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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

 
 

주분영(周粉英)

 

 

피해자의 증언

 

장쑤성 여고(如 )시 거주

결혼 3년째인 21세 때였다. 1938년 3월 23일, 집에서 한참 제봉을 하고 있는데 촌장의 동생이 “일본군의 명령이다”며 붙잡아서 손발이 묶인 채로 돼지가 끌려가듯이 위안소로 연행되었다. 곧바로 일본군 병사에게 폭행당하고 이제 살아 돌아갈 수 없겠다고 각오했다. 매일 3, 4명의 장교를 상대하게 했다. 나를 보면 “호레시, 호레시”라고 말했다. ‘우레시’(嬉)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를 난폭하게 다루었다. 미소를 짓지 않으면 구타를 당하고 도망치려다가 얻어맞았다. 매일 울기만 했기 때문에 눈이 부어서 급기야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돈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2007년 5월에 ‘위안부’ 피해자였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난징에서 ‘위안부’가 되었던 뇌계영(雷桂英) 씨가 4월에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부터 70년이 지나고 새로운 증언자가 나오기는 어려워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증언하려고 생각했다. 일본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다시 동일한 일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위안소가 있었던 골목
- 제공 : 東京新聞·平岩勇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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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소가 있었던 골목

    제공 : 東京新聞·平岩勇司

위안소 입구가 있던 장소
- 제공 : 東京新聞·平岩勇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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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소 입구가 있던 장소

    제공 : 東京新聞·平岩勇司


 

류택승(柳澤勝)

 

전 병사의 증언

타이완 보병 제1연대, 위안부 부대 도착

어느 가난한 마을에서의 일. ...... 흙투성이가 된 집 안에서 여성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들여다보니 중년의 지저분한 여성이었다. 곁에는 남자가 무자비하게 찔려 죽어 있었고 어린 아이도 죽어 있었다. 여자는 겁탈당한 뒤였던 것 같았다.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여자가 있다” 일본 병사가 2~3명 앞 다투어 접근해 왔다. 그냥 둘 수 없었다. “이 여자 매독에 걸려 종기투성이다. 만지면 옮는다”고 나는 급하게 말했다. “그렇구나. 지저분하네.” 병사들은 사냥감을 놓친 늑대처럼 아쉬워하면서 여성으로부터 멀어졌다. 이렇게 하여 그 여성은 가까스로 난을 피했다.


출전 : 『オレはまんねん上等兵』(エイジ出版、1981年)(저자의 부대는 장쑤성에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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