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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한야가 변경의 이졸(吏卒)들을 해산해 주기를 요청하자 후응(侯應)이 9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함

  • 국가
    흉노(匈奴)
郅支旣誅, 呼韓邪單于且喜且懼, 上書言〔曰〕〔글자있음〕: 「常願謁見天子, 誠以郅支在西方, 恐其與烏孫俱來擊臣, 以故未得至. 今郅支已伏誅, 願入朝見.」 竟寧元年, 單于復入朝, 禮賜如初, 加衣服錦帛絮, 皆倍於黃龍時. 單于自言願壻漢氏以自親. 元帝以後宮良家子王牆 주 001
번역주 001)
『前漢書』(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嬙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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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昭君賜單于. 單于驩喜, 上書願保塞上谷以西至敦煌, 傳之無窮, 請罷邊備塞吏卒, 以休天子人民. 天子令下有司議, 議者皆以爲便. 郞中侯應習邊事, 以爲不可許. 上問狀, 〔曰〕〔글자있음〕: 「 以來, 匈奴暴桀, 寇侵邊境, 興, 尤被其害. 臣聞北邊塞至遼東, 外有陰山, 東西千餘里, 草木茂盛, 多禽獸, 本冒頓單于依阻其中, 治作弓矢, 來出爲寇, 是其苑囿也. 至孝武世, 出師征伐, 斥奪此地, 攘之於幕北. 建塞徼, 起亭隧, 築外城, 設屯戍, 以守之, 然後邊境得用少安. 幕北地平, 少草木, 多大沙, 匈奴來寇, 少所蔽隱, 從塞以南, 徑深山谷, 往來差難. 邊長老言匈奴失陰山之後, 過之未嘗不哭也. 如罷備塞戍卒, 示夷狄之大利, 不可一也. 今聖德廣被, 天覆匈奴, 匈奴得蒙全活之恩, 稽首來臣. 夫夷狄之情, 困則卑順, 彊則驕逆, 天性然也. 前以罷外城, 省亭隧, 今裁足以候望通㷭火而已. 古者安不忘危, 不可復罷, 二也. 中國有禮義之敎, 刑罰之誅, 愚民猶尙犯禁, 又況單于, 能必其衆不犯約哉! 三也. 自中國尙建關梁以制諸侯, 所以絶臣下之覬欲也. 設塞徼, 置屯戍, 非獨爲匈奴而已, 亦爲諸屬國降民, 本故匈奴之人, 恐其思舊逃亡, 四也. 近西羌保塞, 與人交通, 吏民貪利, 侵盜其畜産妻子, 以此怨恨, 起而背畔, 世世不絶. 今罷乘塞, 則生嫚易分爭之漸, 五也. 往者從軍多沒不還者, 子孫貧困, 一旦亡出, 從其親戚, 六也. 又邊人奴婢愁苦, 欲亡者多, 曰『聞匈奴中樂, 無奈候望急何!』 然時有亡出塞者, 七也. 盜賊桀黠, 羣輩犯法, 如其窘急, 亡走北出, 則不可制, 八也. 起塞以來百有餘年, 非皆以土垣也, 或因山巖石, 木柴僵落, 谿谷水門, 稍稍平之, 卒徒築治, 功費久遠, 不可勝計. 臣恐議者不深慮其終始, 欲以壹切省䌊戍, 十年之外, 百歲之內, 卒有它變, 障塞破壞, 亭隧滅絶, 當更發屯繕治, 累世之功不可卒復, 九也. 如罷戍卒, 省候望, 單于自以保塞守御, 必深德, 請求無已. 小失其意, 則不可測. 開夷狄之隙, 虧中國之固, 十也. 非所以永持至安, 威制百蠻之長策也.」

  • 번역주 001)
    『前漢書』(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嬙으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郅支, 呼韓邪單于, 郅支, 郅支, 元帝, 王牆, 侯應, , 冒頓單于, 孝武
지명
, 上谷, 敦煌, , , , 陰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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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한야가 변경의 이졸(吏卒)들을 해산해 주기를 요청하자 후응(侯應)이 9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함 자료번호 : jo.d_0002_0094_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