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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黒龍江省) 둥닝(東寧)

 
 

김순옥(金順玉)

 

 

피해자의 증언

 

1922년 평안남도

20살때에 「공장에서 일한다」고 속아서 중국의둥닝(東寧)에 있는 일본군의 위안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30, 40명의 여성들이 같이 갔습니다.
나는 「가요코」라고 이름이 붙여져서 장교를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장교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이 되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할 수없이 중국인에게 주었습니다. 그 후석문자(石門子) 위안소로 옮겨졌는데 그곳에서도 또 임신이 되었습니다.
병사를 상대하는 여성들은 저항해서 주먹으로 맞거나 발로 채이거나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볼 일 보러 간다」고 하고 근처의 산에 가서 목을 매어 자살한 여성도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전쟁에 지자 우리들을 남기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우리들은 조선인을 따라 피난했지만, 중국군이 들어오고 나서는 흩어져 버리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중국인과 결혼했습니다. 2005년에 겨우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나눔의 집 재주)

「위안부」의 묘. 둥닝(東寧)에 있었던 것. 당시 어떤 일본인 병사가 그린 지도. 위안소와 함께「위안부」의 묘가 표시되어 있다. 1992년 일본인․재일교포․한국인의 10여명의 조사단이 이 곳을 방문하고 이 묘지위에 섰다.
- 제공:西野瑠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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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의 묘. 둥닝(東寧)에 있었던 것. 당시 어떤 일본인 병사가 그린 지도. 위안소와 함께「위안부」의 묘가 표시되어 있다. 1992년 일본인․재일교포․한국인의 10여명의 조사단이 이 곳을 방문하고 이 묘지위에 섰다.

    제공:西野瑠美子

석문자(石門子)의 위안소 흔적 1992년 6월
- 제공:西野瑠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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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문자(石門子)의 위안소 흔적 1992년 6월

    제공:西野瑠美子

석문자(石門子)의 위안소 흔적의 내부 1992년 6월
- 제공:西野瑠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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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문자(石門子)의 위안소 흔적의 내부 1992년 6월

    제공:西野瑠美子

둥닝(東寧)·석문자(石門子)의 위안소 흔적
- 제공:西野瑠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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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닝(東寧)·석문자(石門子)의 위안소 흔적

    제공:西野瑠美子

노흑산(老黒山)의 위안소 흔적 1992년 6월 25일
- 제공:西野瑠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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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흑산(老黒山)의 위안소 흔적 1992년 6월 25일

    제공:西野瑠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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