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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난성(海南省) 하이난도(海南島) 보정(保亭)

 
 

담옥련(譚玉蓮, Tan Yulian)

 

 

피해자의 증언

 

1925年 중국·하이난도 출생

1943년 봄 18살 때 살고 있던보정현(保亭県) 남림(南林)의 도로 부설 공사에 징용 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군의 주둔지로 연행되고, 그곳에서 「전지 후근 복무대(戦地後勤服務隊)」로 뽑혀서 세탁이나 취사 등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사냥을 간다고 하는 일본병과 동행했을 때, 산속에서 폭행을 받고 몇 사람의 병사에게 윤간당했습니다. 도망가면 가족을 죽인다고 해서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날부터 병사(兵舍)의 옆에 있는 이엉으로 지붕을 이은 오두막에 넣어져 1년 이상에 걸쳐서 낮에도 밤에도 강간당했습니다. 그 후,대촌(大村)의 주둔지에서도 강간당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병이 나도 일본군은 약도 주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패전 전에 일본군이 혼란해 있는 틈에 많은 여성이 도망갔지만, 나의 마을은 일본군이 붙태우고 부모님도 살해당해 버렸으므로, 일본군의 주둔지에 있었습니다. 그 후, 근처에 살고 있던 아는 사람이 도와줘서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황옥봉(黄玉鳳, Huang Yufeng)

 

 

피해자의 증언

 

중국·하이난도(海南島) 출생

내가 사는보정현의 마을에 일본군이 들어오고 나서, 많은 마을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징용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1943년 말 무렵, 일본군 협력자인 뢰진흥(頼進興)이 「일본군의 상사가 부르고 있다. 가지 않으면 너를 찾아서 때리고, 가족을 죽인다」라고 협박해서 그 상사를 따라가다가 강변에서 강간당했습니다. 저항하면 살해당한다고 생각,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는, 거의 매일 낮에는 옥외의 노동 장소에서 일본병에게 강간당했고, 밤에는"일본 아가씨방"이라고 불리는 건물 안에서 강간당했습니다. 45년 6월, 상사가 게릴라에 살해되어 그 틈에 도망갔습니다.

 

임아금(林亜金)

 

 

피해자의 증언

 

1924년 중국·하이난도 출생

1943년의 여름,보정현(保亭県)의 마을에서 벼의 수확을 돕고 있을 때, 총을 가진 8명의 일본병이 왔습니다. 나는 일본병에게 둘러싸여 붙잡혀서 줄로 손이 묶여서 일본군의 주둔지에 끌려갔습니다. 다음 날, 나는 4명의 일본병에게 강간당했습니다. 그 후, 이번에는 다른 주둔지에 끌려가서 하루에 7, 8명의 일본병에게 강간당했습니다. 45년에 일본군이 철수할 때까지, 5개소의 주둔지를 전전하면서, 거의 매일 여러 명의 일본병에게 강간당하는 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신이 노랗게 부어, 버려져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약초로 몸이 낫자 또 끌려왔습니다.

 

담아동(譚亜洞, Tan Yadong)

 

 

피해자의 증언

 

1925년 중국·하이난도 출생

16세의 무렵, 일본군에 「전지 후근복무대(戦地後勤服務隊)」로 뽑혀서되어보정현(保亭県) 남림(南林)의 주둔지로 끌려갔습니다. 주둔지에서는 쌀의 선별 작업 등을 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일본군의 사냥에 동행했다가, 산속에서 폭행, 강간당했습니다. 이 때 맞아서 왼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낮에는 청소·세탁, 밤에는 일본병에게 강간당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산이나 동굴, 무기 공장 등에서 강간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후,십루(什漏),대촌(大村)등의 주둔지에 연행되어 강간당했습니다. 패전이 가까워져서 일본군이 혼란하고 있는 틈에 도망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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