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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

 
 

전 기녀·조 씨의 고발장

 

 

피해자의 증언

 

「나는 17세 때, 유덕리(裕德里)의 유화서우(裕華書寓)에서 기녀(妓女)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곳의 영주는 대단히 무서운 사람으로 매일 지옥 같았다. ....... 게다가, 이만유(李万有)가 반동정부와 결탁하여 일본군에게 기녀를 헌납하였다. 이것은 압박 받고 있던 기녀에 대한 또 하나의 죄악이다. 만약 이만유가 나를 잡아서 일본군에게 위안품으로 헌납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다리가 열차에 단절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한 쪽 다리만으로 매일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다. 이것은 모두 이만유가 만들어 낸 것이다. 정부가 나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아 줄 것을 바란다. 1951년 6월 18일」이만유에 대한 고발대회에 제출한 고발장. 중국인민해방군 텐진시 군사관제위원회 군법처의 관계자료. 제공: 林伯耀

톈진 주둔 사령부(현재의 海光寺)
- 제공: 林伯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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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진 주둔 사령부(현재의 海光寺)

    제공: 林伯耀

톈진의 경찰국 보안과장이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허난(河南)성 일본군 주둔 부대에 공출된 86명의 기녀 가운데 도망친 42명의 기녀의 리스트가 실려 있다.
- 제공: 林伯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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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진의 경찰국 보안과장이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허난(河南)성 일본군 주둔 부대에 공출된 86명의 기녀 가운데 도망친 42명의 기녀의 리스트가 실려 있다.

    제공: 林伯耀

톈진 특별시 정부 경찰국 보안과 제2과와 제5과의 과장이 톈진 방위사령부를 방문하여 ‘위안부’ 공출 명령을 낸 두 사람의 일본군 장교와 면회했다. 이것은 과장이 염(閻)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 일본군 장교 2명의 명함이 붙어 있다. (1945년 4월 12일)
- 제공: 林伯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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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진 특별시 정부 경찰국 보안과 제2과와 제5과의 과장이 톈진 방위사령부를 방문하여 ‘위안부’ 공출 명령을 낸 두 사람의 일본군 장교와 면회했다. 이것은 과장이 염(閻)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 일본군 장교 2명의 명함이 붙어 있다. (1945년 4월 12일)

    제공: 林伯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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