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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롄

 
 

이와루 다나하

 

 

피해자의 증언

 

1931년 타이완 출생, 다로코족

아버지는 무사(霧社)사건으로 살해되고 나는 아버지 사후에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였으므로 먹을 것도 없이 가난하게 생활하였습니다. 1944년 어느 날 앵(櫻) 부락 파출소의 쓰바키로부터 오오야마(大山) 부대로 가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가자 이미 4명의 원주민 여성이 있었으며, 일의 내용은 청소, 차 준비, 세탁 등이었습니다. 1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밤 「다키무라」가 동굴로 데리고 간 다음 동굴 안에서강간하였습니다. 나는 아직 열세 살로 생리가 막 시작되었을 뿐인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하반신에는 많은 피가 흐르고 질이 찢겨나가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날부터 원주민 여성은 매일 밤 7시가 되면 동굴까지 연행되어 하룻밤에 2~3명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전후 결혼하고부터 10회 임신하여 4회 유산했으나 4남 2녀를 출산하였습니다. 1992년 남편이 위독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 비밀을 말하고 남편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남편은 「잘못이 없는 인간 따위는 없다.」며 용서해 주었지만, 지금도 그 때의 끔찍한 광경을 꿈에서조차 늘 보게 되어 전율하며 눈을 뜹니다. 이 일생의 굴욕과 고통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을 것입니다. 1999년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피해의 배상․사죄를 요구하는 재판 (대만인 「위안부」출신 피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가 되었습니다.

이와루 다나하씨가 연행된 동굴의 위안소 자리는 지금도 화련(花蓮)에 남아있다. 일본군의 창고로 사용되고 있던 이 동굴 입구에는 감시 초소였던 건물의 콘크리트부분만이 지금도 남아있다.(2000년 2월 현재) 화련에서 대만 중부의 무사(霧社) 부근까지가 다로코족의 거주지이며 이와루 다나하씨 외에 다로코족의 소녀가 「위안부」피해를 입었다.
- 촬영: 柴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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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루 다나하씨가 연행된 동굴의 위안소 자리는 지금도 화련(花蓮)에 남아있다. 일본군의 창고로 사용되고 있던 이 동굴 입구에는 감시 초소였던 건물의 콘크리트부분만이 지금도 남아있다.(2000년 2월 현재) 화련에서 대만 중부의 무사(霧社) 부근까지가 다로코족의 거주지이며 이와루 다나하씨 외에 다로코족의 소녀가 「위안부」피해를 입었다.

    촬영: 柴洋子


 

이안․아파이

 

 

피해자의 증언

 

1929년 타이완 수림향(秀林鄕) 출생, 다로코족

1944년 12월 어느 날 동문(銅門) 파출소의 경관 다케무라가 군인을 한 사람 데리고 집에 와서, 나에게 부족의 거주지에 주둔하는 일본군의 창고 부대에서 세탁을 하거나 옷을 수선하는 일을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약 1개월 후 밤이 되자 다른 여자들과 함께 산에 있는 동굴로 연행되어 캄캄한 가운데 강간당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매일 밤 한 사람에서 세 사람을 상대하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위안부」를 강요당하는 중에 세 번이나 유산하는 등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오빠들도 일본군에 징집되었는데 큰오빠는 뉴기니아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나는 전후에도 이 과거의 일이 원인이 되어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등 괴로운 생활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1999년 일본 정부에 「위안부」피해의 배상 및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소하여 원고로서 몇 번이나 일본을 방문하여 증언을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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