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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NAHF.jc.d_0003_0190ID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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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間島)를 시찰할 때에 백성의 정황과 역(役) 문제를 처분해 주길 청한 정장(呈狀)및 그에 회신하는 제사(題辭)

 
    ○云云閣下下車以來視民如子之惠山不高海不深而且以興學造士爲本一境之赤子皆欲殞首而十州之靑襟莫不延頸際此百弊俱興之時特許間島深恩厚澤延及於各面書齋云爾則自今以後不擇貧富而建塾立師敎子敎弟俾覺孝悌之方庶幾免馬牛襟裾之鄕矣古昔文翁之化何獨專美於蜀郡相如之才孰不日出村其中乎第以本尙書齋只爲四處而一則旣爲鳴寃沾化而獨於民等三處不被刀圭之惠伏乞閣下特垂一視之政島之西畔有可役而未役者限二三項處分之地幸甚
    金民和文仁學等作
    題毋論某間島日後摘奸時水道界限若不分明則斷當懲治禁斷矣以此知悉向事
    壬午四月初二日

     
    이름
    相如 , 金民和 , 文仁學
    지명
    間島 , 蜀郡 , 間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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