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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러시아인 「위안부」

 

러시아인 「위안부」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중국동북지방(만주)의 소련․만주 국경 지대에 주둔한 구 일본군 병사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러시아인 여성의 경우는 일본군이 설치한 위안소에 있었다(연행되었다)라기 보다는 일본병도 갔던 민간의 「매춘숙(賣春宿)」에 있었다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소련·만주 국경의 둥닝(東寧)의 석문자(石門子)에 주둔하고 있었던 당시의 일본병은 「평일에 몰래 군지정이 아닌 위안소에 간 자가 있었지만, 거기에는 『백계』라고 하는 러시아인 여성이 있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또 하얼빈이나 하이랄에서도 러시아 여성이 있었다고 하는 증언이 있다.

 

위안소 설치에 영향을 준 시베리아 출병

 

원래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를 발상한 「교훈」으로서 회자되는 것은, 1917년의 시베리아 출병이다. 일본 육군의 7개 사단의 병력 중 1개 사단에 상당하는 병사가 성병에 감염되었다고 하는 등, 성병이 만연했다. 시베리아에는 「매춘업자」가 일본인 여성을 데리고 있었지만 일본병들은 일본인 여성은 비싸서 살 수가 없었으므로, 러시아인 여성을 강간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성병이 만연한 것 같다.
중국과 일본의 전면전쟁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위안소 설치를 추진해 갔지만, 그 이유는 강간대책․성병예방․정보누설 방지․사기고양 이었다. 강간대책과 성병예방은 관련되고 있고, 중일전면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남경공략 때의 처참한 강간이 위안소 설치를 「긴요」하다고 하여, 설치를 지시한 것은 북경군 방면군 참모장 나가오카(長岡部直三郎) 「군대의 주민 행위에 관하여 주의할 건 통첩」(1938.6.27)에 명확하게 되어 있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는 시베리아 출병 때의 「교훈」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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