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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증언자료

“과거지살랑 묻지 맙시다, 가슴 아퍼요”

“과거지살랑 묻지 맙시다, 가슴 아퍼요”

  • 년도
  • 나이
  • 내용
  • 1920년
  •  
  • 충청남도 대덕군에서 출생
    (주민등록상 출생연도는 1922년)
  • 1934년
  • (15세)
  • 권번에 들어가 춤과 노래 배움
  • 1938년경
  • (19세경)
  • 일본 헌병에게 연행
    만주 등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
  • 1945년경
  • (26세경)
  • 해방 후 귀국
    행상, 노점, 당골 등으로 생계 유지
  • 1980년대
  •  
  • 권○○와 동거
  • 1992년
  • (73세)
  • 일본군 ‘위안부’ 등록
  • 1990년대
  •  
  • 동거남 권○○ 사망
  • 2004년
  • (85세)
  • 충남 보령시의 임대아파트에서 생활

유성 위치 →만주일대 위치 →유성 위치
“아이고, 가슴 아프고 속 아픈 얘기를 왜 하라고 그랴. 뭣 때문에.
“(가슴이 꽉 막힌 듯 명치끝을 쓸어 내리며) 그런 얘기를 하면은 속이 아파 가지고. 안 당해봐서 그러지 당한 사람은 그때 당한 것이 속에서 뭉치고 애(부아)가 나면 속에서 이래져.
“염병할 놈들, 썩어 벼락 맞을 놈들. 그런 일 없다고 발뺌 하면 뭣 하는 거여, 잉? 증인들이 살아있는데, 살아서 그 고통 받고 눈물 나오다 못해 피가 나오도록 울고 그렇게 저기 하는데.
“남의 청춘을 갖다가 그렇게 해 놓고서는.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을 흘리게 해 놓고서는.

노처녀

왜 그런지 무서워서 죽어도 나 시집 안 간다고 그랬어.
“[고향은] 유성 주 091
각주 091)
충청남도 대전시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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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있는데, 거기서 조금 걸어 들어가지.
“거기서 농사 짓는 사람 짓구 농사 안 짓는 사람 안 짓구 그라니께, 그렇게 촌구석도 아니고 그렇게 도회지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사는 동네야. 그래두 거기 부촌이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없어.
“우리집? 기와집은 아니어도 초가집이어도 큰-집이었지. 머슴 둘이나 있고 허니께.
“땅 솔찮이 많았지, 밭도 그렇고 논도 그렇고.
“일가들 [동네에] 많이 살았지. 교하 노가(交河.氏). 거가 고향 거시기니까.
“거기선 아주 뭐 처녀들한테 바깥에도 못 내다보게 했어. 해가 지면 요쪽에 물 한 동이씩 몰래 가지고 바깥 바람 쐴까, 통 몰랐지. 아주 내우 극진하게 시키고.
“[아버지는] 글공부 [했지]. 가르치기도 하고, 아이들.
“동네에 큰- 데 글방이라고 있어. 낮에는 일들하고 저녁에는 [아버지가] 공부 가르치고 그랬거든.
“우리 어머니는 하냥 집에 있으니께 농사 짓고 그저 그랬지 뭐.
“오빠가 서이, 남동생이 둘, 또 여동생이 하나.
“[큰]오빠는 원래가 공부도 잘 했거니와 장개를 일본서 들어 가지구, 그래 일본서 조카들 데리구 살림하구 그라니께. 그때 시절만 해두 공부 잘 하고 하니께 막 일등 선생으루 뽑혔어. 그래 가지구 일본 가서 아동들 가르키구 살았지.
“집안에서도 대농사니까 [나는] 일만 경치게 하고. 저녁에 어떻게 공부한다고 야학당이라고 있어, 옛날에. 야학당에 가고 그랬지. 거기 가서 한 시간씩 공부하고 다시 내려오고.
“[나는 그때] 노처녀여. 시집을 보낸다고 그랬는데 시집 안 간다고 그랬거든. 나 아버지 어머니한테 밭 매고 농사 짓고 혼자 이렇게 하지, 안 간다고 그랬어.

권번

창낭에 낚시를 걸고- 고갯마루에 앉었-으-니-
“내가 그때 권반 주 092
각주 092)
권번은 일제시기 기생조합을 말한다. 이것은 기생학교로서의 성격도 아울러 갖는데 주로 춤과 노래, 악기 등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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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때 열 다섯 살 먹어 들어갔지.
“친구들이 인저 다정하게 댕기니께. 그땐 뭔지두 몰르구 기상 하러 나가자 그래서.
“노래 불르구 장구 치구 소리하믄 기상이라구 그랴.
“[권번 선생이] 앞앞이 모두 이름 불르거든. 이제 아무개씨 하믄 나가서 불르라고 하믄 불르지.
“[노래를 부르던 곳이] 지금으로 말하면 극장이야. 춤 추구 노래 불르구.
“목청이 좋았었거든. 아무 거래도 잘 하긴 잘 했어.
“긍께 인자 그 바람에 재청, 재청하믄 또 나가서 ‘창낭에 낚시를 걸고 고개마루에 앉었-으-니-.’ 아주 좋다고 박수 소리가 그냥 (웃으면서) 미어졌어. 목소리가 지금보담 더 좋았구, 뙤랑뙤랑하니. 그래저래 기생으루, 지금으루 말하믄 무대를 훑구서 여기저기 다니며 난다긴다 하구.
“참말루 [그때는] 얼굴두 이렇들 않고 손두 이렇들 않구 오목도목하니 그냥 통통하구 막 얼굴두 그렇구, 그래 가지구 나가믄 (웃음을 띠며) ‘재청이요, 재청이요’, ‘앙코르, 앙코르’하고 막 그랬샀고.
“권번에선 먹구자구 하는 데가 없어.
“그-런 건(술 따르는 것은) 저 화류계지. 월급 받고 댕기는 화류계지.
“춤하고 노래만 배웠지 뭐. 그렇게 하고 제일 잘 해 가지구 상탔지 뭐.
“[상은] 치마 저고리감. 연분홍두 아주 꽃 놔서 이쁜 걸루.
“[권번은] 삼년 졸업 맡었지.
“집에 가서 [권번에 다닌다는 얘기를] 했드니, 이게 무슨 노릇이냐고- 잉, 저게 웬일이냐구 막 동네들이. 아이구 옛날만 해두 좀 개렸어야지, 양반 쌍놈을. 아주 꼼짝도 못하고 벤소만 가두 붙들려 나왔어. 그래 가지구 내가 어떤 때는 골이 나믄 벤소깐에 앉아 가지구서두 소리를 했어. 그럼 저년 미쳤는가 부다구 해. [내가 노래를] 더 크게 햐 그럼, 변소간에 앉아서.
“아부지가- 여간 그냥 몽둥이를 가지구 쫓아댕겨 아주 그냥. 아이구 죽-게 팼어.
“[내가 노래해서 받은] 상장을 가지구 돈허구 가지구서 아버지한테 가서 사정을 하구 막 저기 했더니 ‘딱 이번 한 번만 갔다오구 가지마라. 딱 이번 한 번이다.’ 그래서 권번에서 [발길을] 뚝 끊구.

뚜껑 없는 기차

끄집어내서 막 잡아 때려 싣고 떠나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도 그 얘기만 하면 가슴이 아프고 찢어지고 아주 그냥. 내가 칼 있으면 가리가리 찢었으면 좋겠어. 목이 맥히고.
“그러니까 내가 그때 열일곱 살인가, 열여덟 살 먹었나? 농촌에서 밭농사도 짓고 하잖남. 여러 명이 일꾼들 하고 퍼뜩 밭을 매는데, 누-렇게 입은 놈들이 네 명인가 다섯 명인가 올라오더니. 그놈들 눈깔 딱지도 용하다고 그랬어. [처녀를] 잘 알아 글쎄. 밭을 매는데 아 느닷없이 쏼라 쏼라하더니, (혼잣말로) 기가 맥혀. 이놈들이 와서 끌어가 막. 사람 살리라고 나는 소리소리 지르고, ‘워쩐 도적놈들이 데려간다-’ 그러니까 밭 매던 사람들이 아이구 쫓아오면서, 막 소리를 지르면서 호미만 들고 쫓아오지. 이놈들이 막 끌고 가니께 당할 수가 있나? 어떡해, 말도 모르고. 그래 뭐 아무리 조선말로 욕을 하고 악담을 해야 알아들어야지 뭐, 말을 모릉께 서로가 그렇지 뭐. 그래서 그때 끌려갔었어 내가.
“거시기 일본놈들 그러니께 헌병대, 여기 형사나 마찬가지야. 순사 보담 좀 높다는 놈들이지.
“고향에서 그렇게 밭 매다가 붙잡혀 갔으니께 알아야지 뭐. 뒤에 앉아 같이 밭 매던 아주머니들은 아이고 어떡하냐고, 그냥 왜 저러냐고 소리소리만 지르고 그랬지. 아무리 소리 질러봤자 누가 쫓아와서 말겨주는 사람 있어? 그냥 그렇게 했지. 그놈들이 무지막지하게 끌고 갔거든.
“끌려가서 뚜껑 없는 기차, 그냥 한 차로 싣고서 갔지 뭐.
“와글와글 그냥 울고. 울어봤자 소용 있나, 어떻게 뭐 해볼 도리가 있남? 꼼짝도 못하지. 누가, 조선 사람들이 말리겠어, 어떡 하겠어?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해서 끌려갔었어. 차마 고생도 무척 하고 울기도 무척 울고. 그 생각하면 (울먹이며) 속이 아프다 못해 쓰려 그냥.
“그때가- 며칠을 갔나. 뚜껑 없는 차에서 주먹밥 똘똘 뭉친 거 그거 한 덩어리씩 하고, 다꽝, 그 단무라고 옛날에 있어. 그거 두 조각하고 이렇게 해서 주고, 뭐 물도 통에다 해서 차 속에서 그냥 그렇게 해서 얻어먹고. 끌려가는, 죽으러 가는 목숨이 저기 할 수 있어? 그래서 그냥 막 욕을 조선말로, 모르니께 조선말로 욕을 하고. 이놈의 새끼들아, 이놈의 새끼들은 자식을 안 기르고 동기 간도 없느냐고 소리 지르고 악담을 하고 욕을 하고 별 짓을 다 혀. 알아들어야지 저 놈들이.
“내가 생각하기에 그냥 종처럼 부려 먹을라고 가는 갑다 생각했지 뭐, 다른 생각이야 들갔나?
“그게 어디더라-. 하도 오래 돼서. 기차 선 곳이 일본 놈들 땅이니께, 거기서 스대. 군인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
“거기서 내리니께 뭐 저녁도 굶고 아침도 굶고 배들이 고파서 그냥 말도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다 보니까 (어깨를 가리키며) 이런 데가 죄다 으스러지고. 저녁이 되다 보니까 어데로 [같이 끌려온] 그 아가씨들이 싹 갔나 없어. 저녁에 해 지고 보니까 아 두루두루 나 혼자 남았어. 큰일났대. 막 야단을 치고 부르면서 사람을 찾아도 어디로 싹 끌려가고 없어. 그래 난중에 일본 놈들이 나 혼자 남았는데 인제 어떡할거냐 다짐 받는 거야. 주 093
각주 093)
조선에서 동원된 여성들을 현지에서 배치시켰던 사람들이 노청자에게 다른 여자들처럼 어디론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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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지고는 나중에는 한 놈이 오더니 잡아 끌으려고 [해서] 막 몸부림을 친께, 한 놈이 와서 다리 한 짝씩 팔 한 짝씩 그냥 들려 가지고 가는 거야. 장정 놈들이 너덧이 뎀비니 어린 것이 그까짓 것 뭐 알아? 그렇게 악담을 하고 저기를 하고 끌려갔었지.

아사히 쇼쿠도

끌고 제 방으로 갈려고도 그러고.
“허허벌판도 아니야, 성을 쌓았어. 성을 쌓아서 꿈쩍도 못혀. 성 바깥을 나갈 수가 있어야지. 두 놈들씩이나 지키고 서 있으니.
“[부대가] 보였지, 가찹게는 안 보였어도. 멀리 이렇게 어리어리하게 [군인들이] 왔다갔다 하고 빨래 널고 모두 저기 하는 거 보였지.
“인제 숙소에서 나오면 남구(나무) 같은 것두 뵈구, 그저 뭐 저이들끼리 거시기 해서 운동하는 것두 뵈구 다 그랬지 뭐.
“어느 구석에루 빠질라나, 이것 못된 데루나 빠지지 말어야 될 텐디 그 생각만 [했지].
“여기루 말하자면 소개자맨이루 그렇게 저 거시기 데려다가 식당으루 그렇게 소개시켜 해주지. 그럭 하구 즈이들이 돈 받아 처먹구.
“인제 위안부로 갈 사람 있구, 또 이 쇼쿠도(식당)로 빠지는 사람 있구. 그런게 우리 한 패는 쇼쿠도로 빠지구 한 패는 위안부로 가구 그랬지.
“그게 위안소가 아니라, 아사히 쇼쿠도라고 했어. 그럭 하구 가서 그냥 그 사람들이 주욱 하니 (양팔을 길게 뻗으며) 이렇게 앉으면 이 구석 저 구석 댕기면서 술 따르구 그랬어.
도꾸리(술병). 인제 요만한 술병이 있어. 그라믄 가상에루 [술병을] 갖구 와서는 가면서는 빈 잔이 있으믄 (두 손으로 술 따르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술 따르구 그라지 뭐.
“그럼 어떡햐? 거기 붙잡혀 간 이상에는 옆에서 술 따르구, 먹기두 하구 그라는디.
“[식당에 온 일본 군인들이] 노래 불르라 그래. [그러면 내가] ‘와따시와 우다우 데끼나이주 094
각주 094)
‘노래 못합니다’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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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래 뻔지지.
“그러구 ‘무스메상 우따우야래.’ 주 095
각주 095)
‘아가씨, 노래해 봐’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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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따시와 우다우 와까라나이데스요.’ 주 096
각주 096)
‘나는 노래를 모릅니다’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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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시따로 우다우까?주 097
각주 097)
‘왜 노래를 합니까?’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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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그래. 어띃게 노래를 부르느냐고 막 그럭 하고 아주 뻣뻣하게 하니께. 아주 쪼냔쪼냔 간사스럽게 저길하게 [하는 여자는] 이뻐라하고, 뻣뻣하게 저기한 사람은 그렇게 저길 안 햐.
“거기 일본 사람들도 오구, 그저 조선 사람두 오구 상관없어.
“[식당에 오는 조선사람은] 쓰야쿠상. 통병군(통역군인). 쓰야꾸상이라구 그라지.
“[식당에 오는 일본사람은] 군인도 있구, 아닌 사람도 있구. 거기 또 그 사람들은 부대에 따라서 뭐 일 햐. 주 098
각주 098)
식당에 오는 사람들 중에 군인이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군속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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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손목도 잡으려고 그러고, 끌고 제 방으로 갈려고도 그러고. 그래도 내가 총기가 빨라서 ‘빠가야로, 군야로주 099
각주 099)
‘이 바보같은 녀석’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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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욕은 배웠거든. 내가 억쎘어. 막 그냥 하도 억쎄니께 아우 무섭다고 여자가, 막 그라고 그랬지.
“어리석은 여자들은 기운도 약하고 그러면은 지덜끼리 몇몇 짜 가지고 끌고 들어가서 행패 부리고. 한 두 명이 행패야? 네 다섯 명이 행패지. 그럼 여자는 죽어 나와. 그러니까는 병원으로 가지 뭐야.
“그럼 뭐, 얼굴도 지 색깔이 아니고, 아이고 축- 늘어져서. 그냥 몇 놈이랑 잔 질 알어- 축 늘어져 세상에. [여자들을] 둘도 떠메고 가고, 서이도 떠메고 가고. 아이고 그걸 보고 그냥 숨고, 짚단 속이라도 숨어. 그 속이라도 들어가서 숨어져, 그걸 보고 저절로.
“그때는 뭐 미칠 것만 같으구. 말두 잘 안 듣구 매까지 맞았는걸 뭐.
“내가 고집이 상당히 씨거든. 고집 씨구 막 뻣뻣하게 굴구, 뭣인디 나를 가지구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냐구 막 저기를 하구 그러니께.
“책음자가 인제 그라지, 잘못 하니께. 고분고분 않는다구.
“막 따구두 때리구, 그저 막 등두 때리구 그라지.
“거기에 있던 여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군인들 숙소를] 청소를 해 나가.
“빨래하고, 전부 이 방 저 방 소제하고. 순-전 식모여. 식모도 그런 식모가 없어. 아주 뭐 이 방 저 방, 방이 하나 둘이래야지. 여자들이 수 백 명이 같이들 하고 그러는 걸.
“아주 몸서리나게 빨래 해. 아이구 뭐 저녁에 잘 시간 돼야 [일감을] 놓구서 자구 나와서 밥 한 숟깔 주먹밥 한 숟깔 얻어먹고 죙일 빨래 널구 말리구.
“아이고 어떤 새끼들은 술 처먹고 똥을 다 싼 놈이 있나, 별 놈이 다 많거든. 아이고 그 놈들 속이기도 퍽 속였어. 똥 싼 구린내가 대번 나는데 그걸 누가 빨어? 꾸깃꾸깃 해서 그냥, 거기 변소간이 깊거든, 그냥 그 속에다가 [빤스를] 집어 처넣고. 그러다 [옷 주인이] 보니께 빤스가 없으니 어쨌느냐고, 드립다 빤스 내놓으라고 그러지. 그라면 ‘미따 고또가 난데스요.’ 주 100
각주 100)
‘본 적 없는데요’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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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까시나, 오까시나’, 별 일일세 그냥 그렇게 하고서 슬쩍 넘어가고. 많-이 속여먹었어, 일본놈을 내가.
“빨래 널어서 마르면 착착 개켜서, 그것도 얌전-히 잘 해서 갖다 주면은 팁도 줘요. 그렇게 눈치를 봐서 살랑살랑 해서는 그렇게 팁 주는 놈만 골라다가 빨지.

위문단

누-런게 전부 군인인디, 군인 앞에서 노래 불렀지.
“식당에서 위문단 주 101
각주 101)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권번의 기생들을 모아서 일본군을 ‘위문’하는 문화선전단을 조직하였다. 이것을 ‘위문단’이라고 불렀는데, 이 ‘위문단’은 조선과 만주 각지에서 일본군부대를 따라다니며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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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했어.
“공연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있었지.
“식당두 워트케 꾸며 가지구, 무대두 워트케 장치를 잘 해 놓구. 모두 일주일 동안은 워디 부대, 일주일 동안은 워디 부대. 일주일씩 아주 이렇게 낼셔 놔 가지구 그때 거시기 허믄 착착 나가야 되야.
“누-런게 전부 군인인디, 군인 앞에서 노래 불렀지. 부채 두 개 가지구 나와서 부채춤 추구.
“그때에 [위문단] 따라서 안 갈라구 별 짓을 다 했네, 거기 안 뽑힐라구. 그래두 헐 수 없이 뽑히구.
“모든 것이 다 싫어가지구 내가 마땅찮아서 그랬더니, 제기랄 일등으루 뽑혀.
“위문단, 거 가는데 좋은 게 뭐야. 가서 [공연할 것을] 배울 동안에는 얼마나 고생이 많은데.
“[위문단에] 일본 여자들이라구 안 나와?
“일본인들한테 안 질라구 악착같이 그냥 저기하구. 그년들한테 안 뺏기구 안 질라구 악착같이 나가서 막 저기를 하믄 박수가 자라자라 나오고.
“나는 조선여자들이 거 와서 천대받고 저기 하는 걸 보믄 ‘아이구 이 돌대가리들아, 왜 못 허니? (손으로 춤사위를 보이며) 좀 이렇게 해라’ 하구. [위문단 책임자가] 그냥 구경하구 앉았으면서 ‘구니야로, 아따마가 빠가야로.’ 주 102
각주 102)
‘야 이 돌대가리야’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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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이랬싸믄 속상해 죽겄구.
“[공연할 때는] 일본 옷 입었지, 기모노. 머리는 그냥 뒤로다 젖히고 짬맸었구.
“[위문단 하면] 돈 안 나와두 그거 좀 뭐라고 할까? 무슨 먹는 부속품들 나오지.

고향에서 온 여자들

밤 새구 지나간 얘기하구, 또 울다가 웃다가.
“내가 인제 잠자는 장소가 있어.
“[숙소를] 따루 꾸며놔서. 저 짝으루 한패 조-옥 자구, 이 짝으루 한패 조-옥 자구 그래. 머릴 이렇게 맞대.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만 비지.
“방바닥이 아니구 그냥 침대식으루 막대기루 해서 전부 그 위에다 깔았어.
“그저 어떤 때는 한 고향에서 온 여자들 있으믄 서이나 너이나 다섯 사람 모이면 밤 새구 지나간 얘기하구, 또 울다가 웃다가 이렇게 어떻게 하다보믄 날이 새구 그냥 말구.
“거기 여자들이 친절한 사람들 있어. 일본 사람두 그렇구, 조선 사람두 그렇구. 그래 인제 낭중에는 나보고 언니라고 ‘네짱, 네짱’ 그라지. 그래 인제 언니라고 그라믄 ‘아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조선에 나간단 말인가’ 하고, 암만 해도 여기서 죽게 생겼다고, 죽지 말고 조선 나가서 죽어야 될텐디[라면서], 자릿대 같은 눈물을 툼벙툼벙 쏟아 붓어서 불쌍해 죽겄어. 그것들[도] 팔려왔거든. [소개꾼이] 몰래 그냥 데려다 주구 돈 받어먹고 그라그든.
“[언니라고 부르던 여자가] 좀 험하게 굴었지. 인정이 부대껴서 그랬던지 으쨌던지 간에. 그래 돈두 많이 벌었어. 팁을 많이 읃어서 날 보구서 그라지. 아무두 없는데 이렇게 둘이 있는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언니, 조선 나가믄 누가 아느냐 그말이여. 그러니께 이런 드런 놈의 집에 왔다가서 돈이나 벌어 가지구 가지 뭐, 나는 얼마 벌어놨다구, 조선 나가면 찾을 거라구. 아주 뱃때기 속에 요만한(작은) 가방에다 하나 [가득] 그거 해 놨어. 조선 나가서 돈 찾는다구.
“[보수는] 거기 인자 책음자, 높은 사람이 줬지. 하루에 날짜 따져서, 하루씩 줘.

완장

가짜 훈장을 높은 걸루 채워주믄 일 좀 덜 하구.
“이렇게 심부름 해 주구, 직싸게 좀 즈들 비우 맞춰서 잘 하믄 거기서 상장 주구. 상장이래야 개뿔따구 같은 놈의 상장, 뭐 먹을 거 있으믄 요만한 거시기 (작은 상자)에다 담아서 포장 딱 해서 그거 하나씩 주는 거지 뭐.
“나는 완장을 찼기 때문에 인제 소위나 중위쯤 되거든. 여러가지 것 다 이쁘게 보이믄 훈장 타.
“그거 인저 훈장 타믄 팔뚝에 이렇게 거는 거 있어. 그럼 훈장 타서 삔 요기다(완장 끝) 두어 개 딱 찔르구 다니믄 그저 좀 웬만하게 높은 놈두 (손을 이마에 대며) ‘경례!’ 딱 이러구. [완장에는] 중위면 중위, 소위면 소위, 그렇게 거기 다 있거든. 그러니께 경례 딱딱 붙이구 아주 그놈들이 저기하지. 주 103
각주 103)
식당 관리자가 일종의 계급장인 완장을 식당 작부들에게 채워주면 일본군 하급 병사들도 자신보다 높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작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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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을 다 하구, 소지 다 하구, 그걸 전부 하믄 아주 양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거 같어. 그래 난중에 불쌍하게 헐렐레- 이렇게 앉았으믄, [잘 해주던] 쪼끔 높은 사람이 ‘아이구, 진또꼬상 이따이데스까?주 104
각주 104)
‘진또꼬상(노청자의 일본 이름), 아픕니까?’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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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이따이데스요. 아따마가 이따이데스요.’ 주 105
각주 105)
‘네, 아퍼요. 머리가 아퍼요’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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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그럼 그러냐구, [자기한테] 오라구 해서 가짜 훈장을 (팔뚝을 가리키며) 여기다 높은 걸루 채워주믄 일 좀 덜 하구. 한 며칠 좀 편안하면 싹 낫아뻔지지 뭐.
“내가 감독하믄 먹는 것이 좀 잘 먹지. [다른 여자들이] 서로 눈에 들게 할라구 [나한테] 써비스를 하거든. 뭘 그렇게 가지고 와 몰래몰래. 안 받을라구 막 애를 써두 헐 수 없이 받어. 받으믄 그 먹은 값을 해 주야지. 인제 심하게 안하고 뭐든지 쪽 고르게 잘해 주구 그라지.

개구녁

그냥 숨두 안 쉬구 도망질을 쳐서 보니께.
“나는 원래 높은 사람 빨래를 해 주다가 거기서 만내 가지구. 깨깟하게 해서 참 얌전하게 만져서 그렇게 갖다 주구. ‘센따구시마시다, 하이요.’ 주 106
각주 106)
‘빨래 다 했습니다’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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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 하구서 갖다 주구. 참 이쁨 많이 받았어, 그 높은 사람한테.
“일본 사람이 양반이었어. 그냥 저기 하믄 날 불쌍하다구, 조선 놔 두구서 타관 객지 나와서 얼마나 군인들 접대하구 그러느라구 아프냐구. 그냥 오믄은 어깨두 주물러 주구 그랴.
“[내가 그 일본 군인한테] 간고꾸(한국)에 보내달라구, 오또상모 오까상모 민나 주 107
각주 107)
‘아버지 어머니 모두’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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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있다구 말이여, 집에서는 나 죽은지 알겄다구 말이여, 조선에 안 보내주믄 나 죽여 달라구 말이여, 아주 그냥 눈 딱 감구 있을께니께 멀리 죽여 달라구 그랬어. 그라구선 눈에서는 눈물이 그냥 비 쏟아지듯이 흘르지 뭐야. 그러니께 마음이 언짢았던지 수건을 주믄서 눈물 딲으라구 그라대. 안 죽인다구. 아이구- 내가 그 얘기만 하믄 목이 맺혀서. 그래 눈물 딲구서는 그냥 가만히 혼자 앉았었지.
“그래 가지구 ‘가와이소오네, 모우 스꼬시 맛떼구다사이.’ 불쌍하네, 쪼끔만 참으라고.
“그래 가지구 내가 빨래두 그 대신 잘 해서 이렇게 해 주구, 친절하게. 그랬더니 그게 중윈디, 이 눔이 야심을 먹대-. 말 안 듣구선 여기서 못 헤어나간다 이 말이여. 가-만히 생각을 허니께 내가 거기서 죽으믄 뭘 햐. ‘까짓 몸 한 번 버려주는 셈 태구서 내가 조선 나가는 게 옳지.’ 그 맘이 들어가대. 그래가 내가 부모형제를 만나보구 내가 죽겄다 싶어서, 그래 그 다음엔 참말두 못하구 그냥 고분고분 했어. 아유 자라 그랬어. 그래서 그 사람한테 몸을 뺏겼다. 그렇게 안하구선 안 되겠어 도대체. 그라구서 저녁에 또 그 사람이 오믄 그 사람한테 또 몸을 뺏겼지. 아 그까짓 거 몸 한 번 뺏겼는데 두 번 못 뺏기리라구서.
“[그 남자가] 오늘 밤에 잠 자지말구 열두 시 새벽 한 시쯤 돼서 배깥으루 나오라구 그라대, 그라믄 조선 나간다구. 그래 꼭 내보내 줄 테냐구, 그람 내가 아주 절을 열 번 하겠다구 그냥 내가 이랬더니.
“그래 가지구 나오라구 그라대. 그래서는 한 시쯤 나갔어. 나가니께 두 놈이 거기 붙잼겨 섰대.
“여기서 볼라믄 저-기 가물가물하게 뵈야, 저기 철망친 데가. 철망은 아주 무-섭게 쳐졌어.
“그럭하구 인저 철망이 저-긴디 그 철망을 내가 보초 서줄게 빨리 나가라구. 이렇게 흔들으믄, 빨간기가 나오믄 저놈들이 나오는 기구, 암 소리 않구 안 저기 하믄 그냥 무사한가 부다 하구 안 저기하구. 그래 그렇게 해 주구서는 이 개구녁으루 빠져 얼른 도망가라구 그라대. 개구녕만 나가믄 도망가는 거 봐두 아무 일 없다구 그라대.
“고맙지-. 한 번 당했을 망정, 그래두 이 한국땅에 내보내 주니. 그 사람이 전부 잘 보아서 그냥 들키지 않구 내보내 줬으니 고맙지, 목심 살려주구.
“[식당 주인은] 몰르지-. 알았다가는 책음진 거 돈 있잖아, 돈두 갚아주야지. 몰래 그냥 나왔지.
“나오니께 봉천 주 108
각주 108)
만주국 봉천성(奉天省) 봉천현(奉天縣). 봉천은 지금의 심양(瀋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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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오다가 또 내려서 다른 거 가와리, 바꿔 타고 그저 연방 물어서 그냥 오고 그랬지.
“[기차에서] 나 한 푼두 읎다고 막 얘기하고 죽는 소리하고 허니께 그냥 타라고 그라대. 요시(좋아).
“그래서 타구 와서는 내려올 때쯤에 와서 물어서 연방 오믄서 물어서 그렇게 해서. 아이구 말 마라 물어보질 마라. 아주 그냥 그 고상 직싸게 했어. (울먹이며) 그저 걸어두 오구, 밥두 읃어먹구, 말두 마.
“그냥 배가 고파서 쩔쩔매구 자릿대 같은 눈물이 텀벙텀벙. 내가 이렇게 해서 조선 나가서 부모형제들을 만나보나-. 길을 걷다가두 서서 엉엉 울으믄 어떤 사람이 딱 와서 왜 이렇게 우느냐구, ‘오까네가 나이데스요?주 109
각주 109)
‘돈이 없어요?’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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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인제 핑계루 그라믄은, 그라냐구 (감정이 북받치듯 떨리는 목소리로) 돈두 주구. 아이고 고생한 얘기 골치 아파 아주.

달음박질

나 안 해 본 거 없어, 묻지 말아.
“중국에 있다가 나와 가지구 어머니 아부지 있는 데(유성)를 찾아갔지.
“뭐 말할 수가 없었지. 눈물바다가 됐었고. 동네방네 사람이 다 붙들고 울고.
“그렇게 하고 거기서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 집 팔아 가지고 내가 경기도로 왔지. 경기도로 와 가지고 지내다, 그 담에 대천으로다 [왔지]. 대천 같이 물건도 싸고 순한 데가 없어. 대천이 제일 좋아.
“참말로 혼자 달음박질해서, 요만한 다라(대야)에다가 그저 여러가지 걸 가지고 댕기며 팔고.
“전부 먹는 장사지. 먹는 장사가 돈이 벌려.
“닥치는 대로 그냥 [팔았어]. 그때가 좋았어. 돈도 잘 벌리고. 하루 세 번 정해서 그저 이것저것 부지런해서 저기하고 나면 저녁에 오믄 (앞에 있는 비닐봉지를 가리키며) 저런 봉투에 꼭꼭 눌러서 하나씩 [돈을] 들고 왔으니께.
“그저 이것두 하다가 가만히 눈치 봐서 저것두 하다가. 혼자 살면서 (면접자의 가방을 가리키며) 저런 가방을 언제[든지] 가지고 댕기지. 그럼 이렇게 돈[이] (가방의 윗부분을 가리키며) 여기다 대구 차올르구 그럭 하믄 재미가 나서 된 줄두 모르구 그냥 죽자사자 장사를 해서 거기에 재미를 붙이구 그랬었지.
“내가 걱실걱실하고 친절하구 그르구 허니께 손이 많이 와.
“가게도 냈었지, 돈놀이도 했었지. [그런데 돈을] 띠구 그저 맥히구 그렇게 다 살기 마련인가 봐 사람이.
“다방 했었지 일본에서. 거기서 칠 팔 년 했는가배.
“거기서 친구가 오라구 해서, [친구가] 델러 [한국에] 나와서 따러갔지. 우리 부락에서 같이 아래 윗집 살던 친구가, 이럴 때 돈 안 벌고 언제 벌래? 뭐 할라구 혼자 있느냐구, 그까짓 거 자식 없으면 돈이구 돈 없으면 자식이지, 뭐 할라구 저기 하느냐구, 이런 멍텅구리가 어디가 있느냐고 막 잡아 끌어싸서 할 수 없이 여권 받아 가지구 그 친구 따러서 같이 들어갔지.
“[일본에] 들어가던 꼴로 그냥 손님이 대만원이었었구, 돈 잘 벌었어.
“잘 될 적에 돈 잘 벌었어. 에휴- 그랬는데 뭐 조선 나와 가지구 병 걸려서 읎앴지, 해부 해서 읎앴지.
“여기(사타구니)를 해부 했어. 여가 그냥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이만하게 있어 가지구 전부 짤라내구 거시기 했지. (수술자국을 보여주며) 여 흉터가 있어. 못된 것이 올라와 가지구서는 아주 흉터가 있었구. 주 110
각주 110)
노청자는 매독 때문에 허벅지 윗 부분에 주먹만한 몽우리가 생겨서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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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나 고생한 얘기를 하면은 아가씨들(면접자)두 울어. 나 고생한 얘길하면 말할 것 없이 짐은 한 짐은 되야. 그걸 다 워따 대구 얘기를 햐.
“[형제들은] 살아있는 사람두 있구 죽은 사람두 있구. 동기 간은 나는 피해 살으니께, 대구 뜯으러 와서. 아 그렇지 않으믄 나 먹구 싶은 거 먹구 뭐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지.
“아이고 몇 천만 원을 띠었는데. 내가 지금은 야단을 치고, 전화루다가 욕을 하고 엄청-. 나는 이제 다시는 동정도 없다, 없으니 상대하지 마라, 아주 그래. ‘나는 죽어도 숨이 깔딱 넘어가도 니들 안 만날란다’ 막 그러고 아주 그냥.

선비 같던 사람

안 죽었으믄 더 [같이] 살 건데.
“연애가 워딨어? 내 시절에 연애도 읎었어. 그때는 옛날이니께 그냥 서로 동네지간에서 놀러 나와서 얘기두 하구 그저 놀구 이렇게 하다가. 내가 우스개 소리를 잘 햐. 그 남자두 또 우스개 소리를 그렇게 잘 하대. 주거니 받거니 그러다 서로 살자구 그랬지.
“[그 남자가 잘] 해 줬지. 그저 이래라믄 (고개를 끄덕이며) 흐응-, 저러라믄 저렇게 했었구. 조금두 속 안 쎅였어. 아주 사랍게(살갑게) 해 주구, 대문에라두 앉았다 [내가] 장사해서 저런 곽으루다 [팔던 물건을] 들구 오믄 마중 나와서 받어가구, 앉아서 이렇게 (다리 주무르는 시늉을 하며) 주물러두 주구.
“당신이 밥 할 줄 아니께 밥 해서 해 놓구, 반찬 사다가 그렇게 해 놓구서는 내가 돈을 벌면 벌어 가지구 같이 오구. 아이구 그러다가 죽구 읎으니께 허망하기는 한이 없구, 쓸쓸하기두 한이 읎구, 의지할 데가 읎드라구. 아이구 참- 많이 했지, 고상두.
“선비였었구, 내 그저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면서 뒤나 봐 주구 그랬었지. 점잖-하구 참 말두 점잖게 하구.
“[자식이] 둘이나 죽었어. 머스매 둘이나 참 똑똑했는데 그렇게. 실없이 그냥 홍역하다 죽구. 그 이상하대, 자식 못 둘 팔자가 되니께 할 수 대, 별짓을 다 해두 죽어.

서글픈 마음

이렇게 앉았다가도 다리두 쭉 뻗을라구 하믄 이것두 썩을 다린데-.
“[일본이 나한테 잘못한 것은] 데려다가 이렇게 화류계 생활 시키구, 저 영업자맨이루 술 붓구 술 팔구 그라는 거지.
“[일본한테] 보상하라구 그래두 마땅하지 뭐. 그놈들 땜에 고생했으니까.
“그 전에 조사할 적에 [위안부 신고] 했으니께 다달이 돈두 얼마씩 나오구, 그걸루 생활하구 먹구 살았지. 누가 버는 사람 있나 뭐.

“나 살면서 제일로 좋았었던 때는 서른 다섯, 여섯?
“그때가 제일 좋구 맘대로 저기하구 아주 참 좋았었지 뭐. 내가 좀 재산이 좀 있었거든, 돈놀이 하구 그냥.
“제일 마음 아플 때[는] 몸 아플 적에.
“몸 아플 제가 제일 괴롭고 슬퍼, 다른 게 아니라. 성해서는 뭐 아무렴. 여간해서 몸두 잘 안 아픈데 그렇게 한 번 아펐다 하믄 되게 앓아, 아주. 코피를 쏟아가며 아퍼.
“정신이 초롱초롱하니 그러믄 무이 걱정이야. 치매 기운이 요샌 바짝 와서 아주 틀려.
“허리가 아파서 두 시간쯤 있으면 못 앉았어. 그러게 노상 침대에 드러누웠다 일어났다 그러거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놈의 거. 에유- 쉽게 죽으라나 봐, 이상햐 마음이.
“당최 서글픈 마음이 들어가고. 안 그러드니 서글픈 마음이 들어가. 이렇게 앉았다가도 다리두 쭉 뻗을라구 하믄, 에휴 이것두 썩을 다린데.
“그 전에 아는 사람이, 죽은 [남편이] 꿈에 뵈여. 그럼 ‘많이 잡숫구 많이 저기 해서 기운내슈- 얼매 안 남았어요.’ 그라구.
“죽은 사람이 꿈에 와서 이렇게 가자고 할 때는 내가 얼마 있으면 가겄다, 이렇게 짐작하고 있어.
“그저 나 하나 죽어주믄, 누가 [내 재산을] 차지하믄 차지하구, 나 하나 어디루 묻어나 주면 그거나 바라지 인제는. 나 좀 잘 봐 주구 할 얌전-한 딸 하나를 좀 삼았으믄 싶어. 다른 저기는 읎어. 아무것두 소원하는 거 읎어. 내 팔자가 이러니께.
“아이고 과거지살랑 묻지 맙시다, 가슴 아퍼요.”

  • 각주 091)
    충청남도 대전시 유성구. 바로가기
  • 각주 092)
    권번은 일제시기 기생조합을 말한다. 이것은 기생학교로서의 성격도 아울러 갖는데 주로 춤과 노래, 악기 등을 가르쳤다. 바로가기
  • 각주 093)
    조선에서 동원된 여성들을 현지에서 배치시켰던 사람들이 노청자에게 다른 여자들처럼 어디론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는 의미이다. 바로가기
  • 각주 094)
    ‘노래 못합니다’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095)
    ‘아가씨, 노래해 봐’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096)
    ‘나는 노래를 모릅니다’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097)
    ‘왜 노래를 합니까?’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098)
    식당에 오는 사람들 중에 군인이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군속이라는 설명이다. 바로가기
  • 각주 099)
    ‘이 바보같은 녀석’이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00)
    ‘본 적 없는데요’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01)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권번의 기생들을 모아서 일본군을 ‘위문’하는 문화선전단을 조직하였다. 이것을 ‘위문단’이라고 불렀는데, 이 ‘위문단’은 조선과 만주 각지에서 일본군부대를 따라다니며 활동을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102)
    ‘야 이 돌대가리야’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03)
    식당 관리자가 일종의 계급장인 완장을 식당 작부들에게 채워주면 일본군 하급 병사들도 자신보다 높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작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바로가기
  • 각주 104)
    ‘진또꼬상(노청자의 일본 이름), 아픕니까?’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05)
    ‘네, 아퍼요. 머리가 아퍼요’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06)
    ‘빨래 다 했습니다’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07)
    ‘아버지 어머니 모두’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08)
    만주국 봉천성(奉天省) 봉천현(奉天縣). 봉천은 지금의 심양(瀋陽)이다. 바로가기
  • 각주 109)
    ‘돈이 없어요?’라는 의미. 바로가기
  • 각주 110)
    노청자는 매독 때문에 허벅지 윗 부분에 주먹만한 몽우리가 생겨서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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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지살랑 묻지 맙시다, 가슴 아퍼요” 자료번호 : iswj.d_0009_0010