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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박두리

 

 

피해자의 증언

 

1924년 한국 출생

1940년 17세가 되던 어느 날, 집에 온 일본인 남자가 「일본 공장에 데려다준다」고 하기에 나는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주고 싶은 생각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만의장화(彰化)에 있는 집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간판이 걸려있고 창에 격자가 끼워진 단층집 크기의 집이었습니다. 입구에 주인과 관리인의 방이 있고, 낭하 양쪽에 많은 방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한 명 한 명 방에 들여보내졌고 찾아오는 일본병을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는 10명에서 20명 정도의 여자애가 있고 하루에 10명 정도를 상대하였습니다. 찾아오는 것은 육군과 해군 일본병으로, 토요일 일요일에는 평일보다 더욱 많은 일본병이 찾아와서 생리 중에도 쉴 수가 없었으며 허리가 아파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돈은 관리인이 받았으며 주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오른쪽 허벅지가 퉁퉁 부어서 수술했는데 그 후 다른 집으로 옮겨져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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