 강국의 지위에 올랐던 사실을 말한다. ‘彊’은 ‘强’과 통하는데, 아래의 다른 용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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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河西 : 지금의 陝西省 동부 黃河 남단과 그 西岸 지역이다. 『漢書』에는 “西河”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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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圁水 : 禿尾河라고도 한다. 지금 陝西省 북부의 榆林과 葭縣의 경계에 있다. 『漢書』에는 “居於西河圜·洛之間”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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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洛水 : 지금의 北洛河로 陝西省 북부에서 발원하여 吳旗·延安縣 경계를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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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赤翟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赤狄’이라고도 한다. 春秋時代 狄人의 하나이다. 그들의 분포지역은 대체적으로 지금의 山西省 長治縣 북부에 해당되는데, 이곳에서 晉나라 사람과 섞여 살았다. 그들이 붉은 색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에 晉나라에 복속되었다. 이들과 관련하여 『左傳』 宣公 16年조에 “晉師滅赤狄潞氏”라는 기록이 있다. 과거에 赤翟이 山西省 長治縣에 거주하였는데, 本文에서는 赤翟이 河西의 圁·洛之間에 거주한다고 했다. 이로 인해 杜預는 ‘潞’를 赤翟의 다른 종류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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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白翟 : 고대 종족 명칭으로 ‘白狄’이라고도 한다. 春秋時代 狄人의 하나이다. 지금의 山西省 介休縣와 陝西省 延安市 경계지대에 거주했다가 이후에 河北省 경계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하얀 색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에 晉나라에 복속되었다. 隗姓으로 春秋時代에 晉나라와 通婚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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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由余 : 春秋時代 秦나라의 大夫인데, 그의 조상은 원래 秦나라 사람으로 戎의 땅으로 흘러들어갔다. 이후에 戎의 왕이 秦나라의 상황을 정탐하러 보냈는데 왕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秦나라에 투항하였다. 이후 秦나라는 由余의 策略을 이용하여 西戎의 8개 부락을 정복하고 땅을 천여 리 넓혀 일약 패자가 될 수 있었다(『史記』 권5 「秦本紀」 : 192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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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鹽鐵論』 「論勇篇」에도 이때 정복한 나라를 여덟 개라고 하였다. 하지만 『史記』 「秦本紀」, 『韓詩外傳』, 『韓非子』 「十過篇」, 『說苑』 「反質篇」, 『金樓子』 「說蕃篇」 등에서는 모두 열두 개 나라라고 하였고, 『漢書』 「韓安國傳」에서는 열 개 나라라고 하는 등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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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隴山 : 지금의 六盤山 남단으로 陝西省, 甘肅省 경계에 위치한 산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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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緜諸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현재의 甘肅省 通渭縣의 서북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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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緄戎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緄戎의 ‘緄’은 ‘混’이 되어야 한다. 『漢書』에는 “畎夷”로 되어 있다. 그들은 지금의 甘肅省 天水縣에 거주했다. 緄戎은 『春秋』에는 “犬戎”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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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翟䝠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로 음은 ‘적환’이다. 지금의 甘肅省 通渭縣 부근에 거주했다. 『史記』의 저본에서는 “翟䝠”을 ‘翟’과 ‘䝠’으로 끊었으나 『漢書』에는 이를 “狄獂”으로 묶어 기록하였고, 여기에서는 이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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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3)
    梁山 : 지금의 陝西省 韓城縣 서북쪽에 위치한 산 명칭이다. 『漢書』에는 “梁”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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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4)
    漆水 : 지금의 陝西省 舊同官縣에서 시작해 西南으로 耀州로 흘러들어가는 강의 명칭이다. 沮水와 합쳐 石州河가 되었다가 南으로 흘러가 渭水와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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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5)
    義渠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이들은 원래 北地郡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甘肅省 東南部와 寧夏回族自治區 南部 일대이다. 前漢시대의 名將 公孫昆邪, 公孫賀, 公孫敖 등이 모두 義渠 출신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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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6)
    大荔 : 고대 종족 명칭으로 西戎의 하나이다. 이후에 명칭을 ‘臨晉’으로 바꾸었고, 馮翊에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陝西省 大荔縣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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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7)
    烏氏 : 고대 종족 명칭이며 西戎의 하나로 음은 ‘오지’이다. 이들은 涇州 安定縣 동쪽 3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곳은 지금의 甘肅省 涇川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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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8)
    胊衍 : 고대 종족의 명칭이며 西戎의 하나로 음은 ‘후연’ 또는 ‘유연’이라고 읽을 수 있다. 鹽州(지금의 寧夏回族自治區 鹽池縣) 부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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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9)
    林胡 : 고대 종족 명칭으로 ‘林人’, ‘儋林’이라고도 한다. 樓煩, 東胡와 함께 ‘三胡’라고 지칭된다. 戰國時代 지금의 山西省 朔縣에 거주했다. 목축과 수렵에 종사하였고, 말 키우는 데 능숙했다. 기원전 7세기 중반 晉나라의 북변에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5 ~ 3세기에 燕나라의 북변으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晉나라의 북변으로 이주했다. 趙나라의 肅侯(재위 전349 ~ 전326)가 군대를 보내 荏(山西省 북부)에서 대패시켰고, 武靈王이 전306년에 대파하자 그에 복속되어 공물을 바쳤다. 趙나라 孝成王(재위 전265 ~ 전244)이 李牧을 시켜 匈奴 십여 만 기를 격파할 때 이들 역시 완전히 복속되었다. 그 이후 이들은 소멸되었다. (林幹, 2003 : 45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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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0)
    樓煩 : 고대 종족 명칭으로 林胡의 서쪽에 거주하고 있었다. 春秋末에 주로 山西省 靈武縣, 岢嵐縣 등지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騎射에 능숙하고 목축업에 종사하였다. 이후 陝北과 內蒙古 남부지역에서 활동하다가 秦나라 말기 匈奴에게 정복되었다. 이후에 지금의 內蒙古 오르도스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漢武帝 元朔 2년(전127)에 衛靑이 이들을 격파하였다. 이런 종족명으로의 해석과 달리 『史記索隱』에서는 이것을 縣의 명칭으로 해석하고 있다. 縣으로서의 樓煩은 원래 異民族의 땅으로 漢代에는 雁門郡에 속했다. 이곳은 지금의 山西省 神池, 五寨 등지에 해당한다. (林幹, 2003 : 46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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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1)
    東胡 : 고대 종족 명칭이다. 匈奴의 동쪽에 거주했기 때문에 東胡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長成 동북의 광활한 범위에 걸쳐 살았고, 목축업에 주로 종사하였다. 春秋戰國시대에는 남으로 燕나라와 접했다. 燕나라에게 패배해 북쪽의 遼河 상류지역으로 이주했다. 秦나라 말기에 東胡가 다시 강해졌지만 匈奴의 冒頓單于에게 패배하여 대부분이 그에 병합되었다. 이들은 이후에 등장하는 烏丸과 鮮卑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습속은 水草를 따라 다니고 고정적인 주거가 없었다. 아비의 이름을 성으로 삼았고, 부자 남녀가 모두 머리를 깎아서 가볍고 편안했다. (林幹, 1995 : 9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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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2)
    戎 : 일반적으로 중국 자료에서는 好戰的인 異民族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데, 그 용례는 아주 다양하다. 그 의미는 ‘尙武的인’, ‘軍隊의’, ‘戰爭’, ‘武器’ 등과 관련이 있다. 『左傳』에서도 戎은 “御戎(전차를 몰다)”, “戎車(전차)”와 같은 구절에서 戰車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西周時代에는 이 단어가 ‘오랑캐 또는 異民族’이라기보다는 ‘敵對國’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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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문공, 목공(穆公), 유여(由余)
지명
진(秦)나라, 진(晉)나라, 진나라, 하서(河西), 은수(圁水), 낙수, 진(秦)나라, 진나라, 농[산](隴山), 기산, 양산(梁山), 경수, 칠수(漆水), 진(晉)나라, 연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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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진(晉)이 강성했을 때 존재한 여러 이민족을 설명 자료번호 : jo.k_0001_01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